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이름으로

추억의 된장찌개

by 홍작

“엄마 된장찌개.”

스무 평이 조금 넘는 식당 한쪽에 가방을 내려놓기가 무섭게 난 엄마에게 된장찌개를 끓여달라고 했다.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던 엄마가 물었다.

“왜 무슨 일 있어?”

“일은 무슨 일. 배고파 죽겠어.”

난 사실대로 말하지 못했다. 사실대로 말했다간 엄마 앞에서 눈물을 흘릴 것 같았다. 하여 도망치듯 화장실로 들어갔다.

하. 뭐라고 둘러대지?

평일 오후에 갑자기 엄마를 찾아온 이유를 만들어야 했다. 엄마에게 쯧쯧쯧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엄마에게 난 최고의 딸이니까.

“뭐해? 된장찌개 끓어!”

엄마가 소리쳤다.

“알았어. 곧 나가.”

난 변기 물을 일부러 천천히 내리고 세면대로 걸어갔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이다. 아무 일도. 난 그저 된장찌개가 먹고 싶어서 사북에 온 것이다. “너 정말 괜찮냐?”

귀신같은 엄마. 화장실 문밖에서 엄마가 재차 묻는다. 나는 애써 밝은 톤으로 말했다.

“나간다고! 조금만 기다려!”

난 되도록 천천히 손을 씻었다. 이상하게 손을 씻는 내내 눈이 가려웠다.

왜 이렇게 가렵지.

비누거품이 묻은 손으로 눈을 비비다 그만 눈물이 났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내가 검은 강물이 흐르는 사북에서 태어난 것이 잘못이었을까? 내 아버지가 광부라는 게 잘못일까? 도대체 뭐가 잘못일까? 난 그만 눈물을 터뜨렸다. 그날 그때처럼.


*


“엄마 크레파스 어디 있어?”

학교에서 돌아온 난 스케치북과 크레파스부터 찾았다. 내일 학교에서 열리는 사생대회를 준비해야 했다.

“책상 아래 오빠가 쓰던 크레파스 있잖아.”

엄마가 부엌에서 소리쳤다. 다른 엄마들은 준비물부터 숙제까지 하나하나 다 챙겨 준다고 하던데. 울 엄마는 날 너무 믿어서인지 아님 그냥 관심이 없는 건지 날 너무 방치했다. 모든 걸 내가 다 챙겨야 했다. 게다가 오빠가 쓰던 거 쓰라니 짜증이 났다.

“오빠 거 싫어. 내 크레파스 사줘. 생일선물로 사준다고 했잖아!”

매번 이런 식이다. 생일 선물로 사준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사준다, 말로만 약속하곤 사준 적이 없었다. 한번은 세배 돈을 모아 사겠다고 엄마에게 맡겼더니 그걸 몰래 써버렸다. 계모도 이렇지는 않을 것이다.

“사줘! 사달라고!! 다른 얘들도 다 새 크레파스 가져온다고!!!”

억울했다. 나보다 공부 못 하는 민정이도, 나보다 선생님 말씀 안 듣는 선영이도 자기 이름이 쓰여진 크레파스를 가져왔다. 나도 내 이름이 써진 크레파스를 갖고 싶었다. 내 울음소리가 커지자 엄마가 젖은 손을 앞치마에 닦으며 방으로 들어왔다.

“엄마도 사주려고 했지. 그런데 오빠 거 너무 새 거잖아. 한 번도 안 썼어.”

거짓말이다. 오빠 쓰던 거 금색도 없고, 보라색도 없어 이번에 새 걸로 사주고 나보고는 오빠 걸 쓰라는 거다.

“오빠 거 금색도 없고. 보라색도 없다고!”

“무슨 소리야. 여기 금색도 있고, 보라색도 있는데.”

엄마가 오빠 쓰던 크레파스를 꺼냈다. 순간 내가 잘못 알고 있었나 싶었다. 엄마가 틀릴 리가 없으니까. 차라리 내가 틀렸으면 하고 바랬다. 난 내일 금색과 보라색이 들어간 멋진 그림을 그리고 싶었으니까. 그러나 엄마가 꺼낸 오빠가 쓰던 크레파스엔 금색 크레파스가 없었다. 보라색도 없었다.

“엄마 거짓말쟁이!!!!”

“어, 이상하다. 분명 금색하고 보라색 있었는데.”

