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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온지 Aug 24. 2021

휴학을 마무리하며

복학, 지난 2년간 느낀 점 돌아보기


길고도 짧았던 나의 휴학이 드디어 막을 내린다. 코로나19라는 변수로 당초 계획한 1년보다 두 배 더 긴 시간 동안 한국에서 지내게 되었지만, 시간은 참 빨리도 흘러 결코 오지 않을 것만 같았던 이 시간이 오게 되었다.


다시 돌아온 미국에서 마주한 친구들은 나에게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묻는다. 일본에서의 이노베이션 프로그램, 광고 기획 인턴십, 국제 광고제 수상, 해외 선교 활동, 카페 아르바이트, 앱/웹 프로덕트 기획 및 디자인, 국내 대학 생활, 콘텐츠 마케팅 등등 — 휴학이 아니었으면 경험하지 못했을 소중한 기억들을 하나씩 꺼내 읊어주며, 그동안 온몸으로 느껴온 것들을 전해주었다.





2019년 여름,


여름 계절학기 수강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노베이션과 일본에 대한 단순한 호기심에 도쿄 이노베이션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다. 어리숙했지만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과 '지역 & 중소기업 이노베이션'이라는 같은 목적을 공유하며 장기간 협업해볼 수 있었다. 프로그램에서 새로운 디자인 방법론을 접하며, 또 일본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디자인 워크샵을 주도하며 나만의 아이디에이션 프레임워크를 구축할 수 있었다.




2019년 가을,


오랜 기간 꿈꿔왔던 광고 기획을 몸소 접한 시기였다. 광고대행사에서 기획 인턴직을 맡으며, 또 국제 광고제 출품을 준비하며 매일 크리에이티브에 대해 고민했다. 덕분에 거시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민첩하게 트렌드를 발굴해 인사이트를 도출하는 데에는 익숙해졌지만, 역으로 이에 아쉬움을 느껴 더욱 심도 있는 기획에 도전하고 싶어졌다.




2019년 겨울,


인턴십 중 아껴뒀던 연차까지 몰아 쓰며 중국의 연길로 선교 사역을 다녀왔다. 탈북민 가정의 친구들을 만나 일주일을 함께 보내며 많은 생각을 했다. 어떤 영향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은지, 어떤 방향의 삶을 살아야 하는지 — 삶과 꿈에 대해 깊이 생각해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위의 고민들은 아직 진행 중이다.



2020년 봄,


브레인스토밍 협업 툴 STORM을 통해 서비스 기획에 도전하게 되었다. 프로덕트 관련 지식이 전무했던 만큼 많이 힘들었고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이 시기를 삶의 변환점이라고 할 수도 있을 만큼 새로운 자극을 받아 '기획하는 사람'으로서 한층 더 성장할 수 있었다. STORM 기획을 통해 가설을 세우고 검증하는 과정과 내가 전혀 모르는 분야의 사람들과의 협업을 경험해볼 수 있었으며, 나아가 기획을 뒷받침하기 위한 논리적, 전략적 사고의 중요성을 체감하게 되었다.




2020년 여름,


휴학하고도 끊임없이 달려온 탓에 지쳐있던 나 자신에게 사실상 첫 휴식기를 선물해주었다. 그동안 미뤄온 독서, 중국어 공부 등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며 재충전의 시간을 가졌다. 그 과정에서 종종 들이닥친 불안감을 스스로 다스리며 마음의 안정을 유지하는 법을 익혔다.




2020년 가을,


STORM 앱 서비스 기획을 통해 프로덕트와 사용자 관점의 필연성을 느낀 뒤로 디자인에도 도전해보고 싶어졌다. 여름 간 많이 쉬어둔 만큼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길게 호흡하며 배우고자 했다. 온라인 강의, 스터디 활동 등을 통해 매일 조금씩 디자인 체력과 UX 관점을 길렀다.




2020년 겨울,


웹 서비스 sqoop의 프로덕트 디자이너로 합류하며 본격적으로 디자이너로의 협업을 경험했다. '근거 있는 디자인'을 상시 고민하며 각각의 디자인 요소뿐만 아니라 소통 및 설득 방식에까지 논리와 근거를 담고자 노력했다. 특히 심해진 코로나19로 전면 온라인으로 팀원들과 소통하며, 리모트로도 효율적으로 협업하는 방식까지 익혔다.

아, 한 가지 더! 지레 겁먹고 미루던 운전면허도 드디어 취득했다. 운전은 여전히 어렵지만, 새로운 도전은 언제나 즐겁다.




2021년 봄,


 번의 장기 프로젝트 이후, 배움의 갈증을 느껴 서울대학교 교환학생 프로그램 지원하게 되었다. 그동안  몰랐던 분야나 궁금했던 내용의 듣고 싶은 수업들을 들으며 '일하는 사람'이기 이전에 내면의 기반을 단단히 하고자 했다. 복학을 앞두고 학업과 배움에 대한 마음가짐을 다잡는 시간이기도 했다.

동시에 글로벌 앱 프로덕트의 콘텐츠 마케팅 인턴직을 맡게 되었다. 광고 기획에 관심이 많던 때를 떠올리며 다시 한번 거시적으로 트렌드를 파악하는 훈련을 했고, 동시에 '창작'의 의미를 다시 되짚어볼 수 있었다.




2021년 여름 — 복학 직전의 지금은,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창의력'과 '분석력/통찰력' 사이에서 어떤 역량에 집중해 스스로를 가꾸어야 할지 고민이 많은 요즘이다. 한편으로는 다가오는 새 학기를 차분하게 준비하고 있다. 이번 학기에는 학교에서도 어렵기로 악명 높은 수업들을 수강하게 되었는데, 나는 어떤 태도로, 또 이전과 어떻게 다른 태도로 학업을 대하게 될까?

오래 달리기 위해, 많이 먹고 쉬어두며 그동안의 배움과 경험을 복기하고 있는 요즘이다.




2년의 휴학 동안 다양한 사람들을 마주하고 많은 일들을 경험하며 가슴에 새겨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나는 멍청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나는 게으르다"는 사실이다.


겸손의 의미로 받아들일 수도 있겠으나, 이는 지난 휴학 경험에서 느낀 것들을 한 문장으로 총정리한 것이자, 앞으로 스스로 끊임없이 상기시키며 다짐해야 할 문장(affirmation)과 같다. 나는 멍청하고 — 즉, 아직 한 분야에 뚜렷하게 전문성을 갖추지 못한 만큼 배워나가야 할 것들이 많고, 나는 게으르다 — 즉, 한 순간 뜨겁게 태우다가 파르르 식기보다 꾸준하게 배우고 정돈하는 일을 지속해야 한다. 고로 "멍청하고 게으르다"는 나의 단언은 결단코 부정적인 것이 아니다.



끝으로, 요즘 재밌게 읽고 있는 프릳츠에서 일합니다라는 책에서 찾은 어구를 나의 다짐에 빗대고 싶다. 현재 나는 나의 삶을 실험 중이다. 새롭고도 거칠고 구부정한 길을 가는 중이기 때문에 당연하게도 쉽지 않다. 때로는 그 과정이 막막하기도, 끝이 의심스럽기도 하다. 그럼에도 내가 걷고 있는 길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관심 가거나 더 깊이 알고 싶은 분야가 많은 만큼 언제 방향을 틀어 길을 옮길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길 위에 있는 순간만큼은 우직하게 걸어 나가고 싶다.


내일이면 정말 복학이다. 첫 수업을 앞두고 기대도 되고 걱정도 많지만, '잘 버티자'는 것이 지금의 마음가짐이다. 나 역시 부디 지쳐서 포기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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