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기획·제작 활동을 통해 느낀 점, 고민
모든 게 갑작스러웠다. 3월 말, 국내의 한 대형 학원에서 블로그 포스팅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되었고,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한 글로벌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의 국내 콘텐츠 마케팅을 담당하게 되었다. 갑자기 두 가지 일을 병행하게 된 것이다. 금전적으로 여유가 없는 학생인 나에게 아르바이트는 차마 포기할 수 없는 기회였고, 인턴십 역시 평소 내가 너무 좋아하는 프로덕트 팀에 합류하게 되는 것이라 결코 놓칠 수 없었다. 음, 이건 예정에 전혀 없던 것들인데. 그래, 해보자, 이번엔 콘텐츠다.
그렇게 매일 무언가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강의 홍보 블로그 글부터, 꿀팁 정보를 담은 카드 뉴스 형태의 포스트, 트위터, 인스타그램, 그리고 틱톡 영상까지. 개중에는 공장 기계처럼 찍어내다시피 만든 것들도 있었고, 수 시간을 쏟아 혼신을 다해 만든 것들도 있었다. 아무튼, '창작의 봄'이라고 일컬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지난 몇 달간 무언가 무수히 많이 만들어냈다.
그렇다 보니 요 며칠간 국제 광고제 출품을 위해 고군분투했던 지난 한 해가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자유롭게 기업과 아이디어를 선정할 수 있는 오픈 브리프(open-brief) 형식의 광고제 출품을 위해 쉴 틈 없이 아이디어를 고민했던 때였다. 매일 밤잠을 설치다가 끝내 침침한 새벽에 일어나 뭐라도 아이디어를 적어냈었다. 그렇게 꾸준하게 만들어온 작품들은 나에게 광고제 수상이라는 벅찬 감격을 가져다주었다.
그동안 나는 무엇을 느꼈을까. 이 글에서는 다양한 것들을 창작해내는 과정에서 내가 느낀 것들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생각이 깊고 오래된 만큼, 아무래도 긴 글이 쓰여지지 않을까 싶다.
지난 수개월간 꾸준히 콘텐츠를 만들면서 재미도 많이 느꼈고, 내가 만든 것을 보고 다른 누군가가 반응을 해줄 땐 뿌듯함도 컸다. 하지만 그만큼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았다. 특히 작년에 광고제 출품을 준비하면서는 매일 새 아이디어를 구상하며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기에, 이번에 담당한 업무 역시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다. 즐겁기도, 힘들기도 한 창작은 나에게 대체 어떤 의미일까. 흥미롭게도 이에 대한 힌트를 지난 학기 서울대학교에서 수강한 '인공지능과 철학' 수업에서 얻을 수 있었다. 「인공지능은 창의적일 수 있는가?」라는 토론 주제를 바탕으로 발표를 준비하며 창의성과 관련해 심도 있게 고민해볼 수 있었다.
창작, 또는 창의성이란 무엇일까. 인지과학과 계산주의 심리학 분야의 세계적인 학자인 마거릿 보든은 창의력이란 '새롭고, 놀랍고, 가치 있는' 아이디어나 물건을 창조하는 능력이라고 정의했다.
첫째, '새롭고'는 누구에게 새로운지에 따라 '역사적 창의성'과 '심리적 창의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역사적 창의성(H-창의성)은 우리가 알고 있는 범위 내에서 이전에 아무도 생각해내지 못한 것, 즉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등장한 아이디어이다. 심리적 창의성(P-창의성)은 자신에게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놓는 것이다. 이전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같은 아이디어를 떠올렸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두 번째 정의인 '놀랍고'는 세 가지 경우에서 발현될 수 있다. 첫째로 어떤 아이디어가 아예 예측 불가한 것은 아니지만 가능성이 낮은 상황에서 나왔을 때(Probable + Unexpected), 그 아이디어는 놀랍다고 할 수 있다. 둘째는 아이디어가 예상치 못하게, 또 거의 고려하지 않았는데 떠올랐지만, 우연찮게 자신의 사고방식에 꼭 맞는 경우(Improbable + Unexpected + Familiar pattern exists)이다. 마지막 세 번째는 전적으로 발상이 불가능한 아이디어를 맞닥뜨렸을 때(Improbable + Unexpected + Considered impossible) 느끼는 놀라움이다. 누구도 생각해낼 리 없다고 여겼던 아이디어가 보란 듯이 세상에 등장한 것이다.
창의성 정의의 세 번째인 '가치 있는'에서 '가치'에는 흥미롭든, 유용하든, 아름답든, 간결하든 다양한 요소들이 있을 수 있다. 가치를 정의하기는 굉장히 어려울 뿐만 아니라, 지각하거나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더군다나 가치는 시대나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기도 한다.
나는 보든이 내린 창의성의 정의에 동의한다. 어떤 아이디어가 '새롭고, 놀랍고, 가치 있다'면, 그 아이디어는 충분히 창의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를 비즈니스 관점에서 본다면, 마냥 새롭고 놀라운 것만이 창의적일 수는 없다. 아니, 적어도 효과적인 창작은 아니다. 주어진 리소스가 제한되어 있고, 상품 판매, 고객 유치 등의 분명한 목적과 목표가 있기 때문이다.
예전부터 어렴풋이 가지고 있던 이 생각은 광고인 박웅현과 디자이너 오영식의 대담집인 《일하는 사람의 생각》이라는 책에서 재발화되었다. 저자 박웅현은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얘기한다.
"저는 광고가 예술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광고는 철저하게 기업의 마케팅 활동이거든요. 그런데 이 기업의 마케팅 메시지를 수용하는 사람들이 워낙 무관심하니 그 사람들에게 잘 들리게 하려면 정제가 잘 되어 있어야 하는 거지요."
