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 보면 쓸데있는 '날아라 개천용' 배경지식들을 모았습니다!
[허프 뇌피셜] 이 드라마 흥할까, 망할까?
‘드라마는 4회 승부다!’ 시청자들 사이에 도는 말입니다. 초반 4회까지 반응으로 짧게는 10회, 길게는 20회 분량의 드라마가 흥할 지 망할 지 점칠 수 있다는 뜻이죠. 과연 그럴까요? 늘 그렇진 않습니다. 시작할 때 1% 시청률이었던 작품이 끝날 무렵엔 ‘국민 드라마’가 돼 있기도 하니까요.
이 코너에서는 화제작들의 첫 주 방송을 보고 그 흥망성쇠를 ‘허프 뇌피셜 지수’로 예측합니다. 지수가 높을 수록 흥할 가능성이 높고, 낮을 수록 반대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 예측이 맞았는지 틀렸는지는 드라마가 끝난 후 독자들과 함께 되짚어 보겠습니다. 연말 [허프 뇌피셜]에 등장했던 드라마들을 한꺼번에 돌아보는 [허프 뇌피셜 어워드]도 기대해 주세요.
이번 드라마는 권상우와 배성우가 풀어버린 ‘판도라의 보자기‘, SBS ‘날아라 개천용’입니다.
사전정보. ‘날아라 개천용‘의 당초 제목은 ‘지연된 정의’였습니다. 이 드라마의 원작 르포집 이름이죠.
책은 ‘재심 전문 변호사‘이자 ‘법조계 대표 개천용’인 박준영 변호사가 맡았던 삼례 나라슈퍼 강도치사 사건 등 재심 사건 3건을 바탕으로 합니다. 박 변호사는 수원역 노숙소녀 살인 사건, 익산 약촌 오거리 택시기사 살인 사건 등 무고한 사람들이 죄를 뒤집어쓴 판결들을 공론화하고 재심을 통해 이들의 명예를 회복했습니다. 최근 이춘재가 진범으로 밝혀진 8차 화성 연쇄살인사건 수사 당시 자백을 강요당하며 20년을 죄 없이 복역한 윤모씨의 재심을 맡겠다고 선언하기도 했죠.
이 중 약촌 오거리 사건은 특히 다양한 작품에 등장했습니다. 배우 정우 주연의 영화 ‘재심‘으로 만들어진 데 이어 KBS 2TV ‘아버지가 이상해‘, ‘슈츠’에서도 언급됐습니다. 박 변호사가 변호한 재심의 사례들이 얼마나 극적이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재밌는 것은 ‘날아라 개천용’의 각본을 쓴 인물이 ‘지연된 정의’의 저자 박상규 기자라는 사실입니다. 현재 ‘진실탐사그룹 셜록‘의 대표인 박 기자는 위디스크 양진호 회장의 ‘갑질’ 사건 등 각종 비위를 가장 먼저 보도한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앞서 박상규 기자는 삼례 나라슈퍼 사건과 약촌 오거리 사건 외에도 아버지를 죽인 범인으로 몰린 완도 무기수 김신혜 사건의 재심을 추진하기 위해 박 변호사와 손잡고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했습니다. ‘재심 3부작’이라고도 불리는 이 프로젝트들은 매번 목표금액 100%를 가뿐히 달성하며 온라인 세상을 뜨겁게 달궜고, 결국 억울한 이들이 다시 재판을 받게 하는 계기를 만들었습니다.
박 변호사와 박 기자에게는 ‘개천에서 난 용‘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목포대학교를 중퇴하고 독학으로 사법고시를 준비한 박 변호사는 그야말로 ‘몇 안 되는 고졸 변호사’ 중 한 명입니다. 박 기자 역시 대학을 졸업하고 타워팰리스 공사 현장에서 막노동을 하고 하루 3000개의 모니터를 만드는 삼성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로 살았다고 합니다. 변호사와도, 기자와도 크게 연이 없던 두 사람은 현재 그 누구보다도 변호사답고, 기자다운 인물이 돼 있습니다.
