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연의 음악 Dec 03. 2023

파키스탄 에피소드 - 4

싸우스 코리아 대사관 입성

택시는 금방 시내 중심을 벗어나더니 한적한 외곽을 달렸다. 허허벌판이 이어졌고, 집들이 띄엄띄엄 보이기 시작했다. 


사우스 코리아 대사관이 정확히 어디 있는지도 모른 체 계속 택시를 타고 갈 수는 없어 지도상에 표시되어 있던 마지막 대사관 앞에서 내렸다. 어느 나라 대사관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대사관 입구로 다가가 경비원에게 사우스 코리아 대사관이 어디 있는지 물어보았다. 동종 업계 종사자여서 그런지 잘 알고 있었다. 왔던 길을 계속 가면 거의 끄트머리에 사우스 코리아 대사관이 있다고 했다. 


외곽이라 지나는 택시도 없었으니 걸어야 했다. 땡볕에 걷다 보니 띄엄띄엄 여러 나라 대사관들이 나왔다. 양식이 비슷비슷했다. 높은 담장이 둘러쳐 있고, 육중한 대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좀 전에 내가 들어갔다 나온 북한 대사관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었다.  


가도 가도 사우스 코리아 대사관은 나오지 않고 이상한 나라의 대사관들만 나왔다. 불안이 엄습해 웬 대사관 앞으로 가서 경비원에게 또 물어보았다. 다행히 좀 더 걸어가면 나온다고 했다. 


얼마나 걸었을까? 마침내 사우스 코리아 대사관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 그때의 가슴 벅참이란. 남의 나라에서 20년 넘게 살다가 영구 정착을  위해 고국에 돌아간 느낌이었다.  


하지만 반가움은 딱 거기 까지였다. 육중한 대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그 옆에 딸린 경비실도 텅텅 비어 있었다. 대사관에 가기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뭔가 차질이 생길 것 같은 불안감이 들기 시작했다.  


천만 다행히도 작은 대문에 인터폰이 달려 있었다. 눌렀다. 그런데 아무 대답이 없었다. 몇 번을 눌렀지만 마찬가지였다. 이번에는 문을 쾅쾅 두드렸다. 역시 아무 반응이 없었다. 문틈에 대고 '헬로우'를 연신 외쳤다. 그 소리가 건물 안까지 전해질 것 같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해 보았다.  


허무했다. 내가 기대한 대사관은 이런 것이 아니었다. 머나먼 이국 땅에서 만난 동포를 반갑게 맞아줄 그런 대사관을 기대했다. 시원한 음료수라도 한 잔 얻어 마실 수 있는 그런 대사관을 기대했다. 그런데 음료수는커녕 사람 그림자도 보지 못할 줄이야.


얼마나 문을 두드리고 난리 법석을 떨었을까? 한 참 만에 안에서 누가 나왔다. 파키스탄 아저씨였다. 모양새가 경비원인 것 같았다. 


"무슨 일로 오셨수?"

"음, 난 대한민국 사람인데요. 여기 대사관에 볼 일이 있어 왔으니 일단 문을 좀 열어 주시오. 안에 들어가서 한국인 직원을 만나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겠소이다."


그렇게 말하면, 그 아저씨가 냅다 문을 열어줄 것이라 생각했다. 왜냐하면 나는 한국인이었으니까. 한국 대사관은 외교법상 한국의 영토로 간주되는 곳이니까. 그런데 파키스탄 아저씨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했다. 


"지금 대사관에 한국인이 아무도 없슈다. 모두들 밖으로 나갔슈. 약속을 하고 다시 오슈"


기가 막혔다. 자국민이 자기 나라 대사관에 업무를 보려고 왔는데 약속은 무슨... 그리고 평일 업무 시간에 대사관에 한국인 직원이 아무도 없다는 것도 이해 가지 않았다. 무슨 전시 상황도 아니고...


제법 오래 실랑이를 했지만 나는 결국 대사관 문턱도 넘지 못하고 돌아와야 했다. 내가 불쌍해 보였는지, 파키스탄 아저씨가 전화번호를 적어 주면서 미리 전화를 하고 오라고 했다. 


