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rdinary 박사엄마 Sep 29. 2022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 욕심껏 다 해 보고 싶어요.

작은 도전을 하나하나 이루어 나가는, 수현 님 인터뷰

정신 차려. 아픈 건 애지, 네가 아니야.
 
아픈 아이 때문에 한창 정신없을 때 저에게 낮병동 선배 엄마가 이런 이야기를 해 줬어요. 덕분에 깨달음을 얻었죠. 아이와 나를 분리해 내야 한다는 것을요.



2022년 여름, 어느 오전에 화상으로 수현 님을 만났다. 언어치료사로 일하고 있는 그는 잘 정돈된 치료실 공간 안에서 나를 마주했다. 그곳은 오후가 되면 곧 다양한 이유로 언어 자극이 필요한 아이들이 선생님으로서의 그를 만나러 오는 교육 공간이 될 것이었다.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하고 기자로 잠시 일하기도 했던 그는 장애를 가진 둘째를 만나고 새로운 직업, 새로운 인생에서 도전을 멈추지 않는 중이다. 자신의 역량을 펼쳐 보이며 끊임없이 성장하는 그 공간 안에서 그는 안정적이지만 또 한편 분주해 보였다.




#1. 장애아이 엄마, 언어치료사 정수현이 되다


나: 자기소개를 좀 부탁드립니다.

수: 안녕하세요. 저는 3년 차 언어치료사이자 9살 비장애 아들과 8살 장애 아들을 키우는 정수현이라고 합니다. 둘째 동준이는 뇌병변과 지적장애를 가지고 있어요. 출생 직후부터 순탄하지 않았지요. 임신 중에 양수과다증과 내반족 판정을 받았었고 태어나서는 빈호흡이 있어 바로 구급차를 타고 대학병원 니큐에 입원했었습니다. 1~2주 후에 퇴원했는데 집에 와서도 젖병을 빨지 못해 다시 니큐로 돌아갔었어요. 니큐에 있는 아기 주려고 초유를 팩에 담아 얼리고 니큐 면회 시간 기다리고. 진짜 그때의 심정은 정말 참담했어요. 세상에서 제일 우울했던 것 같아요. 남편한테 나 지금 땅속을 파고 들어가다 못해 지구 내핵까지 들어간 것 같다고 했다니까요.  

나: 아...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 알죠. 나만 혼자 아기 없이 조리원 들어가서는 병원에 있는 아기한테 갖다 줄 젖 짜고 있는 상황이란 정말... 그런데 동준이가 지금 꽤 잘 자라고 있어서 처음에 그렇게 힘들었는 줄 몰랐어요.

수: 처음엔 정말 장난 아니었어요. 동준이 생후 5개월부터 재활치료를 시작했고, 그 뒤로 지금까지 쉬지 않고 물리치료, 작업치료, 감각통합치료, 언어치료 등등 할 수 있는 치료 영역은 다 섭렵한 것 같아요. 동준이 두 돌 무렵에는 어린이재활병원에서 낮병동(9to4로 매일 입퇴원을 반복하며 낮동안 집중 치료하는 시스템을 이렇게 부름) 생활을 했는데, 그때 힘들긴 했지만 거기서 멋진 엄마들을 많이 만났어요. 거기서 장애아 키우는 부모에 대한 기초 개념을 구축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나: 그래요? 그 얘기 좀 더 해 주세요.

수: 낮병동 특성상 같은 병실 쓰는 아이들이 있고, 아이들 치료 들어가면 보호자들이 치료 끝날 때까지 병실에서 대기를 하거든요. 그래서 보호자들끼리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많았어요. 요즘 엄마들 다 그렇듯이, 낮병동 엄마들도 결혼 전에, 아니면 장애아이 낳기 전에는 다들 한가닥 하던 멋진 커리어우먼이었던 분들이 많았어요. 저는 두 돌 아이 힙시트에 둘러메고 이제 막 재활 시작한 초짜였는데, 게 중에는 치료실 경력이 제법 되는 8살, 9살짜리 애들 엄마도 있었거든요. 아시죠? 처음에 진짜 세수만 간신히 하고 애 챙겨서 막 어리바리하며 병원 가고 그러는 거. 근데 어느 날 8살 된 아이 엄마가 이런 이야기를 해 주더라고요. 자기도 처음에는 세수만 겨우 하고 빗지 않은 머리에 대충 핀 찔러 꽂고 정신 빠진 얼굴로 애만 챙겨 다닌 적이 있었는데, 또 다른 선배 엄마가 이렇게 말했대요. "정신 차려. 아픈 건 애지, 네가 아니야."라고요.

나: 와, 맞네요. 명언이다 정말.