《일하는 사람의 생각》 p. 128
흔히 떠올리기 쉬운 '예술적' 순수 창작과 광고, 디자인, 마케팅 등의 '상업적' 창작은 다르다. 순수 창작의 목적지는 불분명하다. 그렇기에 '새롭고, 놀랍고, 가치 있는' 창작 그 자체로 창작자가 추구하는 바가 될 수 있다. 반면, 상업을 위한 창작은 해결해야 할 문제나 숙제가 명확하다. 하지만 이러한 목표를 손쉽게 얻기에는 너무 어려우니, 이때 위의 저자가 얘기하는 '정제', 즉 '새롭고, 놀랍고, 가치 있는' 아이디어가 동반되는 것이다. 이렇게 창작의 목적이 다르다는 점을 바탕으로, 지금껏 내가 창작해온 비즈니스 콘텐츠는 일반적인 순수 창작물과는 성격이 다르다고 정리할 수 있었다.
다시 마거릿 보든의 정의로 돌아와서, 그간 내가 해온 '상업적' 창작에 있어서 '새롭고 놀라운' 것을 구현하는 것은 실로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고 느낀다. 보든이 정의하듯, 인류 역사상 최초의 창작으로 '새로움'을 발현하거나,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받아들여져 온 창작을 통해 '놀라움'을 일으키기는 정말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수상의 목적이 뚜렷한 광고제 출품과 타겟 고객군이 명확한 기업의 콘텐츠를 만들어내면서 '새롭고 놀라운' 창작을 이루기는 더더욱 어렵기에, 나는 의도적으로 수많은 작품들을 창작해야만 했다. 다시 말해, 아이디어의 질보다는 양을 추구해왔다. 일반적으로 아이디어를 최대한 많이 떠올린 뒤에 이를 점차 질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알려져 있고, 나 역시 이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다른 한편으로, 그동안 내가 아이디어의 양에 집착했던 이유에는 제시한 아이디어들 중 하나라도 얻어걸렸으면 하는 소심한 바람도 있었다. 앞서 얘기했듯 완전히 새롭거나 놀라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은 정말 어렵기 때문이다.
창의성의 세 가지 정의 중 '새로움'이나 '놀라움'을 발현시키기 어렵다면, 나의 창작 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최초라는 절대적인 기준이 있는 '새로움'이나 '놀라움'과 달리, '가치'는 유동적이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또 사람들이 수용하는 것에 따라 가치는 달라진다. 내 창작물이 소비되는 때와 장소, 사람들을 시시각각으로 이해하고 변화를 민첩하게 인지해 창작물에 고루 녹여낸다면, 그 결과물은 충분히 유의미하다고 볼 수 있겠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나는 수많은 창작 활동을 통해 어떤 가치를 만들어낸 걸까. 광고제 수상이나 비즈니스 목표 달성 등, 창작물을 통해 이루고자 한 바를 나는 성공적으로 달성했을까. 혹은 이외에도 내가 일으킨 가치가 혹시 더 있을까.
지금까지 장황하게 늘어놓은 창작의 고찰은 사실 근래 가져온 나의 최대 고민을 설명하기 위함이었다. 무언가를 꾸준하게 창작하고 있고, 이를 통해 어떠한 가치를 일으키고 있지만, 내가 알게 모르게 일으키고 있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또 이를 어떻게 측정해야 할지 조금은 혼란스럽다. 이것이 창작 활동을 통해 느끼는 가장 큰 아쉬움이다. 달리 말해, 내가 창출해낸 가치를 파악하고 측정할 수 있는 지표가 나에게 아직은 부재한다.
좀 더 나아가 이번엔 '꾸준한' 창작이라는 것에 방점을 두어보겠다. 나의 두 번째 아쉬움이기도 하다. 꾸준하게 창작을 계속한다는 것은 창작을 끊임없이 지속한다는 것이다. 이는 때때로 소모적이며, 아이디어가 고갈될 때도 있고, 성과나 결과가 가장 좋을 때나 좋지 않을 때의 차이가 극심하다. 창작 활동을 보다 더 유기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게 할 방법은 없을까? 창작 활동을 아우르는 체계나 플랫폼, 시스템에 대한 고민이 깊어진다.
글로써 그간의 고민을 풀어 정리해보려 했으나, 아직 생각이 완전히 정리되지는 않은 것 같다. 어렵다. 한 톨의 아이디어라도 떠올리겠다고 머리를 뜯다 보면 골이 아플 정도로 힘들다가도, 퍼뜩 영감이 떠오르면 신이 나 눈을 반짝이게 된다. 내 노력의 결과물이 어떤 영향을 가져왔는지, 또 이로부터 얻게 된 인사이트를 앞으로의 창작 활동에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지만, 일단 내 창작물을 향한 사람들의 소소한 반응 하나하나에 하루가 즐겁기도, 종일 의기소침해 있기도 한다. 나에게 있어서 '창작'이란 정말 어떤 의미인 걸까.
앞으로 어떤 일을 하게 되든 창작의 영역에서 크게 벗어나고 싶지 않다. 지표나 체계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는 만큼 이따금씩 머리가 굳어져 아이디어를 한정지어 버리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혼자 섬뜩함을 느낀다. 무언가를 창작해내는 것을 순수하게, 진심으로 즐기던 때가 있었는데.
지금까지의 둔탁한 고민은 언제든 펼쳐볼 수 있도록 생각의 수면 바로 아래에 잠시 재워두고, 언제까지나 말랑말랑한 생각들을 뿜어내고 싶다는 바람이다. 바로 이 글이 앞으로 종종 찾아올 수면 아래이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