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 도전기 ① 기본기 습득, 앱 리디자인 & 무박 2일 해커톤
지난 STORM 팀에서 처음으로 IT 프로덕트와 팀을 기획하고 총괄하며, 서비스 기획에 있어서 고려해야 할 점이 굉장히 많다는 것을 실감했다. 서비스가 추구하는 가치이자 방향, 즉 가설에 대한 꾸준한 검증은 물론이거니와, 시장에서의 위치나 장악력, 수익 모델, 그리고 내부적인 일정이나 팀원 개개인의 상황까지… 당시 막 걸음마를 시작한 기획자로서 위의 것들을 충분히 고민하지는 못했으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용자'임을 필사적으로 느꼈다. STORM을 기획하면서 사용자를 정의해 그들을 깊이 있게 알아가고 이를 서비스에 녹여내는 과정을 경험했고, 그 과정에서 앱의 버튼 위치 하나하나까지도 사용자 경험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라는 점을 깨달았다.
그렇게 대학생 연합 IT 벤처 창업 동아리 SOPT의 새 기수를 시작하면서는 '기획'이 아닌 '디자인' 분야에 도전하게 되었다. 사용자를 정의하고 이해하는 기획을 해보았으니, 이번에는 더 마이크로(micro)한 단계이자 그들의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 고려해야 하는 디자인이 궁금해졌달까. 마음가짐도 도전 자체에 의의를 뒀던 지난번과는 달랐다. 이번엔 정말 잘 해내고 싶었다.
얕은 디자인 감각과 어도비 툴 실력만 갖고 있던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은 무엇일까. 그 시작은 가장 기본적이고 원론적인 디자인 개념부터 이해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와 동시에 단기간에 실무적인 감각도 길러야 했다. 사용자 경험에 관한 이론적인 개념과 실제 협업에서 적용할 수 있는 디자인 실무 역량을 익히고 싶어 패스트캠퍼스의 UX/UI 디자인 강의 패키지를 구매했다. 짧은 영상 강의인만큼 부담 없이 매일 꾸준히 공부하는 것이 개인적인 목표였고, 집에서뿐만 아니라 이동 시간이나 자투리 시간에도 강의를 챙겨보며 디자인 개념과 실무를 공부했다.
한편, 디자인 감각은 그저 강의를 본다고 얻을 수 아니다. 많이 보고 익혀야 한다. 디자인은, 특히 UX 디자인은 순수 창작물과 달리 주체가 '사용자'이기 때문이다. 다수의 사용자에게 가장 좋은 사용성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이미 통용되고 있는 기능과 디자인 체계를 이해하고, 그러한 디자인이 어떻게, 그리고 왜 좋은 사용성을 제공하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이에 대한 훈련으로 힙한 서비스들의 비밀의 '힙서비 챌린지'를 모티브로 한 스터디, 'UX-Be Challenge'를 적극 활용했다. 틈틈이 앱/웹 서비스를 살펴보고 서비스를 분석해 글을 올리며 사용자 중심 사고방식과 디자인적 감각을 익히고자 하였다.