잠시 말을 끊었던 엄마는 미안한 듯 조용히 내 이름을 불렀다.

“부용아, 어차피 사생대회에 금색이랑 보라색을 쓸 일이 없잖아. 그러니 그냥 가져가. 응? 엄마가 다음에 진짜 부용이 크레파스 사줄게.”

“다음에. 다음에. 맨날 난 다음이야!”

결국 난 울음을 터트렸다. 서러웠다. 엄만 단 한 번도 내 엄마가 아닌 것 같았다.

비단 크레파스만이 아니었다. 한번은 엄마가 오빠 내복을 건네며 나에게 입으라고 했다. 난 여자가 어떻게 남자 내복을 입느냐고 싫다고 거절했다. 그러자 내복 바지 가운데 구멍만 메우면 된다며 엄마가 손수 가운데 구멍을 바느질 해 주었다. 구멍은 메웠지만 천을 덧대놓은 터라 아래가 봉긋했다. 엄만 바지를 벗지 않으면 남자 내복인지 모를 거라며 날 달랬다. 추워 죽느니 창피함을 선택한 난 그 겨울 오빠 내복을 입고 다녔다. 그런데 왠일. 너무나 익숙해져서 의식을 못 한 탓이었는지. 그 해 신체검사에서 난 당당하게 바지를 벗었고 아이들에게 놀림거리가 되었다. 남자 내복을 입은 여자 아이. 가운데 구멍을 꼬맨 내복바지. 한동안 아이들은 날 놀렸다. 엄마에게 난 오빠의 재활용품 같았다.

다행히 엄마 말이 옳았다. 사생대회에선 금색과 보라색을 쓸 일이 없었다. 주제가 사북 풍경이었기 때문이다. 난 눈에 보이는 대로 뾰족뾰족한 산과 지그재그로 서 있는 소나무, 그리고 검게 흐는 강을 그렸다. 화려함도 아름다움도 없는 조금은 어둡고 쓸쓸한 사북이었다. 그 사북이 나랑 닮았다는 생각도 했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 그림으로 난 금상을 받았다. 멋지지도 아름답지도 화려하지도 않은 내 그림이 상을 받은 게 조금 의외였지만 상을 받는 건 기쁜 일이었다. 게다가 담임 선생님께서 특별히 나를 불러 귀빈들에게 내 그림을 설명하라고 하셨다. 갑자기 내 능력치가 업그레이드 된 느낌이었다. 그래서 조금 우쭐해 있었다.

“제 그림은 산 위에서 내려다본 사북 풍경입니다.”

그때였다.

“어머. 이곳 아이들은 강을 검게 그리네. 쯧쯧쯧.”

솔직히 난 칭찬을 기대했었다. 상을 받았으니까. 처음으로 받은 상이니까. 아무에게나 주는 상이 아니니까. 그런데 이상하게 나에게 돌아온 건 쯧쯧쯧이었다. 순간 검은 물을 옴팡 뒤집어쓴 것처럼 부끄러웠다. 이곳에서 태어난 게 큰 잘못처럼 느껴졌다. 모든 소리가 쯧쯧쯧으로 들렸다.


“쯧쯧쯧” = 남자내복을 입은 여자아이. ㅋㅋㅋ

“쯧쯧쯧” = 봐. 가운데 구멍은 꼬맸네. ㅋㅋㅋ

“쯧쯧쯧” = 금색, 보라색도 없는 크레파스 ㅋㅋㅋ

“쯧쯧쯧” = 검은 강에서 사는 아이 ㅋㅋㅋㅋ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왜 그리 먼지. 검은 강을 검게 그린 게 쯧쯧쯧 당할 일인지. 12살 내 인생은 쯧쯧쯧에게 흔들렸다.

“뭐해? 밥 안 먹고.”

엄마가 내 앞으로 된장찌개를 밀어주며 말했다. 처음이었다. 내 앞으로 음식을 밀어주는 건. 아마도 무슨 상을 받았는지 궁금했을 것이다. 난 모른 척 밥을 구겨넣었다. 목구멍 너머로 자꾸만 콧물이 넘어갔다.

“너 우니?”

“울긴 누가 운다고 그래.”

