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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태 Nov 07. 2018

골웨이에서 만난 아이리시 스마일

2.40. 골웨이-자이언츠코즈웨이-벨파스트

아침에 일어나니 온 몸이 찌뿌둥하다. 밤새 계속 비가 오기도 했고, 길옆에서 자다 보니 혹시 몰라서 깊이 잠들지 못해서 그런 거 같기도 하다. 일단 빨리 자리를 뜨기로 하고 다음 행선지인 골웨이를 향해 출발했다. 날씨는 아일랜드 답게 여전히 흐리고 간간히 비도 뿌리고 있다. 


골웨이를 가로지르는 코리브 강


한참을 달린 후에 골웨이에 도착해서 차를 대충 세운 후 아침 먹을 곳을 찾아보기로 했다. 너무 이른 시간이어서 문 연 곳이 많지 않았지만 베이커리를 한 군데 발견해서 아침을 먹을 수 있었다. 


두 아가씨가 일하는 곳이었는데 그 중 한 명이 트와일라잇의 여주인공처럼 생긴 예쁜 아가씨였다. 게다가 친절하게 웃으며 들어오는 모든 손님과 스스럼 없이 얘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그 유명한 아이리쉬 스마일이라고 부르는 보기 좋은 미소였다.


미소가 아름다운 아일랜드 아가씨들이 직접 만들었을 과자 인형들이 정겨운 베이커리 풍경.

 

 권셰프는 그 아가씨의 미소와 다정한 태도를 보더니 여기에 살고 싶다는 얘기를 계속 반복했다. 이렇게 정감 있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면 그 생각도 그리 나쁘지는 않은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10분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변덕스런 날씨가 좀 걸리긴 하지만..



간간히 비가 내리는 골웨이 풍경


골웨이의 중심부에 있는 대성당을 보러 갔는데 크기는 거대하지만 외관이나 내부가 아일랜드 사람들처럼 소박하고 검소한 느낌이다. 둘러 보고 떠나기 전에 비가 와서 문간에서 잠시 비를 피하며 서있는데 어떤 아주머니가 우리를 밀치고 나간다. 그런가 보다 했는데 뒤에 있던 다른 아주머니가


“Irish women..”


이라며 웃는다. 아마도 아일랜드 아줌마들도 우리나라처럼 뭔가 억세고 막무가내라는 이미지가 있나 보다.


코리브(Corrib) 강에서 바라본 골웨이 대성당


골웨이의 아이리시 스마일을 뒤로 하고 차를 달려서 간 곳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주상절리를 볼 수 있는 자이언츠 코즈웨이이다. 화산에서 분출된 용암이 서서히 식으면서 육각형 모양의 기둥이 생기는 주상절리는 우리나라 제주도에도 볼 수 있는데 이곳에 좀더 규모가 크고 다양한 형태의 주상절리들이 펼쳐져 있다. 



매표소 건물 안에 극장이 있어서 이곳과 관련된 전설을 에니메이션으로 보여주는 데 내용이 꽤 재미있다. 


이곳에 거인 부부가 살고 있었는데 남편 거인이 바다 건너편에 보이는 거인이랑 싸워 보겠다고 육각 기둥들을 바다에 던져서 다리를 만들었다. 남편 거인이 다리를 다 만들어서 건너가 보니 가까이서 본 바다건너 거인이 자기보다 덩치가 훨씬 큰 것을 발견하고 얼른 도망쳐서 집으로 돌아왔지만 화가 난 상대 거인이 다리를 건너 집까지 쫓아와 버렸다. 


위기의 순간 아내 거인이 기지를 발휘해서 집으로 쳐들어온 거인에게 차를 대접하면서 일단 진정시킨 후 남편 거인을 자신의 아기인 것처럼 보여주자 그 거인도 아기의 사이즈를 통해 아빠 거인의 사이즈를 유추해본 후 얼른 줄행랑을 쳤다는 얘기이다. 예나 지금이나 남자들은 어리석게 사고치고 다니고 여자들은 수습하느라 정신이 없었던 거 같다.


자이언츠코즈웨이의 다양한 풍경


유네스코 세계 자연유산답게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는 자이언츠 코즈웨이는 내셔널 트러스트가 소유하고 있는 곳이다. 내셔널 트러스트란 시민들이 자발적인 모금이나 기부 등을 통해 보존 가치가 있는 자연자원이나 문화유산을 확보해서 시민들이 주도적으로 보전, 관리하는 시민환경운동이라고 한다. 


내셔널 트러스트 활동의 일환으로 이지역의 해안선 매수계획인 넵튠 계획을 추진하였고 자이언츠 코즈웨이도 그 계획의 일환으로 매입해서 보호하고 있다고 한다. 이를 위해 수백만 명이 기금을 모았다고 하니 시민들의 의식수준이 높다는 생각이 들었다.


