- 명작이란 말로는 담아낼 수 없는 위대함
비단 영화뿐만 아니라 예술의 분야에선 고전 명작을 가리켜 '클래식'이라 칭한다. 역사에 남은 클래식들은 공통적인 속성 하나를 가지는데 그는 바로 시대 초월성이다. 본 비평문에서 다루고자 하는 <벤허>는 어떠한 성찬을 곁들여서 바라보더라도 결코 과해 보이지 않는 시대 초월적인 작품이다.
한 영화의 수상경력이 그 작품의 완성도를 나타내는 지표는 아니다. 물론 좋은 영화일수록 여느 영화제에서 좋은 상들을 수상할 수는 있으나 그 두 요소가 선형적으로 비례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작품들은 그런 경계를 초월하기도 한다.
<벤허>는 개봉 이듬해인 1960년 제3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12개 부문 후보 노미네이트와 11개 부문 수상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그리고 이 기록은 1998년 <타이타닉>이 14개 부문 후보 노미네이트와 11개 부문 수상이라는 기록을 세우기 전까지 약 40년 동안 유지됐다(두 영화의 수상 개수가 동일하기에 기록이 경신된 것은 아니다). 이후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까지 11개 부문에서 수상을 하며 세 작품은 아카데미 시상식 최다 부문 수상이라는 금자탑을 세웠다.
세 작품 모두 훌륭하고 수상 개수까지 동일하기에 우열을 논하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세 작품 중에서도 <벤허>가 세운 업적이 조금이나마 더 빛나는 이유를 찾으라면 종교영화라는 핸디캡을 극복한 것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벤허>의 위대함을 논할 때 가장 많이 언급되는 부분 중 하나는 스케일이다. 그토록 위대하다는 이 영화의 스케일을 단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좋은 예가 있다. 제75회 베니스 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며 작년 한 해 가장 뜨거웠던 영화로 기록된 <로마>의 제작비는 1,500만 불이었다. 그리고 약 60년 전에 만들어진 <벤허>의 제작비 또한 1,500만 불이었다. 당시 영화 한 편 제작에 드는 비용이 평균 300만 불이라는 걸 가정했을 때 1,500만 불이라는 금액은 그 당시 <벤허>가 어떤 얼마나 거대한 영화였는지 간접적으로 설명한다.
제작 기간 10년, 세트 제작 2년, 세트 300개, 출연진 10만 명 등의 가공할 만한 수치들은 이 영화가 컴퓨터 그래픽이 없던 세상에서 어떻게 스펙터클을 구현했는지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또한 <벤허>는 바티칸에서 선정한 세계 10대 종교영화에 유일하게 이름을 올린 할리우드 영화이다. 국가 자체가 가톨릭과 동일시되는 곳에서 선정한 종교영화 부문에 이름을 올린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외에도 <벤허>는 미국 영화 연구소(AFI)에서 선정한 역대 최고 영화 100위 중 72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수상 경력이나 제작 규모가 한 영화의 위대함을 설명할 수는 없다. 그러나 <벤허>가 영화 역사에 남긴 위대한 발자국들은 이 작품을 명작 다음 단계의 어떤 수준으로 끌어올린다.
<벤허>가 영화사에서 굳건하게 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데에는 결정적인 이유가 있다. 앞서 여러 번 언급했지만 이 위대한 작품이 사실은 종교영화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벤허>는 종교적 색채와 주제의식을 전부 걷어내더라도 영화 몰입에 방해가 없을 정도로 잘 만들어진 완성도 높은 훌륭한 영화이다
<벤허>를 보통의 극영화 작법으로 읽어낸다면 관객의 흥미를 유발하는 다양한 드라마의 요소들을 찾아낼 수 있다.
먼저 유다 벤허(찰턴 헤스턴)와 메살라(스티븐 보이드)에겐 버디 무비의 밑그림이 있으며, 그 위엔 권선징악의 서사가 자연스레 녹아들어 있다. 강력한 힘을 가졌던 주인공이 그 힘을 빼앗긴 후 우연한 기회를 통해 이전보다 더 강해져서 돌아온다는 전형적인 히어로 영화의 내러티브도 볼 수 있다. 이외에도 벤허가 본인이 소속되어 있던 집단을 보호하러 온다는 점에서 일종의 구원자 서사도 읽어낼 수 있다.
4시간에 가까운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이 집중을 잃지 않는 이유는 이렇게 다양하고 재밌는 드라마의 요소들이 기저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벤허>의 러닝타임은 총 222분이다. 그러나 222분의 시간 동안 직접적으로 종교에 대한 이야기나 레퍼런스 등이 등장하는 시간은 후반부 20분이 전부다(오프닝 시퀀스 및 예수가 벤허에게 물을 건네는 장면 제외). 그리스도 이야기를 다룬 소설 원작 영화란 걸 감안했을 때 보는 관점에 따라서는 종교 이야기의 비중이 아쉬운 관객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다소 선명할 수 있는 종교라는 색을 켜켜이 감싸고 그 위로 이야기의 층을 쌓아 올린 것이 <벤허>가 이토록 위대한 영화가 된 이유이다.
같은 맥락에서 영화는 정확히 예수가 언제, 어떻게 등장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만약 이 균형을 잃고 과욕을 부렸다면 그로 인한 사실감 저하가 전체 영화의 완성도를 떨어뜨렸을 것이다.
가령, 벤허가 노예선에 묶여있을 때 예수가 등장해서 기적을 일으키거나 전차 경주에서 전지전능한 힘이 벤허를 선두로 이끌었다면 그것은 영화 전체의 내러티브를 침범하는 무리수가 됐을 것이다.
