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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의 음악 Sep 11. 2023

이 새벽에 웬일이에요?

 추웠지만 따뜻했던 그 해 겨울


분명 사람 발자국 소리였다.

며칠 전 입춘이 지났지만 책가방만 한 창밖은 캄캄했다. 

7시가 되어 날이 밝으려면 아직 제법 기다려야 했다.     


‘누구지?’     


오래된 시골 공소(신부가 상주하지 않는 작은 성당) 옆쪽에 덧대어 만든 방이라 이불속은 따뜻했지만 코끝은 시렸다.

특별히 올 사람도 없었거니와 이런 새벽에 찾아올 사람은 더더욱 없었다.     

길가에 있는 공소였고, 낡은 철제 대문은 경첩 하나가 떨어져 나가 완전히 닫히지 않았다.

옆으로 몸을 돌리면 옷에 먼지를 묻히지 않고도 능히 마당에 들어설 수 있었다.


출처:픽사베이


누군가 잘못 들어선 발걸음이라 믿으며 발자국 소리가 멀어지길 기대했다.     

기대와 달리 발자국 소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마침내 알루미늄으로 된 부엌문 여는 소리가 났다.

옛날 부엌이라 맨 시멘트 바닥이었으니 신발을 신고 들어와야 했다.     

걸을 때마다 파쇄석 밀리는 소리를 내던 발자국 소리는 뚜벅거리는 구두 소리로 바뀌었다.


두 평 남짓한 부엌에는 손바닥만 한 싱크대가 있었고, 그 위에 보잘것없는 살림살이들이 옹색하게 엎어져 있었다.     

싱크대 옆에는 뚜껑이 떨어져 나간 각진 구식 세탁기가 있었다. 

돌아가기는 했지만, 너무 오래되어 힘이 약했다. 

빨래라도 할 때면 옆에 서서 작대기로 저어 줘야 했다. 

말 그대로 반자동 세탁기였다.      


                                                                                               ***     


30년 전,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두고 있던 때다. 


신학교에서 나온 뒤 특별히 갈 데가 없어 걱정을 하자 같이 신학교 생활을 했던 한 선배 신부님이 관할 공소가 비어 있으니 겨울이나 나라고 했다.  

   

서른이 넘어 신학교에서 나왔지만, 사회생활을 할 준비는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신학교에서 배운 것들은 밥을 벌어먹고사는 데는 하등 쓸모가 없었다.

가난한 형에게 얹혀사는 홀어머니 집에 가서 신세를 질 넉살도 없었다.     


기숙사에서 쓰던 물건들 가운데 요긴한 것들만 골라 박스 하나에 담은 뒤 친구 승용차를 얻어 타고 공소로 향했다. 

그날, 선배 신부님은 40킬로그램짜리 쌀 한 포대를 직접 지고 왔다.     

선배 신부님과 함께 온 50대 초반의 여자 공소 회장님은 오래된 전기밥솥과 냄비, 몇 개의 밥그릇과 수저, 김치 한 통을 갖고 왔다. 

성당 앞에서 작은 슈퍼를 한다는 40대 아저씨는, 들고 온 라면 한 박스를 주황색 쌀 포대 위에 올려놓았다.     

그렇게 나의 겨울 공소 살이가 시작되었다.      


                                                                                                 ***     


노크도 없이 문이 벌컥 열렸다. 

망설임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 마치 제 집의 제 방문을 여는 것 같았다. 

선배 신부님이었다.      


“이 시간에 어쩐 일이세요?”     


밖은 여전히 깜깜했다. 

선배 신부님이 주임 신부로 있는 성당은 공소에서 차로 20분 거리에 있었다.     

신부님은 대답 대신 ‘어이 춥다’ 하더니 검은색 반코트만 벗고 이불속으로 다리를 뻗었다. 

그리고 그대로 누웠다.     

이불이 깔리지 않은 윗목은 차가웠다. 

'등이 시릴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새벽 미사 하고 바로 오는 길이야.”     


신부님은 그 말만 하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이내 편안한 숨소리를 내며 잠이 들었다.     

‘새벽 미사를 마쳤으면 사제관으로 갈 일이지 왜 여기로?’     

궁금증이 일었지만 참았다. 

사정이 있겠지.     


신부님은 두 시간 정도 달콤하게 자고 일어났다. 

일어나자마자 배고프다며 라면을 끓여 달라고 했다.

라면을 먹고 난 뒤 또 드러누웠다.     


그 사이 연탄을 갈고 불문 마개를 활짝 열어놓았더니 코끝이 시릴 정도는 아니었다.

겨울바람이 얼마나 세게 부는지 전깃줄 가르는 바람 소리가 휘파람 소리처럼 들렸다.     

선배 신부님은 ‘조금만 참지 그랬냐’고 했다.      


“뭘 참아요?”

“신부 되고 나니 이렇게 좋잖아. 평일인데 따뜻한 아랫목에서 잠도 잘 수 있고.”     


그렇게 말하고는 본인도 멋쩍었는지 허허 웃었다. 

그러고는 말이 없었다.     

긴 침묵이 주는 어색함을 견디기 힘든 쪽에서 한마디 하면 잠시 이야기가 오가다가 금방 다시 침묵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러다가 또 누군가 한마디 하면 별 내용도 없는 말이 이어졌다.     


얼마나 지났을까?

다시 창밖이 어둑해질 무렵, 가야겠다며 신부님은 일어나 앉았다.      


윗목에 던져 놓았던 반코트를 입은 신부님은 안쪽 호주머니에서 봉투 하나를 꺼냈다. 

6만 원이 들어 있었다. 

그중에서 3만 원을 내게 주었다.      


“둘이 반씩 나눠 가지자”

“웬 돈이에요?”

“사제 서품 기념일이라고 어제 손님이 왔었거든.”     


부엌문을 열고 마당에 나서자 찬바람이 얼굴을 할퀴듯 달려들었다.

선배 신부님은 저벅거리는 발자국 소리를 내며 공소 마당을 가로질러 갔다.     

신부님이 왜 새벽미사 끝에 도망치듯 공소로 왔는지 알 것 같았다.

막상 나오기는 했지만 젊은 신부가 추운 새벽에 마땅히 갈만한 곳이 없었으리라.

사제 서품 기념일은 오늘인데 그 손님은 왜 전날 사제관을 기습적으로 찾아와 봉투를 주고 갔는지도 이해가 갔다.     


신학교 시절, 도시 성당의 보좌 신부님으로 있던 어떤 선배를 찾아간 적이 있다. 

그날은 선배 신부님의 사제서품 기념일이었다.     

저녁을 잘 얻어먹고 헤어지려는데 용돈이라며 봉투 하나를 손에 쥐어 주었다. 

두툼했다.

하루 동안 신자들이 사제관으로 찾아와 주고 간 봉투가 100개가 넘는다고 했다.     


선배 신부님의 낡은 승용차가 산모퉁이로 사라지는 것을 보고 잔뜩 웅크린 채 돌아섰다.

먹구름이 낮게 깔린 하늘에서 어른 엄지손가락만 한 굵은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바람은 여전히 들판의 전깃줄을 끊어 먹을 듯 불어 대며 휘파람 소리를 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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