수: 그렇죠? 저도 이 말을 듣고 장애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마음가짐에 대해 큰 깨달음을 얻었어요. 엄마들이 아이가 장애 판정을 받으면 마치 자기 자신에게 장애가 생긴 것처럼 허우적거리게 되잖아요. 애가 아픈데 내가 지금 꾸밀 정신이 있어? 내가 한가롭게 놀 자격이 있어? 하며 자기 자신을 검열해요. 저도 그랬어요. 근데 이거 너무나 어리석은 생각이더라고요. 아이는 아이고, 저는 접니다. 당연히 아이들이 너무 소중하고 잘 키워내고 싶고, 그게 제 인생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그게 제 인생의 전부는 아니에요. 아이와 나를 분리해 내야 하고, 저는 지금 어느 정도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나: 공감해요. 장애아이 엄마들이 아이의 장애를 이유로 자신의 당연한 누릴거리들을 제한하지 않았으면 해요. 그럼, 그런 깨달음을 얻은 것이 수현 님을 언어치료사라는 새로운 직업으로 이끌었나요?

수: 네, 맞아요. 동준이 낮병동 하면서 대학원 공부도 시작했어요. 아침에 첫째 어린이집 보내 놓고 10시부터 4시까지 둘째 낮병동 하고 집에 와서 대충 정리하고 저녁 준비하고 저녁 6시 반까지 대학원으로 가는 생활을 했어요. 밤에 돌아와서는 애들 재워놓고 일어나 과제를 했고요. 하루하루가 미션 수행 같은 미친 스케줄을 소화해야 했지요.

나: 와, 진짜 엄청나게 바쁘셨겠네요. 어떻게 그게 가능하셨어요?

수: 사실 처음에 시작한 거는 저희 엄마가 제안을 하셨기 때문이에요. 안타까우셨겠죠 제가. 동준이 키우며 전전긍긍하는 제 모습을 보시고는 "육아는 도와줄 테니 대학원에 다녀봐라."라고 하셔서, 어떤 걸 할까 하다가 어차피 동준이가 평생 재활을 할 것 같은데 내가 이 세계를 잘 알려면 그 세계 안으로 뛰어드는 게 좋지 않을까 했었고, 학부 전공이 국어국문학이라 그래도 전공하고 가장 가까운 언어치료학과를 선택하게 됐어요. 깊게 고민 안 하고 시작하긴 했는데, 와... 언어치료학이라는 학문은 너무나 넓어서... 대학원을 졸업하기까지 너무나 힘들었다는 말밖에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네요. 학비도 싸지 않고 해서 막상 이건 아닌데 싶었던 순간도 있었지만 그땐 이미 들인 시간과 돈이 아까워서 그만둘 수가 없었어요. 아, 그 학비는 동준이의 장애진단금이었답니다.

나: 아하하. 동준이가 엄마 대학원 학비를 내주었군요.

수: 그런 셈이죠. 중복 장애라 진단금이 꽤 나왔거든요. 힘들었지만 그래도 그렇게 정신없이 공부를 한 덕분에 우울에서 좀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엄마도 아마 그런 생각으로, 나를 좀 환기시키려고 공부하라고 하신 거 아닐까요?

나: 막상 치료사가 되어 보니 어떠세요?

수: 적성에 잘 맞아요. 또 장애아이 키운 경험도 있고 하니까요. 처음엔 막 열정에 불타서 다 우리 애들 같고, 집에 가서도 (치료받으러 온) 애들이 생각나고, 제가 할 수 있는 거 다 해 주고 싶고 그랬죠. 사실 요즘에 제가 치료사 일뿐만 아니라 센터 관리직으로도 일을 하고 있어서 굉장히 많은 시간을 센터에서 보내요. 그러면서 좀 매너리즘에 빠져서 열정이 사그라들던 찰나였는데, 이 인터뷰 제안을 받고 질문들에 미리 답을 써 보면서 그런 기분들이 다 날아갔어요. 내가 무얼 위해서 이렇게 하고 있는지 생각났고, 다시금 힘을 얻게 되었어요.


#2. 연대를 위한 독서모임, 그리고 김원영 작가의 성덕


나: 독서모임도 조직해서 하고 계시잖아요. 저랑 같이.. (하하)

수: 대학원 다닐 때쯤(2018년) 인스타그램을 시작했는데 거기서 장애아이 키우는 부모들을 만나게 됐어요. 제일 처음 알게 된 분이 아마도 지애 님(바로 나)인 거 같아요. 자주 가던 카페(장애부모들이 모인 네이버 카페)에 지애 님이 쓴 글을 보고 인스타에서 팔로우했는데, 그분의 친구, 또 친구 이렇게 뻗어나가기도 하고 알고리즘으로 인해 많은 동지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러면서 장애 부모들끼리도 연대가 중요하다는 것을 눈치챈 거 같아요. 하지만 어떻게? 방법을 궁리하던 중 지애 님이 19년도에 장애인 무용제에 함께 가지고 제안하셨고, 그때 모인 사람들한테 대뜸 독서모임을 하자고 말해 버렸죠.

