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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자 Jun 24. 2021

지도를 만들며 여행 중 01

유방암 진단을 받기까지 - 시작

몇월 몇일인지 적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2021년 5월 27일 목요일, 오전 나는 암환자가 되었다.


"결과가 안좋네요. 암입니다."

라고 의사선생님이 담담하게 말했을 때, 나는 정신이 아득해짐을 느꼈다. 아닐 꺼라고 생각하는 마음보다는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너무나 커서 울거나 하지는 않았다. 심지어 들어오기 전, 의사 선생님이 그 말을 하는 상상까지도 했다. (왜 의사 선생님은 좀 더 새로운 표현을 개발하지 않는가.) 통증이 있거나 몸의 이상을 느낀 것은 아니다. 1월부터 약간씩 왼쪽 가슴이 오른쪽 가슴보다는 딱딱하다는 느낌이 있었고, 그 느낌이 좀 불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2021년 1월에는 결혼도 있고 해서 사실 이런 것을 생각할 여를도 없었다. 다만 처음으로 결혼식 날짜 때문에 피임약을 먹었는데, 그것 때문에 생리나 생리전 변화에 더욱 예민했기 때문에 잘 느껴졌으리라.


2월에는 가슴에 찌릿한 통증이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결혼 1개월도 안돼 임신이 되어버려 임신성 통증인 줄 알았다.(그리고 그럴 수도 있을 듯. 대부분은 초기에 통증이 없다고 하니.) 그리고는 입덧과 새로운 직장에 대한 적응으로 여유가 없던 시절을 보내고, 4월 초에는 유산 소식.


찰떡 같이 붙어 있으라고 '찰떡'이라고 태명을 붙어주었으나 찰떡이는 생기지 못하고 집만 지어놓고 떠났다. 소파술을 할 때 살면서 처음으로 수면 마취를 하고, 깨어날 수 있을까를 걱정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귀여운 수준의 걱정이었으나 그때는 무서워서 오들오들 떨었다. 그리고 소파술이 끝나고 한 달 뒤, 생리를 기다리는 초초한 시간이 흘렀다. 수술은 했으나 확인할 길이 없으니, 혹시 모를 부작용이 생겼을까 걱정했었는데 제대로 되었는지 확인할 방법은 생리밖에 없었다. 의사선생님도 생리를 하고 일주일 뒤에 오라고 했으니 생리만 기다리면서 생리전 증후군에도 예민하게 받아들인 것이 발견의 계기 중 하나였다.


아무래도 조금 이상해.

라고 생각한 것은 생리가 끝난 후였다. 아무리 만져봐도 왼쪽 가슴과 오른쪽 가슴의 느낌이 좀 다른 것이다. 혹시나 몰라, 나중에 이 글을 볼 사람들을 위해 적는다면 가슴 곁의 부분이 아니라 속, 뼈에 가까운 곳에 뭔가 덩어리 같은 것이 있었다. 밀가루 반죽이 말라 붙은 것 같은. 유방암 카페에서는 조금 말랑한 지우개 같다고 표현하는 그 무언가. 보통 유방암 자가진단을 통해 '멍울'을 발견하면 유방암일 수 있다라는 글을 보게 되는데 그 멍울이 어떤 것인지 본적이 없으니 답답했다. 유방이다 보니 사진보다는 그림 밖에 없는데 실제로 저렇게 불룩하게 튀어나오는 건지, 아닌지도 몰랐었다. 내 경우에는 겉으로 보기에는 전혀 티가 나지 않았다. 조직검사, 유방암, 그와 비슷한 키워드로 검색을 계속하면 할 수록 공포심만 커졌다.


그러던 중


'요근래 쌤 꿈을 두번이나 꿨는데 꿈 속에서 쌤이 멀리 이사를 가거나 떠나거나 하는 거야. 매번 서운해 하고 아쉬워 하면서 혼자 애를 끊이다 깨는데 좀 힘들더라고, 보고 싶어서 그런거 겠지?'


하고 친하던 선생님께 카톡이 왔다. 불안의 증폭은 거기서부터였는지도 모른다. 꿈이란 것, 그거 환상일 수도, 개꿈일 수도 있지만 도저히 찝찝해서 그냥 넘어가지지가 않았다. 그래서 그 다음 주 월요일인 5월 17일 나는 초음파를 보러갔다.


