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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rdinary 박사엄마 May 09. 2022

Prologue. 장애아이를 낳았고 갓생 삽니다만

인터뷰 매거진을 시작하며

지금 여기에, 대단하지도 않고 위대하지도 않지만 아이에게 내 인생을 갈아 넣지 않고 나를 포기하지 않으면서 하루하루 뚜벅뚜벅 그 누구보다도 충실히 일상을 사는 엄마들이 있다.


우리는 장애아이를 낳았다.

그리고 인생을 새로 쓰기 시작했다.



어느 날 장애아이를 낳고 눈을 들어 세상을 보니, 세상은 이해 안 가는 것 투성이였다.

나는 그전에도 지금도 그저 그냥 난데, 장애아이를 낳았다는 이유만으로 세상은 나를 가여운 존재, 불쌍한 존재로 여겼다. 세상은 나의 불행을 걱정하고 동정했다. 그리고 내가 비참한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모두들 그렇게 귀띔해 주는 것만 같았다.

두려웠다. 이 아이를 안고 나는 어떻게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야 하지? 내가 노력해서 이룬 것들, 내가 꿈꾸는 것들은 이렇게 한순간에 다 무너지는 건가? 이제 '나'는 없고 '장애아이의 엄마' 그것만이 나의 정체성이 되는 건가? 나는 세상이 기대하는 대로 그렇게, 헌신적인 모성으로 어딘가 부족한 아이를 끝까지 끌어안고 이 아이와 둘이 외로이 표류하다 함께 바다로 침잠하는 그런 역할을 수행하면 되는 건가? 내 인생은, 그럼 나는 대체 어디로 가는 걸까?


둘째를 낳고 내가 본 미디어 세상에서 장애아이 엄마는 위대한 모성으로 아이의 재능을 찾아 비장애인 세계에서 인정받게끔 키운 대단한 엄마이거나, 아니면 통제되지 않는 장애아이 내지는 장애 성인을 끌어안고 아이보다 하루만 더 살고 싶다고 눈물짓는 힘들고 안타깝고 도와줘야 하는 존재 그 두 유형으로 나뉘었다. 대한민국 공중파 미디어의 수준이란, 많이 변화했지만 여전히, 아직도 그러했다.

하지만 정말 그런가? 장애아이 엄마란 존재는 정말 그렇게 약하거나 위대하거나, 혹은 불행하거나 그 불행을 '극복'할 만큼 강인하거나, 그 두 종류로만 실재하는가? 그 둘의 가운데에 있는 다양하고 평범한 삶의 모습들은 어디로 다 사라져 버린 걸까? 장애아이를 낳고도 자기를 잃지 않은 엄마들이 어딘가에 분명히 살고 있을 텐데. 장애아이 '치료'에 자기 인생을 온전히 저당 잡히지 않고도 균형 잡힌 인생 잘살고 있는 엄마들이 반드시 있을 것인데.

그래서 내가 찾아 나서기로 했다. 세상에 많이 알려지지 않은 우리 장애아이 엄마들의 평범하고도 멋짐이 흘러넘치는 그런 이야기들을.


우리는 장애아이를 낳았다.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이 뒤집어졌지만 그래서 뭐? 여전히 잘살고 있다.

지금은 일단 잘살고 있지만 앞으로도 계속 잘살고 싶은데, 그래, 솔직히 미래가 많이 불안하다.

그래서 인생을 새로 쓰기 시작했다.

우리는 더 잘살고 더 멋져질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멋짐을 지키기 위해서 기꺼이 연대할 것이다.

우리는 약하지도 불쌍하지도 비참하지도 않다.

우리는 동정 말고 공정을 원한다.

우리는 누구보다 열심히 나와 내 가족의 일상을 지키며, 우리와 같은 약자들의 존엄을 지키는 일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행동한다.

우리는 진심으로 인생을 사랑할 줄 알며, 남의 고통을 내 것처럼 느끼고 함께 분노할 줄 안다.

우리는 사회가 인간을 인간답게 대하도록 만드는 데 목소리를 낼 것이다.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1분 1초도 허투루 쓰지 않으며 각자의 방식으로 투쟁을 하는 엄청나게 멋진 엄마들이다.

우리는 장애아이를 낳았고, 갓생(God生)을 산다.

우리는 장애아이와 함께 할 거 다 하고 사는 상당히 멋진 엄마들이다.


저의 첫 브런치 북 <내 아이의 장애 마주하기>를 사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 매거진은 갓생 사는 장애아이 엄마들의 인터뷰로 꾸려집니다.
제 안으로만 파고들지 않고, 제 글에 다른 멋진 엄마들을 초대하고자 합니다.
 
제목을 지을 때 머릿속에서 여러 번 고치고 다시 썼습니다.
장애아이를 낳았지만 갓생 사는데요...? 낳고도? 낳았기 때문에? 낳았음에도 불구하고?......
다 마음에 들지 않더군요. -지만, -고도, -기 때문에, -음에도 불구하고... 모두 선행절의 안 좋은 조건을 전제하는 표현들이니까요.
장애아이를 낳은 것이 우리에게 악조건일 수 없습니다. 우리가 멋진 것처럼 우리의 아이들 역시 멋짐이 한도 초과된 아이들이잖습니까.
그래서 결국, 제목에는 태도가 드러나지 않는 무미건조한 어미를 써서 장애아이를 낳았"고", 딱 fact만 쓰기로 했습니다.
또한, 장애아이를 낳았고 갓생 삽니다"만"으로 "만"을 살린 것은 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할 말이 많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문장을 끝맺지 않고 이야기들을 이어가기 위한 장치라고나 할까요?

본업이 있기 때문에 자주 올릴 순 없더라도 적어도 한 달에 한 분의 멋진 엄마들 이야기 올려 드리겠습니다.
혹여 아이의 장애로 힘들어하고 계신 분들이 이 글을 보신다면, 지금 여기에, 당신이 혼자가 아님을 기억하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찐한 hug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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