난 된장찌개를 밀어 넣었다. 그때였다. 따듯한 된장찌개가 목구멍으로 내려가자 콧물이 말라갔다. 구수한 된장찌개가 온몸으로 퍼지자 날 괴롭히던 쯧쯧쯧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엄마 된장찌개엔 이상한 힘이 있었다. 쯧쯧쯧을 사라지게 하는 힘.

그날 이 후로 쯧쯧쯧은 시시때때로 날 괴롭혔다. 난 쯧쯧쯧을 피해 강릉으로 떠났고, 다시 서울로 떠났다. 난 더 나은 삶을 위해 노력했다. 난 더 이상 강원도 사투리를 쓰지 않는 서울 여자가 되었고, 이제는 제법 글로 밥 벌어 먹는 작가로 거듭났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갑자기 나타난 쯧쯧쯧에 다시 고향을 찾았다.


*


“어서 먹어.”

엄마는 된장찌개를 내 밥그릇 앞으로 바짝 붙이시며 말했다. 그새 엄마 얼굴에 주름살이 늘었다. 젠장. 사장이 요구하는 대로 써줄 걸 그랬나? 엄마의 주름살을 보자 모두 내 잘못 같았다. 나는 애써 엄마를 외면하며 된장찌개를 먹었다. 엄마 맛이다. 순간 거짓말처럼 나를 괴롭히던 모든 문제가 사라졌다. 그곳에는 오직 엄마와 나 그리고 된장찌개만 있었다.

“도대체 뭘 넣고 끓이는 거야? 왜 난 이 맛이 안 나?”

“나도 그랬다. 네 나이 땐 뭘 해도 맛이 안 나더라. 그저 참고 꾸준히 끓여봐. 언젠가는 네 딸이 좋아하는 된장찌개가 될 거야.”

젠장. 귀신같은 엄마. 결국 엄마의 말 한마디에 난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눈물이 콧등을 타고 된장찌개 안으로 들어갔다. 난 말없이 된장찌개를 먹었다.

“너 우니?”

“울긴 누가 운다고 그래. 비눗물이 들어가서 그래. 밥 좀 더 줘.”

난 빈 그릇을 건넸다. 엄마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나는 검은 강물이 흐르는 사북에서 자랐다. 비록 탄광에서 아무 여과 없이 흘러내리는 물 때문에 강물이 검게 변했지만 사북은 아름다운 곳이었다. 봄이면 동무들과 산에 올라 오디랑 머루를 따 먹고, 여름이면 울창한 나무로 본부를 만들어 전쟁놀이를 하고, 가을이면 단풍을 주워 책갈피를 만들고, 겨울이면 하얀 눈비탈에서 썰매를 탔다. 사북은 놀이터이자, 냉장고이자, 선생님이었다. 쯧쯧쯧은 절대 알 수 없는 사북만의 마력이었다.

“짜니? 물 더 줄까?”

“아니. 괜찮아. 아니 괜찮아졌어.”

괜찮아졌다. 된장찌개가 입에 들어간 순간 모든 것이 괜찮아졌다. 그제야 엄마 얼굴이 제대로 보인다. 엄마도 힘들었겠지? 매 순간 짊어져야 했을 무거운 책임감과 절대 고독을 엄마는 어떻게 견뎠을까? 나도 모르게 엄마 얼굴을 어루만졌다.

“엄마...”

“뭐 하는 거야, 징그럽게.”

엄마가 펄쩍 뛰었다. 그러나 난 안다. 쑥스러워서 저런다는 걸. 누구보다 날 아끼고 사랑한다는 걸 이젠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이제야 엄마의 얼굴에서 내 얼굴도 보이는 것 같다.

“엄마 나 이제 도망치지 않을래. 쯧쯧쯧에 맞설래.”

“쯧쯧쯧에 맞서다니? 뭔소리야?”

“검은 물도 얼면 하얀 얼음이 된다고.”

“갑자기 검은 물 이야기는 뭐야. 물은 언제나 하애.”

“그러니까. 물은 언제나 하애.”

맞다. 나를 괴롭혔던 쯧쯧쯧은 어쩌면 내 안의 쯧쯧쯧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여 쯧쯧쯧에 맞선다는 건 더 이상 가난이 날 괴롭힐 수 없으며, 더 이상 차별이 날 괴롭힐 수 없다는 선언이었다. 비로소 난 쯧쯧쯧과 이별할 수 있었다.


p.s.

내 안의 못난이, 내 안의 콤플렉스. 이젠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