사우스 코리아 대사관에 입성하다


다음 날, 대사관에 전화를 걸었다. 파키스탄 사람이 받았다. 한국 사람이라고 밝히고 영사든 대사든 서기관이든 아무나 바꿔 달라고 했다. 잠시 뒤 아리따운 한국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자초 지종을 말하고 언제 가면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물었다. 


그날 오후 다시 사우스 코리아 대사관에 갔다. 약속을 하고 가서 그런지 이번에는 쉽게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로비 안에는 한국인 남자 직원 한 명과 여자 직원 한 명이 있었고, 볼일을 보러 온 파키스탄 사람들이 서너 명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여담인데, 로비에 있던 한국인 여직원은 영어를 못하는지, 파키스탄 사람들과 바디랭귀지로 의사 소통을 하고있었다. 대사관 직원이 영어를 못한다는 것이 참 이해가 안갔다. 아무튼)


파키스탄 한국 대사관. 지금 이런 모습이라는데, 내가 그때 갔던 대사관은 이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그 사이 새로 지었는지, 그것까지는 모르겠다. 


나는 한국인 남자 직원을 만나 내 사정을 이야기하고 증명서 한 장만 써 달라고 했다. 인도에 왜 다시 들어가려고 하느냐는 질문에 인도 가이드북을 쓰고 있는 중이라고 사실대로 이야기했다. 그래서 그런지 무척 협조적이고 우호적이었다.  


그 직원은 내게 들은 이야기를 토대로 그 자리에서 A4  반 장 정도의 확인서를 써 주었다. 정확한 내용은 기억이 안 나는데, 이 사람은 선량한 대한민국 사람으로서 귀국에 위해를 가할 그런 사람이 아니고....뭐 그런 내용이었던 것 같다.


그날 오후, 숙소로 돌아온 나는 내 나름의 소명서를 한 장 썼다. 말보다 글로써 내 사정을 이야기하는 게 더 정확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머리를 굴러가며 편지지 두 장 분량의 소명서를 쓴 뒤, 같은 숙소에 머물던 서양 친구들에게 교정을 받기도 했다. 


다음날, 비자 신청서와 사우스 코리아 대사관에서 받아온 증명서와 내가 직접 쓴 소명서를 들고 다시 인도 대사관으로 갔다. 인도 대사관 주변에는 여전히 엄청난 수의 파키스탄 사람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외국인 전용 문을 열고 로비로 들어갔다. 그 안은 여전히 시원하고 쾌적했다. 로비에는 아무도 없었고, 창구에는 곰돌이 푸처럼 생긴 푸근한 인상의 그 사내가 앉아 있었다. 그 사내 뒤로 내게 쌀쌀맞게 굴었던 그 꼬장꼬장한 노인네가 앉아 있었다.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준비한 서류를 창구에 내밀었다. 곰돌이 푸 같이 생긴 사내가 비자 신청서와 함께 건넨 두 장의 첨부 서류를 살펴보았다. 심장이 콩닥콩닥했다. 그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내 기대와 달리 사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고는 그 서류들을 들고 꼬장꼬장한 그 노인네에게 갔다. 노인네는 두 장의 첨부 서류를 보더니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들었다. 


불안했다. 두 사람의 몸짓으로 보아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나도 모르게 하느님, 부처님을 불렀다. 힌두교의 시바와 비슈뉴, 자이나교의 마하비라까지 마구 불러내 빌었다.  


하지만... 


꼬장 꼬장한 그 노인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것이 보였다. 기분 좋아 일어나는 폼새가 아니었다. 손에 든 첨부 서류를 팔랑거리며 창구 쪽으로 오더니 나를 보고 소리를 꽥 질렀다. 


"내가 원한 게 이게 아니라구!"


노인네는 두 장의 첨부 서류를 곰돌이 푸처럼 생긴 사내가 앉아 있는 창구에 휙 던지더니 사라져 버렸다. 


'오 마이 갓! '


나는 머릿속이 하얘지는 것이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의 이전글 파키스탄 에피소드 - 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