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인을 만나다
앞이 캄캄했다. 수중에 남은 돈이라곤 백 몇십 달러가 전부였으니 파키스탄에서 비행기로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당시 파키스탄에서 한국으로 가는 직항 비행기도 없었지만, 있다고 해도 최소한 500달러는 들것이었다.
나는 창구 앞 의자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밖으로 나가봤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창구에 앉아 실무 처리를 하던 곰돌이 푸 직원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비자 신청을 하러 온 다른 외국인은 아무도 없어 로비에는 창구 직원과 나뿐이었다.
나는 하염없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꼬장꼬장한 그 노인네가 다시 나타나면 한번 더 사정해 볼 생각이었다. 할 수 있는 것이 그것뿐이었다. 곰돌이 푸 같이 생긴 직원은 표정으로 보아 나를 도와주고 싶어 하는 것이 분명했지만, 불행히도 권한이 없는 것 같았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기다리고 있던 꼬장꼬장한 노인네는 나타나지 않고 중년의 웬 인도 신사가 로비에 들어섰다. 말쑥한 차림의 그 신사는 로비를 가로질러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쪽으로 걸어갔다.
그때였다. 창구에 앉아 불쌍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던 곰돌이 푸 직원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쏜살같이 밖으로 나왔다. 곰돌이 푸 직원은 이미 2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반 이상 올라간 그 신사에게 달려가 뭐라고 속삭였다.
신사는 걸음을 멈추더니 곰돌이 푸의 이야기를 들었다. 잠시 뒤, 신사가 고개를 돌리더니 나를 쳐다보았다. 그 눈빛에 자애로움이 가득했다. 신사는 돌아 서더니 계단을 내려와 내게 다가왔다. 내 옆에 앉은 신사는 아주 인자한 얼굴을 한 채 물었다.
"직원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미 인도에 1년도 훨씬 넘게 있었다는데 왜 다시 인도에 들어가려 합니까?"
신사의 목소리에서 나는 이 사람이 나를 도와주려고 하는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나는 대사관에서 받아온 확인서와 내가 쓴 소명서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아직 가이드북을 마무리하지 못해 인도에 다시 들어가려고 한다는 이야기를 주섬주섬했다. 신사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뒤. 신사가 내게 물었다.
"3개월만 하면 되겠습니까?"
당시 인도 관광비자는 6개월짜리 멀티플이 일반적이었다. 6개월 안에는 몇 번이고 인도를 드나들 수 있는 그런 비자였다. 외국 관광객들이 인도에 들어가면 대부분 인접 국가인 네팔을 오갔기 때문에 그런 비자를 내주었던 것이다. 그 신사가 3개월만 하면 되겠냐고 물어본 것은 그 때문이었다. 나는 3개월만 하면 충분히 가이북을 마무리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신사는 창구에 있는 곰돌이 푸 직원을 불렀다. 곰돌이 푸 직원이 로비로 나오자 '이 사람에게 3개월짜리 비자를 내줘요.' 뭐 그런 말을 하는 것 같았다.
그 순간 곰돌이 푸 직원은 얼굴에 환한 미소를 짓더니 내 손에서 비자 신청서를 낼름 뺏어 안으로 들어갔다. 정말 자기 일처럼 기뻐한다는 것이 느껴졌다. 생면 부지의 사람인 나를 도와주기 위해 애쓰는 그 직원이 너무 고마웠다.
3개월짜리 비자를 허락한 신사는 아주 인자한 얼굴로 눈인사를 한 뒤 다시 2층으로 올라갔다. 곰돌이 푸 직원은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바로 그 자리에서 3개월짜리 비자를 발급해 주었다. 정말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나는 곰돌이 푸 직원에게 몇 번이나 고맙다고 이야기했고, 그는 남은 여행 무사히 잘하라고, 가이드 북도 잘 마무리하라는 덕담을 해 주었다.
밖으로 나왔다. 쨍한 햇볕이 정수리를 바늘로 찌르는 듯했다. 그래도 기분이 좋아서인지 한동안 땡볕을 고스란히 맞으면서 걸었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나도 알 수가 없었다. 짐작 건데, 때마침 꼬장꼬장한 노인네보다 더 직급이 높은 사람이 로비에 들어섰고, 나를 도와주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던 곰돌이 푸 직원이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 신사에게 달려가 내 사정을 이야기한 것 같았다. 너무나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원래는 비자가 나오는 동안 북부에 있는 훈자 마을에 갔다 올 생각이었다. 그런데 며칠 사이 큰 일을 겪고 나니 갑자기 인도가 너무 그리웠다. 나는 일정을 변경해 다음 날 당장 인도로 돌아갈 계획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