"모양이 안좋네요. 조직검사 해야할 것 같아요."

초음파 선생님은 상냥하게 말씀하셨지만 나는 또 가슴이 조여지는 느낌을 받았다.


"암일까요?"

내가 물었다. 초음파 선생님은 통상 암이라고 하는 것은 굉장히 딱딱한데, 이건 아닐 것 같다고 말했다. 불안감에 몇몇에게 전화하니 대부분 암을 발견한 사람은 굉장히 딱딱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아니었다. 실날같은 희망이란 이런 것일까. 초음파 검사를 끝내고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조직검사를 해야할 것 같다고 말했다. 비가 오는 날이었다. 하늘도 울고, 나도 울었다.


"괜찮을 거예요."

남편이 상냥한 목소리로 말했다. 남편은 언제나 그렇다. 늘 차분하고 상냥하게 말해준다. 하지만 이미 내 마음은 불안에 늪으로 빠져들었다. 그렇지만 정신을 차리고 조직검사가 가능한 병원을 찾아 예약을 했다. 종소도시에 산다는 건, 선택지가 몇개 없다는 단점이자 장점이 있다. 조직검사가 가능하다는 두 개의 병원 중 그나마 빠르다는 병원을 예약했다.(다른 병원은 검사를 하면 2주 후에나 결과가 나온다고 했다. 검사가 밀려있다고. 이후에도 느끼는 거지만 아픈 사람들은 정말 많다.) 예약은 그 다음 날이었으나 조직검사를 한 것은 21일이었다. 18일은 조직검사를 할 수 없다며 17일과 같은 내용의 말만 듣고는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대학과 결혼 전까지 17년을 수도권에서 살았다. 과잉이라고 할만큼 곳곳에 있던 병원에 익숙해져 있던 나는 이런 기다림에 익숙하지 않았다. 전에 살던 곳을 가면, 하루만에도 결과가 나오는데-라는 생각을 하면 당장이라도 그곳으로 가고 싶었지만 직장도 있으니 그러기 쉽지 않았다.


조직검사를 할 때, 굵직한 바늘을 보자 손이 차갑게 식었다. 의사 선생님이 나중에 내 손을 만져보시곤,(가슴을 잡고 있으라고 하시고 검사 후에 지혈때문에 꼭 누르라고 할 때 스친 것) 너무 차가워서 '긴장하셨나보다'라고 말했을 때야 내가 긴장해서 손이 차가워졌다는 것을 알았다. 차가운 바늘이 들어오는 느낌과 마치 귀를 총으로 뚫을 때 같이 탕 하는 소리와 함께 살점이 딸려나가는 느낌은, 생소했다. 많이 아프냐고 물으면 참을만한 정도. 그것보다는 결과에 대한 공포가 더 컸다.


결과를 듣게 될 때까지 나는 많이 울었다. 실신할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잠도 못자고 식욕을 잃었다. 조직검사를 하는 날이었는지, 결과를 듣는 날인지 꿈을 꿨다.(이 놈의 꿈.) 학교를 가는데 이에 뭐가 끼어있어 가게 들어가 가글을 했더니 앞니가 깨져 검은 것이 빠져나오는 꿈이었다. 검색을 해보니 병을 얻을 꿈이란다. 병을 얻어도 좋다. 나을 수만 있다면. 다른 꿈도 꿨다. 검은 색 커다란 벌레를 망치로 내려치는 꿈. 벌레는 작아져서 죽어버렸다. 이런 식의 꿈만 꾸다보니 나중에는 잠이 안오는 것도 싫지만, 자면 꿈을 꾸는 것도 싫었다.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1. 일기를 썼다.

안쓰는 노트에다 손으로 적으며 노트를 채웠다. 이상하게 그때는 컴퓨터로 글을 쓰고 싶지 않았다. 근데 지금은 이상하게 컴퓨터로 글을 쓰고 싶다. 그 사이 무엇이 변했는지 모르겠다.

2. 기도를 했다.

하느님께 기도했다. 이 상황을 받아드리게 해달라고. 힘을 달라고. 무너지지 않게 해달라고. 우리 가정을 지켜달라고.

