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용어 TMI의 후일담
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말도 흥-망-성-쇄가 있다. 교사의 귀에 들어오는 시기쯤이라면 그 말이 가장 성행하는 시기쯤 될 것이다. 어떤 유행어는 순식간에 예전 말이 되어 촌스러운 감정이 들지만, 어떤 유행어는 살아남아 명맥을 유지한다.
예전의 유행어는 TV 드라마나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의 출연자가 시작점이었다. 내 고등학교 3학년 가을을 강타한 드라마 ‘야인시대’는 최고 시청률이 51%가 넘었다. 전 국민의 절반 이상이 그 프로그램을 틀어 놓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심지어 고등학교 3학년인 내 친구가 야인시대를 봐야 한다며 집에 가는 모습을 부러움 반, 걱정 반으로 지켜보기도 했다. 그때의 유행어는 ‘나는 김또깐이다.’하는 김두한의 대사였다.
김두한은 이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일제강점기부터 해방기를 거쳐 대한민국의 격동적인 현대사 속에서 '주먹 황제'로 불렸던 실존 인물이다. 일제강점기가 배경이었기 때문에 ‘두한’이라는 이름의 일본식 발음 ‘또깐’으로 나타난 것이다. 항상 위기의 순간 나타나, 적을 무찌르기 직전 이 대사를 했기 때문에 임펙트가 있었다. 중절모를 짚는 제스처까지 하며 이 유행어를 너도나도 내뱉었었다.
내 고등학교 3학년 후반기를 달군 드라마가 ‘야인시대’라면, 전반기를 달군 드라마는 ‘로망스’였다. 지금이라면 논란이 될 소재인, 남학생과 여교사의 연애물로, 이때의 유행어는 “넌 학생이고, 난 선생이야”였다. 여교사인 김하늘이 비행을 하는 남학생 김재원의 엉덩이를 회초리로 때리며 하는 대사로, 요즘 시대에는 여러 가지로 논란이 되는 장면일 것이다. 이후 영화 ‘동갑내기 과외하기’나, 개그콘서트에서 패러디되어 꽤 오래 명맥을 유지했다.
하지만 드라마의 유행어는 드라마의 종료와 함께 급격한 속도로 사그라들었고, 새로운 드라마가 나올 때쯤 그 유행어는 이미 뒤떨어진 것이 되어버리기 십상이었다.
내가 학생이던 시절은 물론이고, 20대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가장 손쉽게 접하는 매체는 TV였다. 드라마뿐 아니라, 무한도전, 일박이일, 개그콘서트 같은 주말을 책임지는 오락 프로그램이 있었고, 그 프로그램의 출연자가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말이 유행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 유행어가 있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희미해졌다.
그리고 내가 30대에 되었을 무렵, 스마트폰이 대중화하면서 TV는 점점 그 자리를 유튜브 같은 인터넷 플랫폼에 빼앗기게 되었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에서 조사한 실시간 방송 시청 분석에 따르면, 2024년 TV 프로그램의 주 시청자는 50대 이상으로 전체의 73.6%이다. 이는 2014년의 54%에 비해서도 약 20%가 상승한 수치이다.
