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대국가의 적대 국민
서울 교보문고 사거리에서 광화문 쪽으로 걸어올라 가면 오른쪽에 미국 대사관이 있다.
불과 2,30년 전만 해도 미국 대사관 근처에 가면 불편한 풍경을 볼 수 있었다.
미국 비자를 받으려는 사람들의 줄이 대사관 바깥까지 이어져 있었다.
줄은 단순히 바깥까지 이어진 것만 아니라, 아예 대사관을 둘러싸고 있을 정도로 길었다.
얼마나 길었는지, 그 앞을 참 많이 지나다녔지만 줄 끝을 본 적이 없다.
한낮에는 뜨거운 햇볕을, 비가 오면 비를, 눈이 오면 눈을 맞으며 한국 사람들은 미국 비자를 받기 위해 그런 불편(수모)을 겪어야 했다.
다른 곳도 아닌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 한 복판, 광화문 앞에서 말이다.
그 모습을 보면서, 당시 정부에서 그렇게 떠들든 한미 동맹이니, 우방이니 하는 말들이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았다.
정말 동맹국이라면, 정말 우방이라면, 우방국의 국민들이 비자를 받기 위해 그렇게 불편(수모)을 겪게 나 두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미국 정부도 이유는 있었다.
당시 한국인들의 미국 내 불법 체류자가 많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과 뙤약볕에 줄을 서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불법 체류자 문제 때문에 비자 발급을 까다롭게 할 수는 있다.
그렇다고 우방국 국민에게 그런 원시적인 수모를 줘서는 안 된다.
하지만 미국은 우리 정부의 여러 차례 권고에도 불구하고 수십 년 동안 그 관행을 버리지 않았다.
만약 두 나라가 우방이 아니라 적대적인 관계에 있는 나라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비자를 발급받아 미국으로 들어가려는 사람은 잠재적으로 미국에 위협을 가할 수 있는 나라의 국민인 만큼 그런 정도의 페널티를 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과 한국은 한미동맹으로 똘똘 뭉쳐 있다고 서로가 떠들어 댈 때다.
그런데 현실에서 한국인들은 미국으로부터 적대국의 국민 수준 대접을 받았다.
그것이 당시 광화문 미대사관 비자 발급 줄이 잘 말해주고 있었다.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 있는 인도 대사관이 딱 그랬다.
내 눈에 족히 천 명은 훨씬 넘을 것 같은 파키스탄 남자들이 비자를 받기 위해 인도 대사관을 에워싸고 있었다.
그들은 이중삼중으로 줄을 서 있었는데, 내 눈에는 파키스탄 사람들로 인도 대사관이 점령당한 것처럼 보였다.
나는 아차, 했다.
그제야 인도와 네팔의 관계와 인도와 파키스탄의 관계가 같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인도는 네팔을 외국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두 나라 사람들이 국경지대에서 사이좋게 장사를 했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달랐다.
서로 잡아먹지 못해 으르렁거리는 사이였다.
실제로 인도 북부 파키스탄 접경지역은 국경선이 분명하지 않아 지금도 가끔 소규모 무력충돌이 벌어지곤 한다.
이처럼 두 나라가 적대관계에 있다 보니, 인도 정부 입장에서는 인도 비자를 받으러 오는 파키스탄 사람들이 달가울 리 없었을 것이다.
달갑지도 않은 그들을 인도 대사관이 '적절한 대우'를 해 줄리 만무하다.
대사관 바깥 땡볕에 줄 세우기는 기본이고, 온갖 트집을 잡아 비자 발급을 거부한다는 사실을 그때 알았다.
그제야 나는 비자 발급을 받기 위해 길게 줄을 서 있는 파키스탄 사람들이(99.9%가 남자였다) 한결같이 잘 차려입고 있다는 것도 알아차렸다.
그 더운 날씨에 넥타이에 정장 차림을 한 사람도 많았고, 파키스탄 사람들이 입는 전통 옷인 롱기도 아주 깨끗하게 입고 있었다.
길에 다니는 여느 파키스탄 사람들과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적어도 옷차림에서 책잡히고 싶지 않다'는 의지가 보였다고 할까?
그에 비해 나는?
머리와 수염은 봉두 난발인 데다 완전 노숙자 꼴이었다.
불안했다.
네팔에서 인도 비자받듯 받을 줄 알고 왔는데, 비자받기가 결코 쉽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인도 정부 입장에서 적대국의 국민은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적대국인 파키스탄에서 인도로 들어가려고 하는 사람인 것은 분명했기 때문이다.
넓은 의미에서 자국에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잠재적 위험인물에 속했다.
아무튼, 그런 것은 나중에 걱정할 문제였고, 땡볕에 줄을 서서 접수할 생각을 하니 하늘이 노랬다.
끝을 찾는 것조차 쉽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웬 젊은 서양 친구가 나타났다.
말쑥하게 차려입은 것이 귀공자 스타일이었다.
그 친구도 인도 비자를 받으러 온 것 같았다.
내가 문 앞에서 서성거리자 '왜 안 들어가?' 하더니 들어가자는 손짓을 했다.
무슨 말인지 몰라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그때 내 눈에 들어온 푯말이 하나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정말 구세주를 만난 기분이었다.
작은 출입문 위에 '외국인 전용'이란 푯말이 붙어 있었다.
서양 사내는 그 문으로 들어갔다.
나도 얼른 따라 들어갔다.
별천지가 따로 없었다.
바로 몇십 미터 밖에는, 천 명도 훨씬 더 되는 파키스탄 사람들이 뙤약볕에서 2중 3중으로 줄을 선 채 인도 대사관을 에워싸고 있었는데, 외국인 전용 로비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와 같이 들어간 그 친구와 달랑 두 명뿐이었다.
프랑스에서 왔다는 그 친구가 먼저 비자 신청을 하는 사이, 나는 로비에 있는 소파에 편안하게 앉아 있었다.
실내는 깨끗했고, 에어컨이 나와 무척 시원했다.
비자 신청을 받는 직원은 곰돌이 푸처럼 생긴 것이 참 친절했다.
전혀 적대적이지 않았다.
나는 괜한 걱정을 했다는 생각에 절로 웃음이 났다.
비자를 신청해 놓고, 비자가 나오는 동안 어디를 갔다 올까, 뭐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내 차례를 기다렸다.
잠시 뒤, 비자 접수를 끝낸 프랑스 친구가 돌아서서 내 쪽으로 왔다.
나는 얼른 일어나 창구로 갔다.
신청 서류를 건넸다.
내가 내민 신청 서류를 보던 직원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몇 번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내 서류를 갖고 뒤에 앉아있는 다른 직원에게 가서 보여주었다.
흰머리가 희끗희끗한 것이, 꼬장꼬장한 노인네였다.
자기 선에서는 해결할 수 없는 어떤 문제가 내게 있는 모양이었다.
잠시 뒤, 노인네가 창구 쪽으로 오더니 아주 꼬장꼬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인도에 왜 들어가려고 하니?"
그동안 수차례 인도에 드나들었지만 그런 질문을 받기는 처음이었다.
너무 뜻밖의 질문이라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라 나는 멍하니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