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에서 교환학생으로 한 학기를 마치며
"그동안 학교에서 이런 걸 왜 배워온 건지, 이제야 좀 알 것 같아."
친한 학교 친구와 카페에서 만담을 나누던 중, 무언가에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학교 수업들을 힘겹게 들었을 당시에는 과제와 시험 공부에 급급했지만, 시간이 흘러 관련 프로젝트를 경험하며 그때 배운 개념과 이론들이 어떻게 쓰이는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는 친구의 얘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너는, 학교에서 배우던 것들을 '왜' 배웠는지, 너는 알 것 같다고? 그동안 학교에서 얻어갈 수 있는 것이라고는 교외활동을 통한 경험과 이를 통해 만나는 사람들이라고 믿어온 나였기에, 학교에서 무언가를 '배웠다'는 친구의 발언은 적잖이 충격이었다. 그날 친구가 가볍게 던진 한 마디는 종일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휴학한지 어느덧 일 년 하고도 몇 달 더 지난 때였다. 그렇지 않아도 스스로 어딘가 부족함을 느끼던 중이었다. 감사한 기회로 그동안 다양한 커리어와 프로젝트를 경험할 수 있었지만, 어째서인지 밑 빠진 독에 물을 붓고만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스스로 이것저것 경험을 쌓아올리기엔 아직 기반이 다져져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달까. 그 답답함을 어떻게 채워야 할지 고민이 많았는데, 본질적으로 이에 대한 해답은 아직 마치지 못한 학업, 즉 '배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미국 대학 복학에 앞서 국내 서울대학교에 한 학기 동안 교환학생으로 다니게 되었다. 언론정보학과 소속으로 전공 및 교양 수업을 듣게 되었는데, 대외적으로는 학점 이수를 위해 다닌 학교였지만, 이런저런 고민과 다짐을 안고 수업에 임한 덕분인지 이전과는 다른 학업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교환학생으로서 다른 서울대 학생들과 달랐던 점은 성적에 대한 부담이 비교적 적었다는 것이었다. 국내의 최고 대학 기관에서 수업을 듣게 된 만큼, 또 1년 반을 쉬었다가 공부를 다시 시작한 만큼 개인적인 부담도 있었지만, 적어도 이번에는 그저 학점을 위한 수업이 아닌, 진짜 무언가를 얻어갈 수 있는 수업을 듣기 원했다. 그래서 그간 궁금했거나 더 알아보고 싶었던 분야의 수업들을 중점적으로 선택해 수강했다. '수업마다 적어도 하나씩은 얻어가자'는 것이 나의 학기 중 목표였다.
전공 수업으로는 '양적 방법론'과 '데이터 분석' 등, 미디어나 언론 매체 자체에 관한 수업보다는 이를 어떻게 분석해 사회에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수업들을 들었다. 이번 수업들로 연구 방법이나 통계적 이론들을 완전히 이해했다고 할 수는 없더라도, 적어도 사회과학도 혹은 분석가로서의 마음가짐을 익힐 수 있었다.
교양으로는 '중국어권의 사회와 문화', '인공지능과 철학' 등의 수업을 들었다. 평소에 막연하게 가졌던 호기심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강의명에서부터 드러나듯, 실제로 해당 수업들을 통해 신흥 강국인 중국에 대해 다각도로 이해하거나, 또 인공지능의 주체성, 윤리 등에 대해 보다 심도 있게 고민해볼 수 있었다.
듣고 싶은 수업들을 수강한 덕분인지, 대부분의 수업 내용에 대해 지루함을 느끼지는 않았다. 서울대학교에서 수강한 전공 수업들은 개인적으로 평소 갈증을 느껴온 부분을 어느 정도 채워주었고, 교양 수업들은 얕게나마 분야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주었다. 이번에 수강한 수업들이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에 대한 발판을 마련해준 것 같아 기쁜 마음이다.
고등학생 이후로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는 것은 처음인지라 학교 생활에 대한 기대가 컸으나, 코로나19로 캠퍼스를 온전히 누리지 못했다는 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지 못했다는 점 등은 정말 아쉬웠다. (하다 못해, 학교의 시그니처인 '샤' 정문 사진조차 없다ㅜㅜ) 학교 '밖' 경험은 누리지 못했기 때문인지, 우습게도 서울대학교에서 한 학기를 마친 지금은 다시금 공부가 싫다고 느낀다. 새내기 시절이나 지금이나, 참 여전하게도 공부가 지루하게만 느껴진다.
다만, 2~3년 전 그때와 지금 달라진 점이 있더라면 바로 학업을 대하는 태도이지 않을까 싶다. 1~2학년 시절, 쉽게 흔들리고 포기가 빨랐던 나에게 학교란 그저 빨리 졸업하고 싶은 곳이었다. 수업들로부터 크게 느끼는 감흥도 없었고, 이에 학기마다 느끼는 무력감과 상실감이 지대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이번에는 도전했고 배웠다. 각 수업마다 배운 점, 느낀 점이 달랐다는 것, 그리고 종강한지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각 수업에서 얻어가고자 했던 것들, 수업마다의 takeaway를 간직하고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이 스스로 신선하게 느껴진다.
그런 의미에서 다가오는 복학이 기대된다.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포기하진 않겠다. 이는 글로써 내비치는 나의 다짐이기도 하다. '그동안 학교에서 이런 걸 왜 배워왔는지'를 스스로 깨달을 때까지, 미국에 돌아가서는 어떤 배움을 경험하게 될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