3. 운동을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산책로에 들러 적어도 30분 이상은 걸었다.(그 이상은 남편 퇴근시간에 맞춰 저녁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할 수 없었다.) 연두 빛으로 물든 생명력이 가득한 세상과 새소리, 적당한 습도와 온도는 나를 평온하게 했다. 땀이 맺힐 때쯤에 바람이 불어오면, 나뭇잎을 스치는 바람소리가 나를 위로해 주었다. 홈트도 다시 시작했다. 더디지만 몸무게가 조금씩 줄었다.

4. 식단을 조절했다.

빵을 끊고, 유제품도 끊었다. 야채를 많이 먹고 밥을 줄였다. 사실은 식욕 따위는 없었으나 그나마 저녁은 남편과 함께 먹기에 일반식을 먹었다. 그거라도 먹었으니 오히려 건강해지지 않았나 싶다. 그때는 너무 안먹어 공복이 길어지면 배가 쓰렸다. 그런 경험은 살면서 처음이었다. 처음인 것이 너무 많았다. 무섭고 두렵고 서럽다.

5. 안쓰던 무인양품 아로마 램프를 꺼냈다. 잠들지 못하는 원인은 내 생각에 끊임 없는 검색 때문이었다. 유방암일까요? 질문하는 모든 지식인 질문을 다 찾아 읽고, 전체 공개가 되어있는 유방암카페의 글도 읽고, 네이버 블러그, 브런치를 글까지 모두 찾아 읽으며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보면 심장이 두근거려 잘 수 가 없었다. 침대 옆에 두고 잠이 오지 않으면, 책을 읽었다. 지루한 책일 수록 좋았다. 처음에는 김소영의 '어린이의 세계'를 읽었다. 순수하고 맑은 그 세계는 평온했다. 그러나 술술 읽혀 금방 다 읽고 말았다. 그 다음에는 에히리 프롬의 '사랑의 기술'을 읽었다. 사랑의 기술은 역시나 어려웠다. 사랑을 쉽게 배운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이 책은 아직까지도 다 읽지 못하고 있다.


운동으로 몸을 지치게 만들고, 검색을 중지하고, 책으로 지루하게 만드는 방법은 어느정도 유효하여 잠을 잘 수 있게 되었다. 시간은 흐르고 결과를 듣는 날 밤, 나는 의사선생님이 괜찮다고 말하는 꿈을 꾸었다. 꿈이었을까? 아니면 꿈과 의식 그 사이였을 지도 모른다. 내가 만들어낸 환상. 그래서 잠을 잘 수는 있게 되었지만, 잠들면 꿈을 꿀까봐 무서웠다.

그 때의 꿈이라는 것은 지금은 실체가 없이 희미하다. 막연한 기억으로 그것들을 붙들고 있는 것은 나의 의지일뿐 그런 것들이 정말 어떤 암시를 가지고 있는지 없는지는 모를 일이다.


조직검사 결과를 기다린다는 것을 알게 된 선생님이 조말론 바디크림을 보냈다. 좋은 향기로 힐링하라며, 뜻하지도 못하게 선물을 받으니 기분이 좋았다. 조금은 희망을 걸어보기도 했다. 마음에 드는 향기로 바꿀 수 있다고 했지만, 조말론을 잘 몰라서 원래 선물온 걸로 택했는데(카카오톡 선물) 향은 좋았다. 힘든 순간에 손을 내밀어 준 사람이 있다는 것, 이것도 복이겠지.


정재승의 열두발자국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우리는 평소 길을 잃어본 경험이 별로 없죠. 길을 잃어본 순간, 우리는 세상에 대한 지도를 얻게 됩니다. 우리는 적극적으로 방황하는 법을 알아야 합니다.'


그 밑에 나는 이렇게 메모를 남겼다.


나는 지도를 그리고 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낯선 곳에서.

그래도 응원을 받으며 길을 나선다. 끝은 도착지에 도달하는 것.

그렇지만 그 과정을 즐기리라.

가끔은 울고, 가끔은 웃으며.

대체로 즐거운 채로.

어느 날은 아프고.

어느 날은 나은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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