2014년에도 십 대의 TV 프로그램 시청 비율은 7.5%로 그리 많지는 않았으나, 2024년에는 2.1%로 3분의 1가량이 줄었다. 20대와 30대의 시청 비율도 7.1%에서 4.8%로, 9.1%에서 5.3%으로 절반 가량 줄었으며, 40대 역시 20.3%에서 14.1%로 감소했다. 즉, 나이가 어릴수록 TV를 보는 비율은 급격하게 줄고 있으며 그 영향력 또한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그럼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은 무엇일까? 예상한 바와 같이 그 자리는 인터넷 플랫폼들이 차지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에서 2022년에 실시한 10대 청소년 미디어 이용 조사를 살펴보면, 청소년의 인터넷 이용 시간은 하루 평균 약 8시간(479.6분)으로 2019년에 비해 1.8배 증가하였다. 특히 초등학생(4~6학년)의 경우 하루 평균 인터넷 이용 시간이 2019년 2시간 40분에서 2022년 5시간 40분으로 중·고등학생에 비해 가장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청소년은 메신저를 수시로 이용하고, 인터넷 강의를 듣고, TV를 보면서도 스마트폰을 이용한다. 또한, 대부분의 청소년이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97.4%), 인터넷 포털(97.3%), 메신저 서비스(95.8%)를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9년과 비교해 새롭게 주목할 만한 현상은 숏폼 콘텐츠의 인기와 청소년의 적극적인 동영상 플랫폼 이용 방식이다. 청소년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동영상 플랫폼은 유튜브(97.3%) 다음으로 유튜브 쇼츠(68.9%)와 인스타그램 릴스(47.6%), 틱톡(39.6%)으로, 이용률 2~4위가 모두 숏폼 콘텐츠 플랫폼이었다. 현재 학생들은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으로 정보를 얻고, 공유하며, 소통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많은 시청자를 보유한 유튜버나 인스타그램의 인플루언서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이들이 제공하는 정보는 TV보다 편향적이고 세밀하여 모두의 취향을 만족하기보다는 소수의 충성자를 만든다. 알고리즘을 통해 비슷한 영상을 계속해서 접하다 보면, 어느새 방송의 사고 방식이 당연하다고 믿는다.
이는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청소년의 사고방식과도 닮아있다. “부모가 학생이 왜 화장을 하느냐”라고 지적을 하면, “나 말고 다 하는데, 안 하면 나만 왕따”라고 답하는 격이다. 하지만 이것은 자신이 속한 세계에서나 그렇지 한 반에 보면 화장을 안 하는 학생들도 있다. 하지만 자신은 그들과 친해지고 싶지도 않고, 친한 학생들이 모두 화장하기에 그렇게 대답하는 것이다.
“그 수업 시간엔 다 자는데.”, “애들 다 패드립하는데요.” 같은 말도 다 그렇다. 또 이런 자기중심적인 사고가 반대로가 가면 “선생님은 나한테만 뭐라고 해.” 같은 반응이 나타난다. 다른 학생들도 잘못하면 혼나는 데, 그때는 인지를 못 하다가 자기가 혼나는 것만 기억하는 것이다.
이제 학생들의 문화를 형성하는 것은 더 이상 TV 같은 레거시(legacy) 미디어가 아니다. 공중파에는 등장하지 않는 자기만의, 혹은 자기가 속한 집단들이 공유하는 개인 방송들이 학생들의 문화를 만든다.
문제는 이런 방송은 공중파와 달리 심의가 거의 없고, 공익보다는 사익으로 움직이기에 자본의 흐름을 따라 자극적이고 유해한 요소가 강조된다는 것이다. 또, 방송 시청자는 아이디로 나타나기에 익명성이 보장되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이 이런 방송을 본다는 것을 철저하게 숨길 수 있다. 그렇기에 방송의 시청자들도 자신의 은밀하고 과격한 성향을 표출하기도 하며, 자신이 하지 못하는 과격하고 돌발적인 행동을 하는 방송자를 보며 대리만족하기도 한다.
지금이야 유튜브가 개인 방송의 대표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최대 개인 방송 플랫폼은 ‘아프리카TV’였다. 현재는 ‘SOOP(숲)’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사명을 변경한 이 플랫폼은, 일반인 누구나 손쉽게 방송을 켜고 시청자와 실시간으로 소통할 수 있는 ‘1인 미디어 시대’를 본격적으로 열었다.
특히 아프리카TV는 별풍선이라는 독특한 후원 시스템을 도입하며, 개인 방송을 단순한 취미가 아닌 하나의 직업으로 발전시켰다. 그 결과, ‘BJ(Broadcast Jockey)’라는 새로운 직업군이 생겨났고, 다양한 장르의 인기 BJ들이 등장했다.
그중에서도 ‘먹방’(먹는 방송) 콘텐츠는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벤쯔, 쯔양, 입짧은 햇님 등은 엄청난 양의 음식을 먹는 모습을 통해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었고, 방송과 광고계에서도 주목받는 인플루언서로 성장했다.