어렴풋이나마 감각을 익혔다면, 이를 직접 표현하고 만들어봐야 한다. 그동안은 포토샵 정도만 다루며 스스로 만족할만한 디자인을 만들어본 게 전부였다면, 이제는 더 넓은 스펙트럼의 디자인을 위해 툴도 능숙하게 다룰 줄 알고 싶었다. 한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어도비 디자인 툴에 다시 익숙해지기 위해 동아리 내 '비전공자를 위한 일러스트레이터 스터디'에도 열심히 참여했다. 매주 하나씩 간단한 작업물을 만들어내며 잊고 있던 창작의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
개념과 이론을 익히고, 디자인 작업물을 찾아 분석하고, 직접 따라 그려보는 훈련을 통해 디자인 기초 체력을 길렀다. 단 몇 달간의 훈련으로 당장 눈에 띄는 변화는 없겠지만, 꾸준히 진행해온 훈련의 과정이 생각을 더 유연하게 해주고 작업을 더 효율적으로 하게 해주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서비스 UX 분석이나 일러스트레이터 툴 연습은 생각을 넓히고 표현을 더 자유롭게 하기 위함일 뿐, 가장 좋은 훈련 방식은 실제 앱/웹 서비스를 직접 다시 구성하고 그려보는 것 아닐까. 이를 위해 평소 자주 사용하던 서비스인 '퍼블리 뉴스 (현: 커리어리)' 앱을 리디자인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앱 리디자인 프로젝트는 사실 '디자이너와 개발자의 협업 경험'이 주 목적이었다. 그렇기에 기존 앱의 기획적 의도나 시나리오를 파악해 이를 재구성하기보다는 '개발 가능한 디자인'을 구성하는 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앱을 직접 사용하며 느낀 점 외에는 주어진 관련 배경지식 역시 없었고, 디자이너로서 오로지 기존보다 더 나은 사용성에 집중해야 하는 프로젝트였다.
'개발 가능한 디자인'과 이를 '구현'하기를 연습해보는 데에 의의가 있는 프로젝트였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앱의 사용성 문제와 개선점을 비롯해 디자인의 우선순위를 설정하는 것으로 고민을 시작했다.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한 파트너 언니와 함께 퍼블리 뉴스의 기획자는 왜 이 기능을 추가했는지, 디자이너는 이 기능을 왜 이렇게 구성했는지 등을 고민했다. 앞서 얘기했듯 기본 배경지식 없이 UI를 구성하다 보니 깊이 있는 고민은 하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각각의 기능과 레이아웃에 대한 'Why'를 끊임없이 물어보고 상기시킬 수 있어 굉장히 뜻깊은 시간이었다.
이번 리디자인 프로젝트에서의 가장 큰 takeaway는 아무래도 UI 및 프로토타이핑 툴인 피그마(Figma) 사용에 익숙해졌다는 점 아닐까 싶다. 그래픽 표현이 미숙해 초기 와이어프레임은 직접 손으로 그렸고, 처음 만지는 툴로 GUI를 하나하나 그리는 일에는 겁부터 났는데, 파트너 언니의 도움 덕에 그래픽 작업이나 툴 사용에 조금씩 익숙해질 수 있었다. 이전에 사용했던 Adobe XD에는 없던 '프레임', '컴포넌트' 등의 기능은 낯설고 어려웠지만, 파트너 언니를 따라 그려보기도, 또 직접 뱃지나 버튼을 직접 만들어 등록해보기도 하면서 작업에 익숙해져 갔다. 이 경험을 통해 보다 효율적이고 빠른 디자인 작업 방식을 터득할 수 있었다.
디자이너로서 본격적인 협업은 SOPT의 자체적인 해커톤인 솝커톤(SOPKATHON)을 통해 경험할 수 있었다. 짧은 시간 촘촘하게 이루어지는 협업을 통해 디자이너에게 기획이 어떤 의미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바로 기획이 우선 명확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종 발표까지 14시간 밖에 주어지지 않은 솝커톤에서 기획안에 확신을 갖기란 쉽지 않았다. 이번 솝커톤의 주제는 '중독'으로, 솝커톤 시작 직전에서야 주제가 공지되었는데, 긍정과 부정의 의미를 모두 고려해야 할 만큼 깊이 있는 고민이 필요했다. 