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광고회사에 들어올 때, 내가 지원한 직무는 카피라이터였다. 지금은 우연에 우연이 엮여 AE를 하고 있지만 바라던 직무가 카피라이터였던만큼 카피에 대한 관심이 많은 편이다. 지금부터 말할 카피 구분법은 한날 제안서 준비를 하면서 생각하게된 구분법이다. 아직 구분법에 대한 이름은 짓지 못한 상태이기 때문에 제시하는 구분법을 보고 생각나는 기깔난 아이디어가 있다면 개인적으로 연락을 부탁드린다. 아. 그리고 신기하지만 쓸데없는 지식 한가지만 얘기하자면 ‘기깔나다’라는 단어는 표준어가 아니다.
이 구분법은 내가 어떤 카피를 구상해야하는 가에 따라서 무엇이 주체가되는 카피를 작성해야하고 가치와 실체 중 어떤 소구점에 더 중점을 두어야하는지에 대한 도움을 줄 수 있는 구분법이다. X축은 카피의 주체, 즉 ‘카피가 하나의 문장이라면 그 주어가 되는 것은 누구인가’에 대한 이야기다. Y축은 소구포인트를 의미한다. 추상적인 가치를 지향할 것인지 브랜드를 소비함으로써 오는 직접적인 효용을 말할 것인지에 대한 구분이다.
아이폰이 아니라는 것은 아이폰이 아니라는 것
- Apple-
애플 광고의 유명한 카피 중 하나다. 이 카피를 구분법에 적용해 보자면 브랜드 주체/가치 지향인 우 상단에 자리잡게 될 것이다. 몇가지 더 해보자.
계속하는 것이 힘이다.
KCC
KCC의 브랜드 슬로건이다. ‘계속하는 것이 힘이다.’ 계속하는 건 누굴까? KCC다. 그렇다면 이 카피의 주체는 브랜드가 되는 것이다. 지향점은 어떠한가. 우리가 KCC라는 브랜드를 소비함으로써 얻는 직접적인 효용에 대해서 말해주는가? 아니다. 우리는 이런 브랜드이고 이렇게 나아가고 싶은 브랜드입니다. 즉, 그들이 지향하고자 하는 가치에 대해 말하는 카피다. 그렇다면 이 카피 역시 브랜드 주체의 가치지향인 카피. 우상단으로 향한다.
이렇게 보면 ‘왠만한 카피는 다 우상단으로 가는 거 아니야?’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위의 카피들은 브랜드의 정체성인 ‘혁신’, ‘지속’을 담은 카피이기 때문에 우상단으로 가는 것이 당연하다. 여러가지 카피들을 대입해본 결과 브랜드 슬로건은 대부분 우상단 또는 좌상단으로 향한다.
의자가 성적을 바꾼다.
시디즈
의자브랜드 시디즈의 광고카피다. 풀어서 써보자. “시디즈의 의자가 고객(자녀)의 성적을 바꾼다.” 카피의 주체는 브랜드, 지향점은 실체지향이다. 브랜드 제품을 소비하면서 실질적으로 얻을 수 있는 효용을 말한다. 이처럼 축약된 카피를 실타래 풀듯 풀어보는 것도 카피를 분석하는데 도움이 된다. 어느정도 익숙해지면 구분법에 따라 나누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박카스] “나를 아끼자” (소비자 주체, 가치 지향)
[디펜드 스타일 패드] – “으쌰 힘주다 어머 하는, 가벼운 요실금엔” (소비자 주체, 실체 지향)
[레고] – “아이의 세계는, 세계보다 크다.” (소비자 주체, 가치 지향)
[유니클로 와이어리스 브라] – “24시간 입고싶은 편안함” (소비자 주체, 실체 지향)
나누기만 하려고 만든 구분법은 아니다. 다만, 구분법을 이용해 나눈다면 ‘지금 내가 짜야하는 카피가 어떤 카피일까’에 대한 어느정도 영역이 생긴다. 뭘 그렇게까지 해야하냐고 말하는 아이디어 뱅커가 있을 수 있지만 정해진 약속없이 남발되는 아이디어는 맘먹고 구체화하기 어렵거나 흘려보내기 마련이다. 허점이 있는 구분법일 수 있지만 사용하는 상황에 따라 많은 분들이 활용할 수 있는 구분법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