울창한 길옆 가로수들로 터널이 만들어진 곳


다음 행선지인 벨파스트로 가기 전에 다크 헤지(dark hedge)라고 불리는 곳에 들렀다. 마치 해리포터의 마법 숲과 같이 기괴한 모양의 나무들이 가로수로 심어진 곳인데 아마도 가로수 풍경 중에는 전 세계에서 가장 특이한 풍경이 아닌가 싶다. 대낮에도 어두컴컴한 것이 금방이라도 빗자루 탄 마녀라도 나타날 거 같은 분위기이다. 


이 부근에는 나무 터널로 된 길도 있었는데 보기엔 재미 있지만 길이 워낙 좁아서 운전하다 보면 옆의 나무 터널 벽을 스치고 지나는 경우도 많았다.


해리포터의 마법의 숲과 같은 다크헤지


벨파스트는 타이타닉이 건조되었던 곳으로 시내 곳곳에 타이타닉과 관계된 장소들이 많이 있어서 타이타닉 박물관도 있고 타이타닉을 건조했던 조선소도 멀리서나마 볼 수 있다. 


아일랜드를 차로 돌아다니다 보니 잘 못 느꼈지만 이곳 북아일랜드는 엄연히 영국 땅이다. 그래서 화폐도 유로가 아닌 파운드가 사용되고 거리의 표지판도 많이 다르다. 전 유럽이 통합되어서 국경선이 사라진 지금 영국과 아일랜드를 나누는 것이 무슨 큰 의미가 있나 싶지만 지금도 남쪽과 북쪽 아일랜드 사람들은 서로를 무시하고 좋지 않은 감정이 남아 있는 것 같다. 


타이타닉의 본거지 답게 많은 관련 상점이나 식당이 있다


벨파스트에서 좀 떨어진 미리 예약한 게스트하우스를 찾아갔다. 가는 길이 고갯길로 오르락 내리락 하는 길이었는데 중간에 산 위에 있는 호수에 해지는 경치가 좋아서 잠시 쉬어가기로 하고 차를 세웠다. 


우리가 차 세운 곳 바로 옆에 먼저 와있던 차가 한대 있었는데 젊은 커플이 창문을 열어 둔 채로 애정행각을 벌이고 있다가 우리가 바로 옆에 차를 세우고 우르르 내리니까 자세를 바로 하고 긴장한 빛이 역력했다. 우리는 멋진 경치가 좋아서 차에서 내리자 마자 왔다 갔다 하며 사진도 찍고 했는데 생각해보니 얘네 입장에서는 좀 겁났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일랜드 외진 산 꼭대기에 아시아 사람들이 떼거지로 나타나니까 아시안 갱이나 뭐 그런 걸로 오해하진 않았을까? 


한참 뒤에 우리가 차에 타고 떠나려고 하니까 그제서야 안심이 되었는지 여자 애가 웃으며 손을 흔든다. 괜히 미안한 생각이 들어, ‘긴장하지 말고 하던 거 마저 하세요.’라고 얘기해주고 싶었다.


게스트하우스 주인 할머니와


예약한 숙소에 늦게 도착했지만 미리 전화를 해 두어서 주인 할머니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옆방에 다른 식구들이 자고 있으니 조용히 하라고 신신 당부한다. 심지어는 늦은 시간이니까 샤워도 하지 말고 내일 아침에 하라고 한다. 


주인 할머니는 영국에서 온 사람이라는데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친절하면서도 지켜야 할 것은 단호하게 말하는 전형적인 영국사람이었다. 기분이 좋진 않았지만 늦게 온 우리가 잘못이라 조용히 주방에서 저녁 식사를 해 먹고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은 할머니가 직접 해 주는 것을 먹었는데 원하는 것을 얘기하면 즉석에서 만들어 주어서 마치 집에서 밥 먹는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식사를 준비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했는데 우리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까 할머니의 딸이 한국에서 일한다고 하면서 반가워 했다. 


식사를 마치고 짐을 정리해서 게스트하우스를 떠나면서 할머니에게 기념으로 사진을 같이 찍자고 얘기하니까 약간 울먹이는 듯 한 모습이다. 어젯밤에 자신이 우리에게 그렇게 까다롭게 대했는데도 우리가 사진 찍자고 하니 미안했던 듯 싶다. 규칙은 엄격하게 요구하지만 마음은 따뜻한 할머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네스 공장


오늘은 아일랜드를 떠나는 날이어서 처음 출발했던 더블린으로 향했다. 공항에 가기 전에 시간이 남았기 때문에 기네스 공장에 가 보았는데 시간이 많지 않아서 투어는 못하고 입구까지만 들어가보고 왔다.


돈을 얼마 내면 무제한으로 기네스 맥주를 먹을 수 있다는데 그러지 못해서 아쉬운 마음이다. 그렇다고 아침부터 술을 퍼먹고 비행기를 탈 수는 없었기에 차를 반납하고 비행기를 탔다.


너무 피곤한 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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