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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의 음악 Nov 14. 2023

파키스탄 에피소드 - 3

싸우스코리아 대사관 찾기

‘인도에 왜 들어가려고 하다니?’     


이유를 대라면 수십 가지도 더 댈 수 있었지만, 그렇게 대 놓고 물으니 딱히 댈 이유가 없었다. 실제로 인도에서 갈만한 곳은 다 가봤고, 있을 만큼 있었기 때문에 인도에 안 들어가도 아쉬울 것도 없었다. 그러니 딱히 갈 이유가 없기도 했다.      


그런데도 나는 인도에 들어가야 했다. 왜? 한국으로 돌아갈 비행 값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다. 내가 아무 말도 못 하고 가만히 서 있자 노인네는 선심 쓰듯 한마디 하고는 돌아서 가버렸다.      

“니네 나라 대사관에 가서 확인서(또는 보증서) 받아와”     


확인서라 했는지 보증서라 했는지, 또는 다른 말을 했는지 잘 못 알아들었다. 아무튼, 한국 대사관에 가서 뭔가를 받아 오라고 한 것은 분명했다.  곰돌이 푸처럼 생긴 젊은 직원이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신청서를 돌려주었다. 영어를 잘했다면 뭔가 조리 있게 어필했겠지만, 당시 나의 영어 실력은 복잡하게 얽힌 문제를 해결할 정도는 아니었다.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돌아서자 프랑스 친구가 안타까운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실내가 조용했으니 꼬장꼬장한 노인네가 한 말을 다 들은 모양이었다.      


둘이서 밖으로 나왔다. 햇볕이 강해 정수리가 벗겨질 것처럼 뜨거웠다. 여전히 많은 파키스탄 사람들이 대사관 담벼락을 따라 줄을 서 있었다. 저 사람들이야 기다리면 비자가 나오겠지만 나는 기다려도 안 나올 수 있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파키스탄 남자들이 부러울 지경이었다.  

    

만약 비자를 받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가든지, 비자를 수월하게 받을 수 있는 네팔로 가든지 해야 한다. 하지만 내게는 비행기를 타고 갈 돈이 없었다. 수중에 있는 돈이라곤 100달러 남짓이 전부였다. 파키스탄에서 네팔까지 비행기를 타고 가려면, 적어도 250달러 이상이 필요했다. 낭패도 이런 낭패가 없었다.      


내가 너무 안 돼 보였는지 프랑스 친구가 자기 숙소에 가서 좀 쉬었다 가라고 했다. 인도 대사관에서 가깝다고 했다. 너무 더워 그러고 싶었지만 내 처지가 그렇지 못했다. 얼른 한국 대사관으로 가서 확인서인지 보증서인지를 받고 싶었다. 나는 고맙지만 사양하고 한국 대사관으로 바로 가겠다고 했다. 프랑스 친구는 행운을 빌어주며 이렇게 말했다.      


“어이 코리언, 다음에 인도 대사관에 갈 때는 옷을 좀 차려입고 가.”     


나는 프랑스 친구의 말을 금방 알아들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게는 차려입을 옷이 없었다. 젠장.      


돈에 여유가 없었지만, 택시를 탔다. 당시 돈 못지않게 아쉬운 것이 시간이었다. 파키스탄에 오래 머물면 머물수록 돈이 더 들었기 때문이다.      


한국 대사관으로 갑시다     


택시를 타기 전, 나는 운전사에게 ‘싸우스코리아 대사관’을 아냐고 몇 번이나 물어보았다. 내가 택시 기사에게 그렇게 물은 것은 이유가 있었다. 파키스탄은 남북한이 동시에 수교를 맺고 있는 나라였고, 그때만 해도(김일성이 살아 있을 그때를 말함. 김일성은 1994년에 죽었고, 내가 파키스탄에 간 것은 1994년이긴 하지만 김일성이 죽기 전이였다) 동남아시아에서는 남한보다 북한이 좀 더 영향력이 있었다.      


더구나 당시 파키스탄은 북한과 아주 밀접하고 우호적인 나라였다. 그에 비해 남한은 파키스탄 입장에서는 변방의 나라였다. 다른 동남아시아도 사정이 비슷했는데, 실제로 태국 방콕에서 택시를 타고 ‘한국 대사관으로 갑시다’하면 100% 북한 대사관으로 데리고 가던 시절이었다.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몇 번이나 확인했던 것이다. 


택시 운전사는 예의 그 ‘노 프라블럼’을 연거푸 외치더니 무조건 타라고 했다. 상황이 상황이었던지라 나는 일단 택시에 올라탔다. 20여 분 갔을까? 택시 기사가 다 왔다며 내리라고 했다. 가까워서 다행이었다. 


한적한 주택가였다. 운전사는 반이 열려 있는 큰 철대문을 가리키며 ‘코리아 엠버시’라고 했다. 3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가 세발자전거를 타고 마당에서 놀고 있었다. 무척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주택가에 있었지만, 가정집은 아닌 것 같았다.     


택시는 이미 사라졌고, 나는 열린 철 대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갔다. 세발자전거를 타던 아이가 나를 두어 번 쳐다보더니 이내 흥미를 잃었는지 계속 자전거를 타고 놀았다. 동양 꼬마애인 걸 보니 한국 대사관이 맞기는 맞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둘러봐도 그 꼬마 말고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열려 있는 현관문을 통해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햇빛이 강한 바깥에 있다가 안으로 들어가서 그런지 실내가 어두컴컴했다. 그리고 조용했다. 마치 방학 중에 찾아간 학교 복도 같았다. 그때 정면에 게시판 같은 것이 눈에 들어왔다. 사진과 이런저런 안내문들이 붙어 있었다. 가까이 가서 살펴보았다.      