사회적 약자 입장에서 항상 세상을 본다는 점도 이들의 공통점입니다. 사실 박 변호사의 이력을 ‘재심 전문 변호사‘란 간단한 표현으로 눙치기엔 그가 다룬 ‘재심‘이란 단어의 무게가 엄청납니다. 박 변호사가 맡은 재심은 성범죄를 저지른 연예인이 형이라도 줄여 보겠다며 청구하는 재심이 아닙니다.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라고 외치기엔 너무나 힘이 없는 약자들이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살기 위해 치는 몸부림에 가깝습니다.
수식어에 ‘재심 전문’을 추가한 뒤 박 변호사는 2016년 사실상 파산을 선언하고 박 기자와 합심한 크로우드 펀딩을 통해 다시 활동할 힘을 얻었습니다. 대한민국 사법 역사에 두고두고 회자될 재판들을 해 낸 입지전적 인물의 생활이라기엔 씁쓸함이 남습니다. 그럼에도 박 변호사는 약자들의 재심 변호만 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습니다.
박 기자 역시 ‘강한 자에게 강하고, 약한 자에게 약한’ 보도를 이어 왔습니다. 그는 ‘지연된 정의‘의 자기소개글에서 ”시인 김중식의 ‘식당에 딸린 방 한 칸’을 사랑한다”며 ”나를 닮아 있거나 내가 닮아 있는 힘 약한 사물을 나는 사랑한다”는 구절을 인용했습니다. 박 기자의 펜이 약자들의 편에 서 있다는 방증입니다.
덕분에 ‘날아라 개천용‘은 이례적으로 양육비해결총연합회의 애정 어린 홍보를 받기도 했습니다. 박 기자가 대표로 재직 중인 ‘진실탐사그룹 셜록’에서 양육비 미지급 추적 기사를 꾸준히 보도한 덕입니다. 그는 이들에게 고마움을 표하며 ”취재원이자 기사 주인공들이 시청자로 적극 나서는 상황”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요즘 세상엔 ‘세상이 이런 일이’ 급의 선순환입니다.
관련 인물들의 이력이 워낙 대단하다 보니 배우들의 이야기를 빼먹을 뻔했습니다. ‘날아라 개천용‘에는 배우 권상우와 배성우가 출연합니다. 낡은 표현이지만 ‘믿고 보는 배우’들입니다. 게다가 이 드라마는 두 사람이 특히 잘 하는 코미디가 주된 정서이다보니, 기대감을 감출 수 없었죠. 배우 정웅인, 김응수, 조성하, 김갑수까지 악역으로 등장합니다. 캐스팅으로만 보면 100점을 줘도 아깝지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권상우는 지난달 27일 열린 ‘날아라 개천용’ 제작발표회에서 ”현장에 연기 잘 하는 선배들도 많고 하루하루 촬영장에 갈때 즐겁다. 에너지를 쏟아내고 집에 왔을 때 행복감이 있다. 데뷔 이래 가장 기대되는 드라마”라고 이유 있는 자화자찬을 하기도 했죠.
다만 동시간대에 어마어마한 시청률과 화제성을 자랑하는 tvN ‘신서유기8’와 JTBC ‘히든싱어6’가 포진하고 있는 건 악재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아, 배성우 친동생인 배성재 SBS 아나운서의 라디오 방송 SBS 파워FM ‘배성재의 텐‘도 방송 시간이 겹치네요. 참고로 배 아나운서는 ‘날아라 개천용’을 재방송으로 보라는 입장입니다.
첫주 방송 보고 난 후. ‘날아라 개천용‘은 사전정보가 어느 때보다 많았던 드라마인데요. 모르고 방송부터 본다면 좀 당황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나쁘게 말하면 ‘부자들이 위악 떠는’ 요즘 드라마 경향과 묘하게 달라 ‘촌스럽다’는 느낌까지 들거든요. 일단 바뀐 제목부터가 그렇습니다. ‘개천용 나는 세상은 끝났다’고들 하는 마당에 갑자기 개천용의 전형들이 날아오른다니, 시대착오적이라는 오해를 낳기 십상입니다.
그렇지만 ‘날아라 개천용‘의 배경지식을 알고 보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극 중 ‘개천용’ 둘, ‘고졸 출신 국선 변호사’ 박태용(권상우)과 ‘지방대 출신 기자’ 박삼수(배성우)는 각각 실존인물인 박 변호사와 박 기자이기 때문이죠. 아직 ‘개천용’이 있다고 믿어도 좋다는 시그널일까요?
