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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너스톤 Mar 07. 2019

알폰소 무하, 자연의 낭만을 금속에 불어넣다

아르누보의 거장, 그의 주얼리

알폰소 무하, 체코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예술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체코 구석구석에는 알폰소 무하의 흔적이 남아있다. 포스터 디자인, 화폐, 그리고 우표까지. 한눈에 봐도 알폰소 무하가 그렸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는데, 가장 전형적인 그의 그림에는 주로 아름다운 여성이 실루엣이 드러나는 튜닉을 입고 등장하며 백합 같이 아름다운 꽃으로 장식되어 있다. 그는 이렇게 식물의 줄기나 꽃처럼 자연에서 영감을 얻은 자유로운 곡선을 장식적인 특징으로 해서 새로운 양식을 창출했고, 그것이 바로 아르누보의 전형이 되었다.


알폰소 무하가 만든 사라 베르나르 공연 포스터


무하가 먼저 이름을 떨친 것은 포스터 디자인이었다. 알폰소 무하의 작품을 떠올려보면 포스터들이 떠오르지 않는가. 당시 슬라브 출신의 작가들은 타지에서 지내면서 돈을 벌기 위해 잡지사나 출판사 또는 극장에서 그림을 그려주는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생활비를 벌었는데, 무하 또한 주간지 일러스트레이션이나 소설 표지 그림을 그려주면서 소소하게 돈벌이를 하고 있었다. 그가 이름을 알리게 된 때는 20대의 젊은 나이로, 인기 배우였던 사라 베르나르의 공연 포스터를 제작할 화가들이 없는 크리스마스에 혼자 고향에 가지 않은 무명의 무하가 얼떨결에 포스터 작업을 맡게 된 것이 계기였다. 


무하 특유의 여성스럽고 신비한 색감과 외곽선으로 표현된 여배우의 포스터 디자인에 사람들은 매혹되었고, 무하는 일약 포스터 화가의 스타 반열에 올랐다. 체코 출신 젊은 화가로는 대단한 일이었다. 파리의 길거리 곳곳에 무하의 포스터가 붙었고, 사라 베르나르가 주연으로 등장한 연극 작품들이 대대적인 인기를 끌면서 무하 또한 마찬가지로 파리에서 이름을 날렸다. 


알폰소 무하가 만든 사라 베르나르 공연 포스터


그렇게 무하는 각종 회사들의 광고물 제작 의뢰를 받게 되었는데, 달력, 샴페인 패키지, 브랜디 패키지, 초콜렛 패키지, 광고 포스터 등 다양한 광고물을 만들게 되었고, 그 중에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모엣샹동 샴페인이나 네슬레 식품도 있다. 상업예술로 명성을 쌓은 알폰소 무하의 이름은 독특한 스타일로 순수예술 세계에도 널리 알려졌고, 경제적으로도 넉넉해지면서 주문한대로의 그림이 아닌 온전히 자신이 창조해낸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었다. 데샹의 초청으로 대규모 전시를 열고 파리 뿐 아니라, 비엔나, 프라하, 뮌헨, 런던, 뉴욕 등 해외투어를 하기도 했고, 이에 문화예술지인 'La Plume'은 무하에게 헌정하는 특별 한정판을 출간하기도 했다. 알폰소 무하는 대중의 취향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는 동시에 작가로서의 스타일 또한 확실한 예술가였다.



알폰소 무하가 그린 JOB 담배갑, 모엣샹동 패키지, LA PLUME 문화예술지 커버 그림


이후 알폰소 무하는 미국에 초청을 받고 잠시 지내게 되었는데, 이때가 무하 인생의 큰 분기점이 되었다고 한다. 미국에서 다시 체코로 돌아와서는 슬라브 민족과 체코의 역사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하게 되었다. 그는 프라하에서 멀지 않은 즈비로그 성에서 지내면서 대규모 작품 활동에 몰두하였으며, 슬라브 민족사를 다룬 웅장한 작품을 스무 점이나 만들었다. 그외에도 프라하의 자치의회 건물과 성 비투스 대성당 등 건축물의 외벽, 인테리어, 스테인글라스 스케치 작업을 했을 뿐 아니라, 1918년에 독립된 체코 정부가 만들어진 후에는 체코의 근간을 만들기 위해 우표, 화폐, 문서 등의 디자인에 이바지 했다. 마지막으로는 체코에 헌정하고자, 체코의 신화를 기반으로 만든 대규모 연작인 '슬라브 서사시'를 완성했다. 



