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운명적인 타이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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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3일 월요일,
[하루 늦게 쓰는 일기]
6시간 만에 먹는 맘마.
눈을 질끈 감고 열심히도 빨아들인다. 210ml을 단숨에 비우고 다시 쿨쿨쿨. 남편은 알람소리에 벌떡 일어나 출근 준비를 했다. 거실로 나오니 화장실에서 드라이기 소리가 슁슁슁 들려왔다. 따뜻한 물 한 잔, 통에 담아둔 고구마랑 삶은 달걀 두 개. 사과는 남편이 마저 챙기고 마스크를 끼고 나간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힐 때까지 쫑알쫑알 떠드는 나. 각자의 하루를 응원해요. 잘 다녀오십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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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시 반이 지나 우리는 거실로 나왔다.
분유를 먹이고 이유식을 데운다. 의자에 앉혀서 소고기미역표고버섯죽을 한 입씩 먹이는데 반응이 시큰둥. 요즘은 먹다가 꼭 한 번씩은 운다. 아마 답답해서 그런 것 같은데, 그도 그럴 게 작은 의자에서는 탈출을 했는데 여기선 꼼짝도 못 하니까 갑갑하기도 하겠지. 또 다른 이유를 생각해보면, 표고버섯은 향이 강해서 맛이 없나.. 미역도 맛이 있을 것 같진 않네. 나무는 점점 크게 울었고, 결국은 조금 남긴 채 아기를 의자에서 빼냈다. 근데 눈을 비빈다. 좀 전에 일어났는데 또 졸리다고? 우리 후다닥 씻고 자자. 어찌어찌 혼자서 머리 감기고 씻기기 성공했다! 후하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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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이고 재우기, 놀아주기의 반복.
아주 잠깐 자고 일어난 나무는 또 열심히 돌아다닌다. 바퀴 달린 의자를 좋아하는데, 불안하게 지켜보는 내 눈빛을 너는 알까. 점점 격해지는 의자사랑. 부엌에 있는 쓰레기통사랑. 장난감 통에 있는 걸 다 꺼내야 직성이 풀리니. 트롤리에 있는 수건이랑 까까는 다 빼야 속이 시원하니. 매트가 아닌 바닥, 유리 창문쪽과 구석에서 노는 게 재미있니. 내려놓으면 안아달라고, 안고 있으면 몸을 구부려 탈출하려 하고.. 엄마는 너랑 노는 게 좋은데 종종 지쳐.. 특히 이유식 먹일 때. 먹다가 삥삥 울어대니 마음이 바빠, 동동거리는 나의 하루. 그럼에도 한 그릇을 시원하게 비워주면 웃고, 거대 똥파티를 해주면 웃고, 날 꽉 안아주면 난 웃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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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집에 왔다.
퇴근을 했지만 그는 다시 출근을 했네. 육아 출근과 저녁 준비. 식사까지 짜잔!하고 못 차려주는 아내여서 남편은 저녁에 이어 밤까지도 바빴다. 그는 선지해장국, 나는 소고기국을 먹는다. 밑반찬 부자가 된 우리. 이번엔 돌싱글즈를 보는데, 조용히 보게 할 우리 나무가 아니지. 안아달라고 찡찡, 놀아달라고 찡찡. 그럼 우리는 또 보던 걸 멈추고 아기에게로 향한다. 다시 먹이고 재우기, 놀아주기의 반복. 빨래개기, 설거지와 청소기 돌리기, 아기 씻기기로 이미 지쳤는데.. 나무는 오늘도 일찍 잘 생각이 없다. 저녁에 잠깐 무기력했던 나, 아니 피곤하다고 해야 하나. 야밤에 매트를 옮기다 선풍기를 쓰러뜨려 분해가 돼서 씩씩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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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서였던 오늘.
알게 모르게 가을이 다가왔다. 8월의 끝자락, 동률님의 ‘여름의 끝자락’을 들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8월이 끝나가니까 기분이 이상하네. 괜히 헛헛한 마음, 라디오방송에서 흘러 나오는 음악들로 위로 받는 밤이다. 오늘, 남편이 켜 준 라디오가 고맙고 고마운 밤. 우리 오늘도 너무 수고했고 고생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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