이처럼 아프리카TV는 단순한 스트리밍 플랫폼을 넘어, 한국형 실시간 방송 문화의 근간을 만든 주역으로 평가받는다. 이후 유튜브, 트위치 등 글로벌 플랫폼이 등장하면서 경쟁이 치열해졌지만, SOOP은 여전히 ‘라이브 소통의 원조’로서 강력한 팬층을 유지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쯔양’, ‘입짧은 햇님’ 등은 이제 단순한 인터넷 방송인을 넘어, 공중파 예능 프로그램과 각종 광고에 출연하는 연예인급 인플루언서로 성장했다. 이들은 방송 출연뿐만 아니라 브랜드 협업, 광고 모델 활동 등을 통해 대중적 인지도와 경제적 영향력을 동시에 확보했다.
하지만 한편으로 ‘아프리카TV’(현 SOOP)의 핵심 수익 구조였던 별풍선 후원 시스템은 여러 가지 사회적 논란을 낳았다.
이 시스템은 시청자가 BJ에게 실시간으로 금전적 보상을 제공할 수 있는 구조로, 창의적인 콘텐츠 제작자들에게는 강력한 동기부여가 되었지만, 동시에 과도한 경쟁, 수입 불균형, 후원 유도 논란 등의 부작용도 발생했다. 일부 BJ들이 자극적인 콘텐츠나 논란성 발언으로 시청률을 높이려 하면서 건전한 방송 문화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고, 청소년 시청자 보호 문제도 사회적으로 제기되었다.
과격한 언행, 즉흥적인 리액션, 높은 텐션의 예능형 방송을 펼치는 BJ들은 실시간 플랫폼의 특성과 맞물리며 빠른 속도로 거대한 팬층을 확보했다.
특히 BJ 1세대로서, 2014~17년도까지 누적 시청자 1위를 차지한 철구(본명: 이철우)는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의 방송 스타일은 열정적인 모습들, 특유의 우스꽝스러운 말재간과 리액션으로 쉴 새 없이 자극적인 장면이나 언행을 연속한다는 것이다. 매끄러운 진행보다는 시청자들이 떠나지 않도록 끊임없이 미끼를 던져야 하는 인터넷 방송의 특성을 가장 잘 이용하는 BJ로 큰 인기를 얻었다.
이 철구가 한창 유행하던 시절에 학생이 내뱉은 말 중에 이런 말이 내 귀에 꽂혔다.
“기모띠~”
학생들이 하는 말은 대체로 제대로 내 귀에 인식될 때까지는 시간이 걸리는 편이다. 처음에 들었을 때는 “내가 잘못 들은 건가?”하고 그냥 넘어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무언가 보상을 받은 학생이 아주 큰 소리로 이렇게 외쳤기 때문에 안 들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어보니 철구 어쩌구 하면서, 그게 철구가 기분 좋을 때 하는 말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말의 어원을 찾아보니 ‘기모치 이이(気持ち いい)’라는 일본어에서 온 말이었다. 기모치는 기분이라는 뜻이고, 이이는 좋다라는 뜻이다. 일본어에는 장음(長音)이라는 발음 특성이 있는데, 같은 모음이 이어지거나 특정한 모음이 연속되면 각각을 발음하지 않고, 앞에 발음의 모음을 길게 발음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선생님이라는 일본어는 せんせい로, 글자 그대로 읽으면 센세이지만, ‘에’발음 다음 ‘이’가 올 경우 장음이 일어나 [센세-]라고 세를 길게 읽는 식이다. ‘기모치 이이’의 경우, 기분과 좋다는 말은 다른 단어로 [기모치 이-]가 정확한 발음이겠지만, 일본어를 배우지 않은 사람의 귀에는 치의 ‘ㅣ’의 발음 뒤에 ‘이’발음이 두 개나 이어져 [기모치--]로 들리게 되는 것이다.