어떤 방향과 주제를 바탕으로 '중독'이라는 키워드를 풀어낼 것인지, 또 그 주제를 어떠한 기능과 형태로 가져갈 것인지 — 기획자 뿐만 아니라 팀원들 사이에서도 많은 의견들이 오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초반에 결정한 기획 아이디어가 쉽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시간적으로나 기술적으로 제한이 많은 솝커톤에서 주제와 기능의 무게를 조율하기가 무척 어려웠다. '중독'이라는 주제에 맞추어 기능을 구상하면 하룻밤만에 구현하지 못한다는 개발적 한계에 부딪혔고, 이에 기능을 줄인다면 '중독'이라는 주제에서 엇나가게 되었다. 이러한 고민이 반복되면서 짧은 시간 안에 타협점을 찾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
이때 디자이너로서 가장 크게 관여할 수 있는 부분은 컨셉이었다. 서비스의 방향과 기능이 유동적인 상황에서 역으로 컨셉을 먼저 잡으면 기획이 좀 더 명확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초단기 해커톤인 만큼 가볍게 사용할 수 있는 서비스를 만들자던 기획자의 의견을 반영해 B급 감성의 컨셉을 제안했다. 바로 지금은 추억 속으로 사라진 '싸이월드'였다. '일(work)' 중독이라는 주제와 '(심리) 테스트' 및 '콘텐츠 추천'의 기능 사이에서 기획 방향을 고민하던 중, 싸이월드 형태의 컨셉을 가져가는 방향으로 팀원들의 의견을 모았고, 이에 중독의 소재를 싸이월드의 연상어인 '밈(meme)'과 '세대 감수성'으로 조율함으로써 기획과 디자인, 개발의 합의점을 찾을 수 있었다.
초기의 기획 아이디어와 비교해 많은 변화가 일어났지만, 기획 방향이 뚜렷해지니 디자인 컨셉과 뷰 구성 또한 금세 명확해졌다. '싸이월드'와 '밈', 그리고 'B급 감성'이라는 컨셉 방향에 맞추어 '썩소' 형태의 로고를 디자인했고, '테스트'라는 기능에 맞추어 디자인 레이아웃은 최대한 간단하고 직관적으로 구성했다. 그래픽 작업에는 포토샵과 일러스트레이터를 주로 사용했는데, 이때 함께한 디자이너 팀원으로부터 툴 사용이나 심미적인 요소와 관련해 많은 도움을 받았다.
개발 또한 마찬가지였다. 기획 방향을 뚜렷하게 잡은 뒤 부가적인 기능은 빠르게 쳐내고 가장 필수적인 기능만 남겨둔 덕에 개발 사항에 대한 우선순위가 확실해질 수 있었다. 물론 최종 배포까지는 세밀한 작업이 더 필요하겠지만, 최종 발표 때 시연이 가능할 만큼 핵심 기능들은 꽤나 완성도 있게 구현되었다.
결과적으로는 좋았다. 과제 제출과 서비스 완성도, 솝커톤 참가자들의 투표가 반영된 평가에서 전체 2등을 수상하게 되었다. '중독'이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를 가볍고 재미있게 풀어냈다는 점과 서비스의 핵심 타겟을 MZ세대로 설정해 SOPT의 회원들이자 솝커톤 참가자들을 저격했다는 점이 한 몫하지 않았나 싶다. 무엇보다도 팀원들이 함께 서비스 방향을 고민하고, 그로부터 방향이 뚜렷한 기획안을 도출해내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합의점을 찾았다는 사실이 가장 의미 있는 것 같다.
그간의 노력들을 조밀조밀 정리하고 보니 굉장히 바삐 살아온 것 같다. 사실 그 정도는 아니고, 그저 지난 IT 서비스 기획자로서의 도전 이후의 갈증을 채우고 싶어서, 또 한층 더 치밀한 성장을 위해서 좀 더 뚝심 있게 새 분야에 덤벼들었을 뿐이다.
덤벼들면 덤벼들수록 부족함을 느낀다. 아직도 좋은 사용성이란 무엇인지, 무엇이 편하고 자연스러운 디자인인지, 또 정확하고 깔끔한 플로우가 어떤 건지 잘 모르겠다. 그 와중에 다행인 건 그러한 나의 무지함에 좌절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아직 모르는 게 많다는 사실이, 배워나갈 것들이 많다는 사실이 참 즐겁게 느껴진다. 내딛는 발걸음이 가볍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