나: 맞아요. 무용제 보고 밥 먹을 때 얘기하셨죠. 그때 다들 약간은 부담스러워했을 거예요. 그래도 수현 님이 적극 추진해서 지금의 <도담도담 독서모임>이 만들어졌지요.

수: 일단 장애 세계를 알려면 공부가 필요했고 독서모임이 적절할 거란 생각이 있었어요. 다른 독서모임을 찾아보면서 어떻게 하는 건지 파악했어요. 인원이 너무 많으면 발언하기 힘들다는 것을 주워듣고 인원 제한도 두고 나름대로 체계를 갖추어 시작을 했는데, 운이 좋게도 다들 적극 동참해 주시고 멤버 자체도 구성이 좋아서 오래가는 것 같아요.

나: 우리 첫 책이 김원영 작가님의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이었어요. 수현 님이 추천하셨죠.

수: 네, 맞아요. 저는 김원영 작가님의 팬입니다. 대학원 다닐 때 특수교육학 교수님이 추천해 주신 책이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이었는데요. 그 책을 읽고 이건 저의 인생 책이라 해도 될 정도로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 독서모임에서도 같이 읽고 싶었어요. 그 책에 나온 한 부분에서 또 한 번 깨달음을 얻었는데요. 김원영 작가가 '감사의 말'에 어머니에게 남긴 말이 있는데, 딱 이렇게 살아야겠다 싶었거든요. 잠시 읽어 드릴게요.


마지막으로 내가 잘못된 삶이 아니라는 믿음, 나아가 내 삶을 수용하고 변론을 시도하는 그 모든 순간에는 나의 가족, 특히 어머니 김영숙 여사가 있었다. 이 세상에서 부모와 자식으로 만나게 된 것이 기쁘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장애아를 낳고 길러낸 부모가 내게 가진 죄책감, 장애아로 태어나 자란 내가 부모님에게 가진 부채감은 우리가 이렇게 만나게 됨으로써 모두 녹아내렸을 것이다.
-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 감사의 글 중에서, 김원영 -


수: 동준이가 나와 부모 자식으로 만나게 된 것이 기쁘다고 말할 수 있는 인생을 살고 싶어요. 

나: 세상에. 너무 감동입니다. 그래서 그 팬심으로 최근에 김원영 작가님이랑 독서모임까지 하셨다면서요? 완전 성덕이 되셨는데요.

수: 네. 성덕이죠. 트레바리라는 독서모임에서 김원영 작가가 클럽장인 독서모임이 있다고 해서 일단 신청을 했어요. 한 달에 한 번, 총 네 번을 강남역 클럽에서 모여야 하는 거라, 일하는 애엄마한테 쉽지 않은 일정이었지만 팬심으로 신청해서 이번 달에 마지막 모임을 앞두고 있습니다. 마지막 날 작은 선물과 편지로 제 팬심을 표현하려고 고민 중이이에요. 제가 막 열성 팬처럼 따라다니지는 못하겠지만 항상 응원하고 있다고, 제 삶에 깨달음을 주셔서 정말 감사하다고 꼭 전하고 올게요.  


#3.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 욕심 많은 내가 당연한 것


나: 지금 보니 수현 님 정말 하고 싶은 것도 많고 하고자 하는 건 망설임 없이 해내는 강한 분이시네요. 수현 님 보면서 늘 흔들림 없이 편안한, 시몬스 같은 멘탈을 가진 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멘탈 관리의 비법이 있나요?

수: 멘탈이 시몬스... 는 아니고요. 저도 많이 흔들리고 왔다 갔다 해요. 하지만 깊이 생각하지 않는 게 비결이라면 비결? 인 것 같아요. 대학원 갈 때도 '대학원 가? 음 그럼 이왕이면 언어치료.' 이러고, 막상 시작하고는 또 힘들어서 관두고 싶기도 했지만 오래 생각하지 않고 '돈 아까우니까 계속해야 돼.' 이러고. 그냥 하기로 했으면 그냥 하는 거? 그러다 보니 애 키우며 대학원도 다니고, 지금 치료사 일도 하고, 독서모임도 하고 할 거 다 하는 거 같아요.

나: 단순한 게 비결이다? 하하. 좋네요.