이 [기모치--]의 발음을 더 재미있게 각색한 발음이 [기모띠--]인 것이다. 이쯤 되면 그 말은 일본어이기에 문제가 있을 뿐 뜻에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기분 좋아’라는 일본어는 주로 일본의 성인 동영상에 등장하는 일본어로, 내가 일본어 교사이던 시절 남학생들이 가장 많이 물어보는 일본어 2위에 해당하는 말이었다. (1위는 ‘やめて’(야메떼)로 그 뜻은 ‘하지마’, ‘그만 둬’ 정도가 되겠다.)
단어의 뜻에는 문제가 없겠지만, 그 외국어가 한국인에게 전해지는 방식과 발화 상황이 건전하지 않기 때문에 단어의 어감이 좋지 않은 것이다. 철구 역시도 “기모띠” 앞에 “앙”을 붙여 “앙, 기모띠” 이런 식으로 말하는데, 그것은 일본 성인 동영상의 등장인물을 흉내낸 것이라 할 수 있다.
“기모띠”를 말하는 학생에게 이런 설명을 해주면 당황하면서 그런 뜻인 줄은 절대, 절대 몰랐다고 한다. 이렇게 학생들에게 그 단어를 왜 쓰면 안 되는지 설명해 줘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것조차 불경스러우므로 그저 하지 말라고 혼을 내야 하는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김평원의 ‘언어폭력 개선을 위한 욕설 의미 교육의 효과(2017)’를 보면, 욕설 의미 교육의 성과를 확인할 수 있다. 그는 욕설 자극에 대한 뇌의 반응(사건 유발 전위)을 측정하여, 욕설에 대한 정서적 ‒ 인지적 반응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분석하였다. 이 실험에서 욕설의 의미를 교육한 실험군이 대조군에 비해 욕설 자극에 대해 더 부정적(혐오) 정서 반응을 보인다는 것을 뇌파 분석을 통해 증명하였다.
이는 학생들에게 욕설의 의미, 욕설이 지니는 사회적·정서적 함의 등을 교육함으로써 이에 대한 반성적 태도를 유도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하지만 교사입장에서 이런 불경한 언어의 의미를 교육한다는 것이 꺼림칙할 수도 있다. 나 역시도 “앙 기모띠” 같은 말의 의미를 찾아보며 이걸 설명해야 하나 고민스러웠다. (철구라는 사람을 조사하며 일종의 현타 같은 것도 느꼈다.)
또, 이런 교육 자체가 학생들이 욕설에 대한 흥미를 일으킬 수도 있다는 반대 의견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삶에 가장 필요하고 근본적인 교육이면서도 학생들 앞에서 말하는 것을 꺼리는 성교육처럼, 너무 자세한 설명은 학생들의 정서상 좋지 않을 거라는 의견이다.
학교에서 교사가 제공하는 교육 서비스는 개별 학생의 특성과 환경을 모두 고려할 수 없다. 그러기에 교사가 제공하는 교육 서비스는 어떤 학생에게는 빠르고, 어떤 학생에게는 느리다. 예전에 읽은 책에는 이런 내용이 있었다. 교사는 학교 정규과정을 순서대로 이수한 중간 수준의 가상의 학생을 가정하고 수업을 디자인하지만, 사실상 교실에는 그런 학생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을 모두 뒤섞어 한 학급을 만들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학급 상황은 위와 같다. 특히 중학교 수학 같은 경우, 4칙연산도 빠르게 되지 않는 학생과 고등학교 선행을 한 학생 모두 한 학급에서 같은 내용을 배운다.
그러니 내가 하는 이런 설명이 어떤 학생에게는 적잖이 충격적이고, 오히려 지금껏 멀리했던 욕설(이나 비속어)에 대한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부작용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 역시도 이런 단어들의 의미를 배우며 단어들에 대한 경각심이 강해지는 것처럼, 학생들도 그런 효과가 있기를 바라며 잔소리를 한다.