‘어머나!’     


김일성 사진과 북한군 사진과 북한의 평양일 것 같은 사진들이 잔뜩 붙어 있었다. 갑자기 다리가 후들거렸다.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나는 살며시 돌아서서 마당으로 나왔다. 세발자전거를 타는 꼬마 말고는 여전히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일단 철 대문을 지나 밖으로 나왔다. 그제야 철대문 한쪽 기둥에 붙어 있는 동판이 보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사관...’ 뭐 그렇게 적혀 있었던 것 같다.      


캄보디아 북한 대사관 모습. 파키스탄에 있던 북한 대사관도 이와 비슷한 분위기였던 것 같다. 


휴- 

당시만 해도 남한 사람이 북한 사람을 만나는 것은 불법이었다. 남한 사람이 북한 사람을 만나려면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했다(법은 그렇게 되어 있었지만 실제로 그렇게 집행이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다행히 나는 아무도 만나지는 않았다. 마당에서 세발자전거를 타고 있던 꼬마와 눈이 두어 번 마주친 것도 ‘만남’의 범주에 드는 것이라면, 나는 그 무시무시한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셈이었다.     


도대체 싸우스코리아 대사관은 어디 있는 거야?


본의 아니게 북한 영토 깊숙한 곳까지 들어갔다 나온 나는, 누가 볼세라 주택가를 빠져나와 큰길로 나갔다. 다시 손을 마구 흔들어 택시를 잡았다. 몇몇 운전사를 붙잡고 ‘싸우스코리아 엠버시’를 외쳤다. 하지만,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택시 기사도 모르는 싸우스 코리아 엠버시를 어디 가서 찾을까?      


그때 머리에 떠오른 사람이 있었다. 인도 대사관에서 만났던 프랑스 친구였다. 숙소가 인도 대사관 근처라고 했으니 그 주변에 가면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친구가 손에 들고 있던 <론리 플리넷>(영문판 가이드북)에 있는 이슬라마바드 지도를 보면 우리나라 대사관이 어디쯤 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택시를 타려고 하는데, 마침 택시 한 대가 서더니 서양 배낭족 두 명이 내렸다. 인도 길거리에서는 흔하게 만나는 사람이 서양 배낭족들이었지만 파키스탄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더구나 여자 배낭족은 그때까지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택시에서 내린 두 사람은 그 귀한 여성 배낭족 두 명이었다.     


내가 하도 반가운 얼굴로 그들 앞에 다가서자 두 사람은 조금 경계하는 눈빛이었다. 나는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들고 있는 <론리 플리넷>을 가리키며 잠깐만 보여달라고 했다. 앞뒤 설명도 하지 않았지만 내 얼굴에서 다급함이 느껴졌는지 그녀는 흔쾌히 보여주었다.      


얼른 이슬라마바드 지도 쪽을 펼쳤다. 내가 유일하게 아는 인도 대사관부터 찾았다. 거의 도시 한 복판에 있었다. 거기서 가까운 곳에 방금 내가 들어갔다 나온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사관도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싸우스코리아 엠버시는 보이지 않았다.      


태국 대사관도 있고, 듣도 보도 못한 온갖 나라의 대사관들이 다 표시되어 있었는데 88올림픽을 치른 대한민국 대사관이 없다니...

     

내가 싸우스코리아 엠버시를 못 찾아 당황해하자 자신의 가이드북을 빌려준 친절했던 그녀가 같이 찾아주기 시작했다. 하지만 잠시 뒤 안타까운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적어도 지도상에는 없어’라는 의미인 것 같았다. ‘내가 봐도 그런 것 같애’ 하면서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모깃소리로 ‘고마웠어’라고 말했다. 


그녀가 씩- 웃었다. 그리고 가이드북을 접었다. 나는 다시 한번 고맙다는 말을 하고 돌아섰다. 그때였다. 갑자기 그녀가 다시 가이북을 펼치더니 ‘좀 기다려 봐’ 했다. 그러고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이슬라마바드 지도를 쳐다보았다. 이번에는 옆에 가만히 서 있던 그녀의 친구도 합세해 지도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잠시 뒤. 그녀가 지도 위에 손가락을 올려놓고 내게 말했다.      


“내 생각에 싸우스코리아 엠버시는 이 길을 따라 쭉 가면 나올 것 같아.”     


그녀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은 지면이 모자라 지도가 끝나는 곳이었다. 그 지역은 이른바 대사관 ‘D지구’ 뭐 그런 곳이었다. 그러니까 파키스탄 입장에서 별 중요하지 않은 나라들의 대사관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곳이 D지구였는데, 그곳에서도 우리나라 대사관은 지도에도 표시 되지 않을 정도로 끝에 있는 모양이었다.  

    

그녀의 말이 맞을 것 같았다. 그 상황에서는 그렇게 생각해야 했고, 그녀의 추리가 맞기를 바라야 했다. 그녀는 자신들이 방금 내린 택시 운전사에게 그 지도를 보여주었다. 운전기사는 잘 안다며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다만 좀 멀어서 택시비가 많이 나올 거라 했다. 나는 앞뒤 가릴 상황이 아니었다. 그녀에게 다시 한번 고맙다고 말한 뒤 택시에 올라탔다.     


휴 – 

나는 싸우스코리아 엠버시를 무사히 찾아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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