수: 그리고 저는 진짜 욕심이 많은 것 같아요. 일도 잘하고 싶고 돈도 많이 벌고 싶고 운동도 열심히 해서 건강한 몸을 갖고 싶고 멋지게 보이도록 자신을 꾸미고 싶기도 해요. 욕심이 많죠. 근데 인간은 원래 욕심이 많지 않나요? 장애아이 엄마라고 해서 욕심내지 말라는 법은 없잖아요. 이게 당연한 거죠. 아까도 말했지만 아이는 아이고, 나는 나니까. 내가 원하는 거를 욕심껏 다 해 보고 싶어요. 


#4. 야 너두 갓생 살 수 있어


나: 마지막으로 지금의 인생이 갓생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수: 그럼요. 동준이를 낳고 나서는 그 전이 정말 전생으로 느껴질 만큼 아득해요. 잘 기억도 안 나요. 저는 그전까진 치열하게 살아본 적이 없는 한량이었어요. 고등학생 때 밤새워 공부해 본 적도 없고 대충 성적 맞는 대학에 들어가서는 밴드 동아리 회장 하면서 동방으로 출근하고, 대학생활 반절은 씨씨(캠퍼스 커플)로 다니고, 대학은 원래 술 마시고 놀면서 다니는 건 줄 알았어요. 그 뒤로도 그저 주어진 대로 치열하게 산 적이 없는 제가 동준이를 낳고 나서 처음으로 치열하게 살아봤어요. 밤새워 공부도 해 보고, 뭐 하나 꾸준히 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인데 재활치료만큼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안 빠지고 힙시트 메고 열심히 다녔습니다. 아, 일단 치료비가 너무 비싸서 빠지기 아깝기도 했고요. 하하. 만약 동준이가 없었더라면 아마 언어치료사도 되지 않았을 거예요. 어려운 공부이고 힘든 일이거든요. 그래도 지금 이렇게 일도 많이 하고 그래서 돈도 나름 많이 벌고 그 돈으로 아이들 교육도 시키지만 일정 정도는 저한테 투자도 하고. 저 필라테스 하거든요. 비싼 거 아시죠? 일 안 했으면 남편한테 눈치 보여서 못 했을 것 같아요. 내가 돈 벌어서 꾸준히 운동도 하고, 독서모임도 하고 싶은 대로 하고, 틈틈이 놀러도 다니고. 이 정도면 갓생 아닐까요?

나: 맞습니다, 갓생. 수현 님 하고 싶은 거 다해요. 진짜 응원합니다.  

수: 고맙습니다. 결핍이 사람을 움직인다고 하죠. 장애아이 엄마 된 게 저한테는 되게 성장 면에서 좋은 일이었어요. 뭔가 진짜 인생을 살아보게 하는 그런 계기가 됐다고 해야 하나? 정말 살아있다는 느낌이 있고요. 별 거 아니지만 우리 엄마들 욕심 낼 거 내고 자기 자신을 포기하지 않으면 좋겠어요. 아이 인생은 아이에게 어느 정도 맡기고 같이 갓생 살아요.



*인터뷰이 수현 님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rachel_with_u/  



씩씩하고 기복 없는 수현 님과의 인터뷰를 마쳤다.
동준이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그는 언제나처럼 큰 고민 없이 첫째가 다니고 있는 근거리 초등학교를 선택했다고 했다.
장애아이와 비장애아이를 키우는 부모는 이 둘을 같은 학교에 보내야 할지 끊임없이 고민한다. 여러 가지 이유로 아이들을 다른 학교로 분리해 보내기도 하고, 어쩔 수 없이 같은 학교로 보내기도 한다.
수현 님이 비장애 첫째와 같은 근거리 초등학교로 동준이를 보내기로 한 이유는 단순하다. 부모의 말과 행동이 일치해야 했기에. '장애'가 나쁜 거, 부끄러운 거 아니라고 첫째에게 가르쳐 놓고 동준이를 장애 때문에 다른 학교로 보낸다면 첫째가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그는 자신이 첫째와 둘째를 다른 학교에 보낸다면, 사실은 장애는 불편한 것, 숨겨야 하는 것이라고 첫째에게 무언의 사인을 주게 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나는 그의 이런 단순함, 용감함, 패기를 사랑한다.
앞으로 그의 인생에서 또 다른 어떤 변곡점을 맞이하게 되더라도, 그는 "뭘 깊게 생각해? 그냥 하면 되지."라는 정신으로 뭐든 잘 해낼 것이다.
그리고 결국엔 또 한 뼘 성장해 있을 테지.

세상 사람들!!! 여기 한 명 또 있어요. 멋진 장애아이 엄마!!!
나만 알고 있기 너무 아까우니 우리 수현 님 꼭 알아주세요!!!!!
매거진의 이전글 내 인생의 잔잔한 패턴은 내가 만드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