그리고 이런 교육을 한 번 하고 나면, 내 앞에서 그런 말을 했을 때는 뜻을 모르고 했다는 변명을 하지 못한다. 학생들의 욕설(이나 비속어) 사용은 유행처럼 가볍게 번지고, 자기 과시나 가벼운 일탈 행동처럼 이루어진다. 욕설이나 비속어 등을 사용하는 행위를 엄중하고 진지하게 바라본다기보다는, 성장의 과정으로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나 남학생의 경우에는 똥인지 된장인지 꼭 찍어 먹어 봐야 하는 심리가 작용하는데, ‘하지마, 다쳐.’라고 교사나 부모가 말할 경우 ‘진짜?’라고 생각하며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심리이다. 그리고 교사가 부모가 제지한 행동을 하고도 괜찮을 경우 ‘나는 대단해.’라고 생각하며 우월한 감정을 갖는 것이다. (이걸 보는 여교사와 어머니는 기겁한다.) 여학생에 비해 남학생은 늘 한계를 시험하고 돌파하고자 하는 모험심이나 투쟁심이 강한 학생이 비교적 많다.
또 비교적 여학생(여자)에게 사회에서 요구하는 이상적인 이미지가 조신하기 때문에 여학생들 보다는 남학생들의 욕설(이나 비속어)사용이 도드라지는 편이다. (물론 청소년기의 여학생들도 상당히 거친 언어를 사용한다.) 그래서 남학생들의 이런 언어 사용도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는 사춘기 행위의 일종으로 이해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런 행동을 호르몬 변화에서 비롯된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이해하려 해도, 교사는 학생을 보호하고 교육하기 위해 반드시 선과 한계를 제시해야 한다. 그래서 이런 행동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
그런데 다행인 것은 이 “기모띠”라는 유행어가 슬슬 힘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이 유행어의 시작인 ‘철구’의 영향력이 약해진 탓이며, 그 배경에는 아프리카 TV의 수위 제한이 매우 강해진 것이 있다. 특히 2017년부터 인터넷 방송의 선정성을 지적하는 사회 여론이 수면 위로 떠 올랐으며 국회에서도 논의될 만큼 주목받는 사안이 되었다. 과격하고 논란이 될만한 강한 발언과 애드리브를 주로 하던 그간의 철구 스타일에 큰 타격을 줄 수밖에 없었다. 또, 철구 역시 결혼도 하고 자녀도 생기면서 나이가 든 탓도 있다.
철구 이후에 남학생들이 좋아하던 인플루언서로는 신태일이 있다. 작년까지 사용하던 2015 개정 교육과정의 교과서에는 현덕의 『하늘은 맑건만(1938)』이라는 소설이 있었다. 이 소설은 순진한 학생인 문기가 심부름을 갔다가 당시에는 꽤 큰 금액의 거스름돈을 잘못 받게 되면서 일어나는 갈등을 그린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돈을 돌려주려고 하는 문기를 꼬셔, 돈을 쓰게 만드는 수만이라는 인물이 있는데, 이 인물은 나중에 문기를 협박하며 돈을 받아내려고 용을 쓴다.
학생들과 수업하면서 이 소설 속 인물들을 가상 캐스팅했는데, 어떤 반에서 수만이라는 인물에 ‘신태일’이 나온 것이다. 남학생들이 격렬한 반응을 하며 환호를 했는데, 찾아보니 인터넷 방송인이었다. 철구가 아프리카 TV라는 플랫폼을 이용하여 다른 방송인들과 협업을 하며 격렬한 리액션과 토크를 하는 방송 스타일이었다면, 신태일은 더 과격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상황을 연출하여 방송 수위가 더 높은 것 같았다.
위키 백과에 있는 신태일 인물의 방송 콘텐츠 목록을 보면, ‘엘레베이터 안에 사람 있을 때 1층부터 꼭대기까지 다 누르기’, ‘공중화장실에 똥싸는 사람 욕하고 문 발로 차고 튀기’ 같이 비상식적인 내용이 많으며, 초등학생이나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 노숙자 같은 약자들을 놀리거나 조롱하는 콘텐츠들을 볼 수 있다. 아주 좋게 말한다면 성인 짱구 같은 존재라고 볼 수도 있겠다. 여자인 내가 봤을 때는 뭐가 재미있나 싶은 것들이지만, 남학생들은 웃겨 죽겠다는 표정으로 말하는 것을 보면 초등 고학년과 중학생의 남학생들의 ‘한계 도전’을 자극하는 점은 분명한 것 같다.
