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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의 음악 Aug 20. 2023

원고 공수 작전

생면 부지의 사람들 도움을 받다

  

티베트 절에 스스로 감금당한 채 원고를 쓰고 있던 어느 날이다. 뙤약볕을 뚫고 고려사 스님이 오셨다. 서울에 있는 출판사에서 전화가 왔는데, ‘몇 날, 몇 일, 몇 시에 전화를 할 테니 고려사에 와 있어라’라고 하더라, 라는 말을 하셨다.     


그날이 되어 고려사로 갔더니 전화가 왔다. 출판사 사장은 몸은 건강하고, 원고는 잘 쓰고 있는지, 의례적인 인사말을 했다. 그러더니 원고를 한꺼번에 보낼 생각하지 말고, 어느 정도 모이면 보내라고 했다. 그러면 시간을 절약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누군가 내 글을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기분이 아주 좋았다. 나는 출판사 사장의 말대로 그때까지 써 놓았던 원고를 한국에 보내기로 했다. 4분의 1쯤 써 놓은 상태였다.      


사장은 ‘DHL’이라는 국제특송우편으로 보내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인도 우편 시스템이 영 미덥지 않았다. 그동안 인도 공무원들의 일처리를 보면서 너무 엉성해 기함을 한 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인도에 있는 동안 한국에서 온 우편물을 몇 차례 받은 적이 있다. 안전하게 잘 왔다. 하지만 다른 것이 아니라 원고였다. 잃어버리기라도 하면 큰 일이었다.      


나는 원고 뭉치를 들고 켈커타로 갔다. 인도 여행을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사람 편에 보낼 생각이었다. 그것이 가장 안전할 것 같았다. 당시 보드가야에서 켈커타는 기차로 하룻밤 거리였다. 오고 가는데 들어갈 여행경비와 시간을 생각하면 여러모로 무리였지만 그래도 나는 그쪽을 택했다.      


보드가야에도 한국인 여행자들이 많이 왔지만, 보드가야에 오는 한국 여행자들은 대부분 인도 여행을 시작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짧게는 보름에서 길게는 한 달 후에나 한국으로 돌아갈 사람들이었다. 그동안 원고를 갖고 다니다가 잃어버리기라도 하면, 그것도 낭패였다.      


인도 박물관(출처:픽사베이)


켈커타에는 태국의 카오산로드처럼 외국 배낭여행자들이 모이는 곳이 있었다. 인도 박물관을 중심으로 한 써더 스트리트가 그런 곳이었다. 써더 가에 가면, 싸구려 게스트하우스들이 몰려 있었고, 게스트하우스마다 남루한 행색의 배낭여행자들이 바글거렸다.      


나는 그곳에 머물며 여행을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여행자를 찾았다. 여행자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내 부탁도 흔쾌히 들어주었다. 나는 그 사람에게 봉투를 건넸고, 봉투에 주소를 적어 놨기 때문에 우체국에 가서 부쳐주는 수고만 해 달라고 했다.      


결론을 말하자면, 나는 그런 식으로 모두 네 번에 걸쳐 원고를 보냈다. 지금 나는 그들 네 명 가운데 한 사람만 기억하고, 나머지 세 사람은 전혀 기억을 못 한다. 모두 젊은 대학생들이었다는 것만 기억한다.      


네 명 가운데 기억하는 한 사람은 당시 유명한 분이었기 때문이다. 박지명 선생이라고, <히말라야의 성자들>이라는 책을 번역하고, 명상에 관한 책을 많이 쓴 분이었다. 박지명 선생은 마침 인도 여행을 끝내는 길에 보드가야에 들렀고, 내 이야기를 듣고는 흔쾌히 원고 공수 작전에 참여하겠다고 했다.      


천만 다행히도, 그 네 사람 가운데 한 명도 빠짐없이 무사히 원고를 전달했다.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받은 부탁이었는데, 하나같이 자기 일처럼 의무감을 갖고 해 주었던것이다. 훗날 한국에 돌아와 출판사 사장에게 이야기를 들어보니 약간 감동적이기도 했다.      


나는 우편으로 보내 달라고 부탁했는데, 세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 직접 원고를 갖고 출판사로 왔더라고 했다. 너무 중요한 것 같아 우편으로 보내기가 불안했다고 하면서...     


박지명 선생은 한국 도착 후 다른 일정이 있어 방콕에서 한국행 비행기를 타기 전에 미리 출판사에 전화를 한 모양이었다. 그러자 출판사에서 비행기 도착시간에 맞춰 직원을 공항으로 보내 원고를 받아 오게 했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모두 네 번에 걸친 원고 공수 작업이 무사히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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