낭만적이고 신비로운 아르누보 예술의 대가로 잘 알려진 알폰소 무하에게 숨겨진 직업이 또 하나 있었으니 바로 보석 디자인이다. 포스터 화가로서 무하의 재능과 평판 속에서 상업적 가치를 읽어낸 것은 당대 최고의 보석 상인이자 보석 세공사였던 조르주 푸케였다. 조르주 푸케에게 고용된 무하는 주얼리를 제작하기 시작했고, 일상에서 할 수 있는 일반적인 디자인 주얼리부터 자신의 인기있는 포스터 디자인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화려한 주얼리까지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알폰스 무하가 디자인한 아르누보 주얼리


아르누보의 주얼리는 영감을 자연에서 얻었기 때문에 상아, 오팔, 유리 같은 다양한 자연의 재료를 금속과 함께 어우러 활용했다. 알폰소 무하의 회화에서처럼 주얼리의 주제 또한 지극히 아르누보스럽게 여성과 동식물을 표현해냈다. 흘러내리는 듯한 종유석, 흐느러지는 꽃, 여성의 아름다운 곡선. 자연을 담은듯한 풍성한 아르누보 주얼리의 특징은 이후로도 이어져 풍뎅이, 꿀벌, 자두나무 등을 담은 브로치와 펜던트 등 구찌, 반클리프앤아펠 등에서 나온 콜렉션에 모티브가 되기도 한다. 


무하의 디자인을 구현하기에 가장 적합하기도 했고 당대 아르누보 주얼리에서 가장 널리 활용된 세공 기법은 에나멜링이었다. 알폰소 무하가 만든 흐느러진 곡선의 형태를 미리 철사 등으로 정교하게 만든 후에, 착색한 에나멜을 그 사이에 넣고 연마하여 스테인글라스 같이 보이도록 제작하는 테크닉이 바로 에나멜링이다. 그만큼 섬세하고 매혹적인 표현을 지향했던 것인데, 당대 파리에 지배적인 정서였던 데카당스와 유행했던 이국적인 신비주의의 영향이었다. 


알폰스 무하가 사라 베르나르를 위해 선물한 뱀 모양의 팔찌


알폰스 무하는 자신에게 명성을 가져다준 당대의 스타 사라 베르나르에게 직접 디자인한 보석을 다수 선물했는데, 주로 무대에서 코스튬으로 쓸 수 있는 화려한 장신구이었다. 그 중에서도 제일 유명한 주얼리는 연극 '메데이아'에서 베르나르가 왼팔에 착용한 뱀 형태의 브레이슬릿이었다. 뱀의 가죽은 에나멜링 기법으로 모자이크처럼 표현했고, 오팔, 루비, 다이아몬드로 오묘한 빛깔을 만들어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신비주의적인 오리엔탈리즘이 녹아져 있는 뱀 모양의 팔찌는 얼마나 리얼했는지 베르나르가 착용하고 있을 때면 그 기괴한 모습에 많은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고 한다. 사라 베르나르가 무척이나 아꼈던 보석인지라 그녀가 '클레오파트라'에서 주연을 맡았을 때도 착용했다고 한다. 베르나르 사후에 이 팔찌는 아방가르드 패션 디자이너인 모스와 매니시한 마력을 뽐냈던 초기 유성영화 배우 마를렌 디트리히 등 독특한 취향의 콜렉터들의 손을 거쳐 지금은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특히 푸케는 푸케 상점이라 불리는 자기의 보석상점의 건축과 실내디자인을 모두 무하에게 맡겼고, 그 결과 푸케 상점은 아르누보를 대표하는 건물이 되었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해체되어 까르나발레 박물관에서 재조립한 인테리어를 볼 수 있을 뿐이나, 그마저도 현재는 임시휴업 중이라 하니 내년을 기약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푸케상점의 전경


신비롭고 아름다운 알폰소 무하의 작품은 국내에도 팬층이 꽤나 두꺼운 것으로 알고 있다. 그 독특한 매력은 회화 뿐 아니라 조각과 건축물, 나아가 주얼리에서도 발견할 수 있기에, 한국의 무하 팬들이 비교적 덜 알려진 아르누보 주얼리에도, 또 아르누보 스타일에서 영감을 받은 주얼리에도 더 많은 관심을 가지면 섬뜩하지만 심오한 아르누보의 매력 속에 빠질 수 있지 않을까. 


                                                  www.connerston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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