여기까지 쓰면 남학생 학부모님이 글을 읽으시다가 화가 나시거나, 걱정이 앞설 것 같기도 하다. 모든 남학생이 그런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콘텐츠를 즐겨보면 여학생은 거의 없으며, 남학생 중에서 즐기는 비율이 많다.
하지만 신태일의 이런 방송 스타일은 사회 윤리와 질서를 위협하기도 하고, 너무나 과격한 패드립과 욕설을 사용해서 아프리카 TV와 유튜브에서 영구 정지를 받았다. “앙, 기모띠”라는 말을 신태일이 만들었다는 말도 있는 걸 보면, 철구와 신태일이 이 말의 유행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 거라고 할 수 있겠다.
다행스럽게도 요즘 초등학생들이 즐겨보면 유튜버는 ‘말왕’이라고 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철구와 신태일에 비해 신사적인 방송을 하고, 혐오를 조장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도 철구의 유행어나 패드립을 따라 하던 초등학생이 요즘에는 말왕의 유행어를 따라 한다고 하니 시대가 변화하는 느낌이다.
그래서 그런지 올해는 “앙, 기모띠.”라는 말을 한 해가 다 가는 이 시점에서야 들었는데, 상황은 처음 내가 이 말을 들었을 때랑 비슷했다. 내가 발표를 한 학생에게 도장을 찍어주는데, 도장을 많이 받은 학생(남)이 도장을 받고 나서 “기모띠~”이렇게 말한 것이다. 근데 남학생들의 반응이 예전과 달리 뜨뜨미지근 했다. 나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기모띠’에 관련한 설명을 마무리했는데, 확실히 그 말의 재미가 약해진 것 같았다. 그러면서 철구나 신태일에 관한 이야기도 같이 나눴는데 확실히 아직 ‘신태일’ 영상을 좋아하는 남학생들은 많은 것 같았다. 그러나 그가 활동할 공간이 없어 새로운 콘텐츠가 나오기는 어렵기에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나는 요즘 국어 수업에서 ‘대중매체’와 ‘개인 인터넷 방송’의 차이를 비교하는 단원을 가르친다. 도입 부분에서 내가 어릴 적 풍경이었던 가족들이 모두 쇼파에 앉아 TV를 같이 보는 그림이 나오고 이어서 각각의 가족이 휴대폰, 태블릿, TV 등 각각의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그림을 본 학생이 말했다.
“선생님, 이 그림 틀렸는데요. 요즘은 이렇게 거실에 모여있지도 않아요.”
그렇다. 그러면서 나는 학생들에게 TV를 얼마나 보는지 조사했는데, 전혀 보지 않는다는 학생이 절반이 넘었다. 그래서 나는 아마 너희들이 독립할 때쯤이면 집에 TV가 없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른다. 아마 그렇다면 거실의 크기도 점점 줄어들 것이고, 그렇게 집의 형태도 변할 것이라는 설명을 했다. 그러면서, 내가 어렸을 때는 방송국이 4개 밖에 없었고, TV가 나오지 않는 시간도 있었다고 말했더니 호랑이 담배 피던 옛날이야기를 듣는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시대의 흐름을 빠르게 반영한다는 점에서 교과서는 늘 몇 발자국 늦을 수밖에 없다. 대중매체와 개인 인터넷 방송의 경계는 빠르게 흐려지고 있는데 그걸 비교하면서 본다는 것 자체가 완전 구닥다리 발상이다. (그래도 교과서에 나오는거니 가르쳐야지.)
세상이 변하듯, 학생들의 유행어도 변한다.
언젠가는 “이런 말이 있었어?”라는 말이 들릴지도 모르니,
나도 이 말이 사라지기 전에 이 글을 남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