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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나 Jan 26. 2022

자세히 들여다보면 매일이 다른 하루야

바다의 숲이 건네는 위로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르고,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요즘이다.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시간이다. 과연 끝이 오기는 할까? 새삼 이렇게 간절히 바라는 일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답답하고 지겨운 하루하루다. 곧 끝나겠지라는 희망의 말도 저 밑으로 가라앉아 희미해져 버렸다. 오히려 이 모든 일이 끝났을 때 과연 그 끝을 온전히 누릴 수 있을까? 라는 걱정이 앞선다.


 고요히 흘러가는 갯골의 결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마음에 부는 바람을 잠재워본다. 이제 갯골로 출근할 날도 며칠 남지 않았다. 이곳이 많이 생각날 것 같다. 묵묵히 조용한 변화가 시나브로 눈과 마음에 스며들어 위안이 되었다. 무겁고 차가운 공기 아래 색을 잃은 숲은 시간이 멈춘 것만 같았는데, 그럼에도 여전히 흐르고 있다고 염전의 윤슬이 다정히 말한다. 다가오지 않은 앞날에 대한 불안은 당장 어쩔 수 없으니 그냥 내버려 두라고. 시간에 맡겨버리라며 어두컴컴한 내 발밑을 밝혀준다.




 갯골의 색과 결이 변했다. 누렇게 마른 가지와 잎, 짙고 어두운 파랑의 하늘, 깊어진 물결, 부서질 듯 차가운 공기, 고요하고 적막한 분위기. 겨울로 들어섰다. 실내에서 근무하는데도 손발이 꽁꽁 얼어붙을 만큼 추워졌다. 뜨거운 햇살이 물러가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올 때 이곳에 왔는데 시간 참 빠르다.




 쪼글쪼글 쪼그라든 열매와 갈변되다 못해 까맣게 타들어 가는 가지가 왜 이렇게 예뻐 보일까? 식물을 관찰하고 기록하게 되면서 알게 된 나의 별난 취향이다. 동글동글 탱탱했던 해당화 열매가 쪼글쪼글 쭈그러들었다. 하지만 색은 더 깊어져 그윽하고 우아하다. 자연으로 무르익어 더 시큼하고 더 달곰해져 있을 것만 같다.


 푸릇했던 나문재는 빼빼 마르고 색이 거뭇해졌다. 그래도 예쁘다. 지난 시간을 온몸으로 새긴 모습이니까. 갯골에서 일하게 되지 않았다면 너를 알지 못했겠지? 너와 함께 가을과 겨울을 걸을 수 있어 행복했다. 너의 또 다른 계절은 어떨지 궁금하다.



초록은 언제나 옳다. 모두가 땅을 닮아가는 계절 가운데 여전히 푸른 소나무는 쨍한 파랑을 곁으로 품어 더 선명하다. 고요한 갯골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차갑고 날카로운 바람에 볼이 찢어질 것만 같아 패딩에 달린 후드를 뒤집어썼다. 주머니에 손을 쑥 집어넣고 펭귄처럼 뒤뚱뒤뚱 종종걸음으로 걷는다. 어서 이불 속으로 들어가 얼어붙은 몸을 녹이고 싶다. 저 앞에 보이는 마을버스를 향해 앞만 보고 돌진하는데 햇살 아래 반짝이는 하얀 눈꽃들이 발을 붙든다.


 ‘아, 너무 추운데?’

 ‘아, 이거 찍어야 하는데?’

 

 잠시 두 마음이 부딪치다가 결국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눈송이처럼 뽀얗게 피어난 아름다운 억새. 어쩜 매일 봐도 예쁠까. 어쩜 매일 봐도 다를까.




 가을을 넘어 겨울까지 같은 곳에서 느끼는 소소한 변화들이 값지다. 이 시간을 고이고이 간직하며 이곳을 떠나 온전히 나의 일상을 살아갈 때도 잊지 말아야겠다. 반복되는 생활, 매일 같은 삶을 사는 것 같아 보여도 그 안에서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것들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걸. 그리고 그건 내 마음에 달려 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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