그러나 벤허가 쓰러지기 직전 물을 한 잔 건네는 손길과 그런 그를 저지하려다 이내 얼굴을 바라본 후 어찌할 바를 모르는 로마군을 담아낸 장면. 이 짧은 신을 통해서도 우리는 그가 누구인지 어떤 힘을 가지고 있고 어떠한 일들을 행하는지 알 수 있다.
이렇게 <벤허>는 이야기의 밀도 조절과 각 사건들의 효율적인 배치들을 통해 최소의 언급만으로도 최대의 효과를 이끌어낸다.
앞서 말했듯 <벤허>는 의도적으로 종교이야기를 후면으로 배치한 상태에서 진행된다. 영화 속에서 벤허는 마지막 장면에 도달해서야 진정으로 무언가를 깨우친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벤허가 예수에게 깨달음을 얻기 전부터 시각적인 비유나 대사 등을 통해 벤허에 예수를 대입시킨 듯한 장면은 많았다.
벤허가 로마군에게 잡혀간 후 긴 시간이 지나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을 때 에스더(헤이어 해러릿)는 그의 부친에게 벤허의 귀환 소식을 전한다. 이때 그녀가 부친에게 벤허의 귀환을 말하는 뉘앙스는 사실 '귀환'보다 '환생'에 가깝다. 또한 후반부의 전차 경기에서 우승한 벤허가 월계관을 부여받는 장면은 예수의 가시면류관을 상기시키기도 한다.
이러한 시각적인 비유나 대사를 제외하더라도 벤허가 예수에 비유될 수 있는 결정적인 시퀀스가 하나 있다.
벤허는 전차 경주에서 우승한 후 필라투스에게 로마 시민으로서 살아가기를 요구받는다. 이때 벤허는 메살라를 겨누고 있던 증오의 화살을 로마에게 돌리며 메살라 역시 로마의 희생양이라고 말한다.
영화 초반에 국가의 위대함을 설파하며 로마의 시민이 되라고 권유했던 인물은 메살라였다. 심지어 메살라는 벤허의 어머니와 여동생까지 투옥시킨 악당에 해당하지만 벤허는 그런 메살라를 감싼다.
이는 '원수를 사랑하라' 말하는 예수의 가르침을 벤허가 직접 행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상기 장면들을 통해 관객들은 유다 벤허를 이 영화에서 말하고 있는 또 하나의 그리스도로 볼 수도 있다.
<벤허>를 종교 영화로 보든 드라마 영화로 보든 액션과 모험 영화로 보든 이 영화는 훌륭하다. 그러나 주제에 부여된 한계를 뛰어넘고 그것을 가장 효과적으로 풀어내 전달하는 방식과 완성도는 이 영화를 더욱 빛나게 한다.
'이 영화가 왜 그렇게 대단한 거야?'
관객들이 고전 명작이라 일컬어지는 작품들을 봤을 때 가장 많이 하는 이야기이다. 제아무리 명성이 높은 작품일지라도 위와 같은 관객들의 냉정한 평가를 피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영화사에 남을 만한 작품이라는 그 대단한 영화가 왜 이렇게 재미없게 느껴지는 것일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관객들이 오늘날의 시선으로 그 영화를 바라보기 때문이다.
<아바타>는 3D나 시각효과를 말할 때 바이블처럼 소환되는 영화이다. 그 당시 <아바타>가 3D라는 옷을 입고 스크린을 통해 관객들 눈에 수놓았던 여러 장면들은 '보는 영화'의 혁명 그 이상이었다.
하지만 지금 극장에서 <아바타>를 본다면 그때만큼의 전율은 느낄 수 없을 것이다. 거기엔 다양한 이유들이 존재하겠지만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기술적으로 더 발전한 훌륭한 영화들이 많이 나왔기 때문이다(물론 2009년의 <아바타>보다 뛰어날 순 없다).
알프레드 히치콕의 <싸이코>나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같은 작품은 영화관을 찾는 요즘 관객들에겐 그저 오래된 영화들 중 하나일 뿐이다. <싸이코>의 스릴러는 <나를 찾아줘>의 스릴러보다 촌스러울 것이며,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우주는 <인터스텔라>의 우주보다 허접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클래식들이 빛나는 이유는 그 영화가 해당 장르에서 차용하고 있는 여러 부분들의 모태가 됐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기시감을 주는 스릴러의 클리셰나 우주 영화의 시각효과는 모두 <싸이코>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영향권 아래에 있다. 현대의 영화들은 그러한 장르적 문법이나 화면들을 더욱 발전시킨 것뿐이다.
이렇게 고전 명작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그 가치와 작품성이 더해진다. <벤허>가 어떤 장르영화의 기초가 되거나 어떤 장면을 처음 시도한 것은 아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작품의 위상이 올라가는 이유는 여타의 고전 명작들과 궤를 같이 한다.
<벤허>는 국내에서 처음 개봉했던 1962년 이후로 2019년인 올해까지 총 8번의 재개봉을 했다. 러닝타임이 너무 길다는 점과 종교영화라는 점에서 많은 관객들이 이 영화를 선택하는데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나 역시도 같은 생각을 가졌었기에 '꼭 봐야 하는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관람을 미뤄왔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얼마 전 영화관에서 본 필름 버전의 <벤허>는 지금까지 관람을 고민했던 나의 시간을 무색하게 만들 정도로 큰 감동을 안겨주었다.
혹시 아직까지도 러닝타임이나 장르적 색채 때문에 관람을 망설이는 관객들이 있다면 과감히 극장으로 향해볼 것을 추천하고 싶다. <벤허>가 명작인지에 대한 의심이 확신으로 변하는 데에는 단지 4시간밖에 걸리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