변호사나 기자와 관계 없어 보이는 삶을 살아온 이들이 자신의 힘만으로 업계 최고에 올라섰습니다. 그러나 출신은 이들이 사다리 맨 꼭대기까지 올라갈수는 없도록 가로막습니다. ‘재심 스타‘가 됐지만 학력이 드러나 거액의 수임료가 걸린 사건을 퇴짜맞고 재벌의 후원도 받지 못하는 박태용이 그렇고, ‘썼다 하면 특종’이지만 출신 대학 탓에 검사에게 볼을 꼬집히고 무릎을 꿇는 박삼수가 그렇습니다. 실화 같지 않은 실화들입니다.
몰입감을 해치는 부분도 있습니다. 다소 과장된 설정들, 특히 박태용 캐릭터가 그렇습니다. 법정에서 변호를 하다가 난동을 피우고, 직원들 월급도 못 주는 주제에 판검사 식사 비용을 긁으며 대책 없이 ‘쨍하고 해뜰날‘을 기다립니다. 일단 큰소리부터 치고 보는데 어쩌다 보니 일이 잘 풀리는 관습적 주인공 캐릭터 설정이 엿보입니다. 박삼수 후배인 이유경(김주현)에게 첫눈에 반한 듯한 모습에서 한국 드라마의 고질적 병폐인 ‘어찌 됐든 마지막은 연애 아님 결혼’으로 흘러가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듭니다.
박태용과 박삼수가 성장과정에서 겪은 트라우마가 같아 보이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까지 잔뜩 ‘현실‘과 ‘실화‘를 이야기해 놓고 정작 이야기는 기적적인 우연들의 연쇄로 맞물립니다. ‘삼정시 3인조 사건’ 증거들이 담긴 보따리를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손에 넣으며 시작된 줄 알았던 두 사람의 인연이 사실은 태초부터 시작된 것이라면 약간은 억지스럽다는 인상을 남기겠네요.
[허프 뇌피셜 지수 : 90] 첫 방송 시청률은 동시간대 전작인 ‘앨리스’의 마지막회 시청률을 크게 밑돌았지만, 반등세가 심상치 않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재밌습니다.
일등공신은 배우들입니다. 권상우와 배성우는 이미 각각 박태용과 박삼수가 된 듯 역할에 녹아들었습니다. 특히 초반 코미디 일색의 이야기 속에서 활어처럼 뛰어다니던 두 사람이 가끔씩 어두운 트라우마를 내비칠 때의 완급 조절이 탁월합니다.
박삼수를 연기하는 배성우가 모두의 호평을 받고 있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다가 ‘글빨’ 하나로 특종 기자가 된 박삼수가 출신 대학을 비웃는 검사 장윤석(정웅인)을 때리고, 다음날 무릎을 꿇고 사과하지만 용돈은 받지 않고, 뉴스앤뉴 사장이 기자로 발탁해 준 은혜를 봐서 기자 자존심을 접고 차기 대권주자 강철우(김응수)의 자서전 대필 의뢰를 받아들이지만 결국 그 거대권력에 맞설 결심을 하는 인생의 입체적 단면들을 끊김 없이 연결하는 건 배성우였습니다.
이야기 전개를 보더라도 1화와 2화에 걸쳐 박태용과 박삼수가 손을 잡게 된 배경을 설명하는 대목을 사건으로 풀어나가니 지루할 틈이 없습니다. 3화부터는 본격적으로 두 사람의 공조가 시작될 전망이니 기대감이 커집니다.
극 중에서 박태용은 ‘삼정시 3인조 사건’ 재심에 도전하며 ”어려우니까 해야 한다. 쉬운 건 아무나 다 한다”라고 하고, 박삼수는 ”생각이 많으면 인생 고달프다”는 말에 ”생각이 없으면 바보가 된다”고 응수합니다. 맘 불편히 꽃길 걷는 대신 맘 편히 가시밭길 걷겠다는 박태용과 박삼수, 과연 ‘정의가 돈이 되는 세상’을 보여줄 수 있을까요?
라효진 에디터 hyojin.ra@huffpost.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