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감금되다
우선 숙소를 옮겼다.
고려사에는 늘 한국 여행자들이 한두 명 있었다. 그들과 노닥거리다 보면 하루가 금방 갔다. 나는 이른바 터줏대감이었고, 다른 사람들은 이틀이 멀다 하고 새로운 사람들로 바뀌었으니 이야깃거리가 떨어질 날이 없었다. 당연히 거기 있다가는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를 판이었다.
당시 내게 가장 절실했던 것은 돈이었고, 그다음으로 시간이었다. 나는 팔자 좋은 그런 사람들(여행 경비가 충분하고, 돌아갈 직장과 기다리는 가족들이 있는)과 노닥거릴 여유가 없었다.
저렴하면서도 글쓰기 좋은 숙소를 알아보았다. 티베트 절이 가장 좋았다. 전체적으로 많이 지저분하고, 따로 샤워장이 없는 것이 조금 아쉬웠지만 마을 한가운데 있어 편리하고, 방에 작은 발코니가 딸려 있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엉성한 나무 책상을 방 한가운데로 옮겨 놓고 글을 쓰다가 문득 고개를 들면 발코니 창으로 넓은 들판이 눈에 들어왔다. 자연히 하루종일 방 안에만 있어도 갑갑하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글쓰기 모드에 들어갔다. 티베트 절에는 한국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내가 나를 방해하지 않는다면 나를 방해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날부터 나는, 자로 잰듯한 생활을 시작했다. 아침 7시쯤 일어나 시장으로 가서 과일을 몇 개 사 왔다. 대개 망고나 바나나, 오렌지였다. 과일로 간단히 아침을 먹고 난 뒤 글을 쓰기 시작했다. 정확하게 12시까지.
12시가 되면 밖으로 나가 길거리 판자때기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흔히 ‘탈리’라고 하는 인도 백반이었다. 같은 탈리를 식당에 가서 먹으면 10루피쯤 했고, 길거리 판자때기 식당에서 옹색하게 먹으면 5루피쯤 했다. 1달러가 30루피쯤 할 때이니 대충 값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점심을 먹고 나면 곧바로 숙소로 돌아갔다. 바깥은 뜨거워서 어디 있을 곳이 없었다. 숙소로 가면 곧바로 낮잠을 잤다. 아주 달콤하게 잤다. 어떤 날은 1시간쯤 자고, 어떤 날은 2시간도 잤다. 시간을 정해 놓고 잔 것이 아니라 자고 싶을 만큼 실컷 잤다. 그래도 늘 3시 전에는 반드시 깨어났다.
지금도 그렇지만 나는 잠을 자고 나면 아주 머리가 맑다. 자연히 집중도 잘 된다. 낮잠에서 깨면 곧바로 다시 글쓰기 모드로 들어갔다. 정확하게 6시까지. 3시간 동안 아주 집중해서 글을 썼다.
6시가 되면 다시 밖으로 나갔다. 길거리 판자때기 식당으로 가서 또 인도 백반을 사 먹었다. 인도 백반은 내 입에 참 잘 맞았다. 싸고, 맛있고, 물리지도 않았다. 천만다행이었다.
밥을 먹고 나면 이번에는 숙소로 가지 않고 마하보디 대탑으로 갔다. 60미터 높이의 마하보디 대탑은 보드가야 한복판에 있었다. 대탑을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다. 티베트 절도 바로 대탑 앞에 있었다. 대탑 뒤에는 붓다가 그 밑에 앉아 깨달음을 얻었다는 보리수가 있었고, 대탑 안에는 경주 석굴암과 아주 비슷한 석실이 있었다.
대탑 석실에는 석굴암 불상과 거의 똑같은 불상이 놓여 있었다. 그 석실은 한국 불자들을 비롯해 전 세계 불교 신자들의 중요 방문처라 늘 사람들로 북적였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쓴 유홍준 선생은 보드가야 대탑의 석실을 본떠 만든 것이 경주 석굴암이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둘을 자세히 비교해 놓기도 했다. 아무튼.
대탑을 중심으로 네모나게 산책로가 만들어져 있었다. 해가 지면 많은 사람들이 그 길을 걸으면서 이른바 탑돌이를 했다. 나 역시 탑돌이를 하기 위해 저녁을 먹고 나면 반드시 대탑으로 갔다.
사람들 속에 섞여 오랫동안 걸었다. 운동을 겸해 걷는 동안 머릿속으로 무엇을 쓸 것인지 정리했다. 책상에 앉아 무엇을 쓸 것인지 생각할 정도로 내게는 시간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나는, 걸을 때 생각이 잘 난다. 뭔가 꽉 막혀 도무지 해결책이 보이지 않을 때, 나는 걷는다. 걸으면서 생각을 하면 좋은 아이디들이 많이 떠 오른다.
실컷 걷다가 9시가 되면 숙소로 돌아갔다. 걷는 동안 무엇을 어떻게 쓸 것인가는 이미 정리를 마쳤으니 책상에 앉으면 진도가 무척 잘 나갔다. 다만 지금처럼 컴퓨터로 쓴 것이 아니라 볼펜으로 인도산 갱지에 손으로 썼기 때문에 손가락이 무척 아팠다.
저녁 작업은 정확하게 11시까지 했다. 11시가 되면 자리에서 일어나 공동 수돗가로 가서 찬물을 한 바가지 끼얹고 들어왔다. 그런 다음 고려사 스님에게 배운 참선을 했다.
참선 중에서도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수식관(數息觀)을 했다. 수식관이란 들숨과 날숨을 하나로 계산해서 숨을 헤아리며 호흡에 집중하는 것이다. 스님한테 배운 대로 반가부좌를 한 채 99에서 거꾸로 1까지 헤아려 내려갔다. 아주 천천히 숫자를 세면서 호흡하다 보면 45분이 걸릴 때도 있었고, 50분이 걸릴 때도 있었다.
수식관을 하다 보면 잡념이 사라지면서 졸음이 쏟아진다.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잠시 눈을 감기라도 하면 순간적으로 아주 깊은 잠에 빠져버리기도 한다. 그래 봐야 실제로 잠이 든 시간은 3, 4초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사이 나는 대륙을 횡단하는 꿈을 꾸기도 한다. 그런 날이면 아주 실컷 잠을 자고 일어난 것처럼 몸이 개운하고 정신이 맑을 때도 있다.
아무튼, 졸음을 참아가며 1까지 헤아리고 나면 간단히 몸을 풀어준 뒤 곧바로 잠을 잤다. 수식관으로 머릿속의 잡념들을 웬만큼 비워냈으니 잠이 잘 왔다. 좀 과장하면, 대개 머리를 누인 지 몇십 초 안에 잠들었다(물론 나는 지금도 그렇지만 예전부터 잠을 잘 자는 편이다). 그리고 눈을 뜨면 다음 날 아침이었다.
나는 티베트 절에서 이런 생활을 두 달쯤 했다. 그러자 내가 계획했던 인도 가이드북이 얼추 완성되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고, 즐겁고, 보람되고, 가슴 두근거렸던 시절이었다. 내 인생에서 이런 날이 다시 올 수 있을까, 뭐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정말 좋았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