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긋이, 오롯이 나 자신에 집중하기
그땐 뭐가 그렇게 초조하고 바빴는지 모르겠다. 막 대학에 입학한 새내기라면 수업과 수업 사이 공강을 즐겼을 법도 한데, 캘린더의 공백 칸을 그토록 보기 싫어하던 나였다. 비어있는 낮 시간은 교내 아르바이트 쉬프트로 빼곡히 채워댔고, 수업이 모두 끝난 늦저녁엔 매일 다른 동아리 활동에 학교 건물 사이를 뛰다녔다. 하다 못해 도서관에 눌러앉아 밤이라도 지새워야 했다. 바쁘고 치열하게 살아야 함을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상기시키면서, 마치 그래야만 하는 사람인 듯이. 왜 그리도 안달 나 있던 걸까.
그때의 경험들은 마구잡이의 양분이 되었다. 보기에 꽤나 번듯했던 각종 교외활동, 리서치, 프로젝트 등등... 손과 발이 닿는 대로 다양한 활동들을 했기에 휴학을 하고서 입이라도 뻥끗할 수 있었다. 면접에서든 일상 속 대화에서든 말 끝마다 '바쁘다' 혹은 '바빴다'며 자랑스럽게 덧붙이기도 했고. 지금보다도 어렸던 나에게는 바쁜 삶이 세상에 나를 드러내는 방식, 뭐랄까, 명예 징표 같은 것이었다.
휴학, 어느덧 1년 남짓의 시간이 지났다. 한동안 가파르고 날 선 일들을 도장 깨듯 해치우다가 어느 정도 정리가 되고나서부터 비로소 놓치던 것들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부족한 점은 채우고, 되고 싶은 나를 다듬으며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는 것 – 격정적인 변화가 당장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잔잔하고 단단하게 내실을 다지고 있는 요즘이다.
그 과정의 첫 단추는 바로 타인과의 비교에서부터 비롯된 불안함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었다. 불과 두 달 전, 혹은 그보다도 전부터 꾸준히- 바쁜 일들을 마무리 지을 때쯤 밀려오는 무력감에 초조함이 얹어져 막중한 부담감을 느껴왔다. 동시에 주위 사람들과 나 자신을 끝없이 비교했다. 슬슬 졸업을 준비하는, 그러고서 곧바로 내로라하는 대기업에 들어가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학교 친구들에 비해 홀로 제자리걸음을 걷는 듯한 나의 모습은 상당히 대조적이었다.
하지만 타인의 삶과 비교하면 비교할수록 피폐해지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이라는 것을 느꼈다. 스스로를 자꾸 갉아먹어봐야 좋을 바가 없었다. 타인을 의식하지 않고 굳건하게 내 자리를 지킬 수 있도록 계속해서 마음을 다졌다. 주위 친구들의 기쁜 소식을 진심으로 축하해주었고, 그 덕에 자격지심이나 같잖은 경쟁 심리에 배 아파하기보다 본받을 점은 받아들이고 스스로 마음의 평정을 다지는 법을 익힐 수 있게 되었다.
여유를 찾음과 동시에 나 자신으로부터 느끼는 불안감을 다스릴 줄도 알게 되었다. 부족한 학문, 또 더 알고 싶은 분야를 혼자서 공부하고 끊임없이 노력하면서이다. 스스로 나태해지지 않도록 일상을 더욱 촘촘하게 계획하고 기록하고 있다. 요즘 관심사 중 하나인 'IT', '스타트업'에 걸맞게 나름대로 OKR을 설정해 삶의 핵심 가치에 맞추어 매일 실천하고 있고, 애자일 회고 방식 적용해 1~2주에 한 번씩 삶을 돌이켜보고 있다. 성실하고 지속적으로 실천하고 집중하는 것, 그리고 이를 통해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것이 요즘 내가 삶을 마주하는 자세이다.
언뜻 보기에 지금 나의 일상은 단조롭기만 하다. 아침에 일어나 성경 말씀을 묵상한 뒤 기사를 읽으며 마음을 다잡고, 혼자 공부하다가 지겨워질 때쯤 읽기를 미뤄 둔 책을 펼쳐 들기도 하다가, 좋아하는 친구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회포를 풀기도 하고... 그래, 어쩌면 비생산적인 시간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결코 아니다. 나중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정말 가치 있는 것들을 만들고 이루기 위해 타오르는 열정을 조용히 타고 있는 의지로써 잠재워두고 있을 뿐이다. 그러기 위해 타인과 나 자신으로부터 비롯된 불안감을 다스리며 부지런히, 그리고 우직하게 나를 다져가고 있다.
그렇게 지긋이, 오롯이 나 자신에 집중하며 '비생산적인 생산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어느 때보다도 찬란한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