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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태 Nov 08. 2018

에든버러의 디카프리오

2.41. 에든버러-로몬드호수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 공항에 도착해서 예약한 차를 찾으러 갔다. 허츠 골드회원을 가입했더니 별다른 절차 없이 주차장에서 바로 차를 찾을 수 있어서 간편하고 좋았다. 


이번 차는 기아에서 만든 벤가라는 모델인데 한국에는 팔리지 않는 모델이다. 아마도 동유럽 어딘가에서 만들어진 거 같은데 거의 새 차라서 더더욱 기분이 좋았다. 


에든버러 거리 풍경


차를 찾고 에든버러 시내로 이동해서 에든버러 페스티벌을 구경하기로 했다. 에든버러 페스티벌은 해마다 8월 중순에 3주 동안 펼쳐지는 데 세계 최대의 공연축제라고 한다. 시내 곳곳에서 축제가 펼쳐지는 데 그 중 가장 인기 있는 공연은 의외로 밀리터리 타투라고 해서 군악대 연주라고 한다. 우리나라 군악대도 자주 와서 공연하는 듯했다. 


여행 기간이 운 좋게도 겹쳐서 세계 최고의 공연예술 축제들인 아비뇽과 에든버러 페스티벌을 모두 볼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유서 깊은 퍽페어도 물론 재미있었지만..


빗자루 모양의 머리를 한 거리공연자


얼마 전에 본 아비뇽 페스티벌의 거리공원인 오프 페스티벌(Off festival)처럼 에든버러 페스티벌을 유명하게 만든 것도 길거리 공연인 프린지(Fringe) 공연이다. 에든버러 시내 여기저기서 거리공연이 펼쳐지고 있었는데, 레파토리도 아비뇽과 대체로 비슷한 거 같았다. 


나무로 뭔가를 조각하는 사람. 앞에 있는건 브레이브하트의 멜깁슨인듯
자신의 공연을 공보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
유명한 계몽주의 철학자 흄 상을 사이에 두고 백파이프를 부는 소년과 거의 노숙자에 가까운 기타 연주자가 대비를 이룬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유명한 계몽주의 철학자인 데이비드 흄 동상 왼쪽에는 전통의상을 입고 백파이프를 연주하는 소년이 있고 오른쪽에는 거지인지 히피인지 알 수 없는 차림의 청년 둘이 뭔가를 먹고 있다. 


그냥 거지라고 보기에는 포스가 넘치고 기타 같은 것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뭔가 퍼포먼스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에든버러는 길거리 퍼포먼스와 길거리 취식이 잘 구분이 가지 않는 곳이었다.


구슬을 가지고 나름대로 진지하게 무용을 하는 사람
꼭두각시 인형이 너무 섬세해서 인상적이었다.


 한 청년이 꼭두각시 인형으로 공연을 하고 있었는데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고 있는 인형의 움직임이 어찌나 섬세한지 마치 인형 스스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길거리 공연은 많은 사람들과 즉석에서 함께 호흡할 수 있어 매력이 있다.


디카프리오를 닮은 길거리 공연자. 혼자서 좌중을 압도하는 카리스마가 대단했다.


길거리 공연자 중에 디카프리오의 어린 시절을 닮은 청년이 있었는데 잘생긴 외모에 많은 청중을 사로잡는 카리스마가 대단했다. 순발력과 유머 감각도 뛰어나서 몇 년 지나면 영화나 TV에서 보게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권셰프는 거리의 귀엽게 생긴 영국 여자 경찰이 너무 맘에 든다고 가서 말을 붙이더니 같이 사진까지 찍었다. 


“형, 나 여기도 너무 맘에 들어. 나중에 와서 살래”


에든버러가 권셰프의 노후 위시리스트에 추가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에든버러 길거리 공연 풍경


에든버러에서 가장 보고 싶은 것은 스콧 모뉴먼트 혹은 기념비였다. 배두나가 나왔던 ‘클라우드 아틀라스’라는 영화에서 스콧 모뉴먼트는 극중 게이커플의 이루지 못하는 사랑의 배경이 되는 장소로 강렬한 인상을 주었던 곳이다. 


불에 탄 것처럼 검은 돌의 외관이 특히 인상적인데 다른 유럽 도시와는 달리 에든버러에는 검게 변한 돌을 벗겨내지 않고 그대로 두는 곳이 많이 있었다. 스콧 모뉴먼트는 생각보다는 그리 크지 않고 생각보다 도심에 위치해 있어서 의외였는데, 에든버러 사람들에겐 그리 특별한 장소로 취급 받는 거 같지도 않았다. 


에든버러 페스티벌은 나중에 돌아올 때 제대로 다시 보기로 하고 서쪽에 있는 아름다운 호수인 로몬드 호수(Loch Lomond) 쪽으로 이동했다. 꽤나 먼 거리였기 때문에 가다 보니 해가 져서 잘 곳을 구해야 했는데 장소를 구하는 것이 만만치 않았다. 


그냥 가다가 적당한 곳이 나오면 아무데나 텐트를 치고 자기로 했는데 아무리 가도 딱 여기다 할만한 곳이 없었다. 길 옆 휴게소 비슷한 곳에 칠까 생각했지만 차들이 지나다니는 곳이라 아무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고 추수가 한창인 밀밭 트랙터 밑에서 잘까도 생각했지만 혹시라도 트랙터가 아무 생각 없이 움직이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포기해야 했다.


로몬드 호수옆 길가에 노숙 중이다


몇 군데 B&B를 들렀지만 빈 방이 없었고, 그러다 보니 결국 밤 늦은 시간에 로몬드 호수까지 오게 되었다. 깜깜해서 어디가 어딘지도 알 수 없었는데 호수 바로 옆에 텐트를 칠까도 생각했지만 캠핑이 금지되어 있는 지역이고 벌금도 엄청나게 비싸다고 들어서 고민하다가 길 건너편에 다른 사유지로 보이는 곳으로 들어가는 입구 앞에다 텐트를 치고 하룻밤 자고 가기로 했다. 길가라 좀 걱정되기는 했지만 차가 거의 안 다니는 곳이라 큰 문제는 없어 보였다.


이미 열 시를 넘긴 시간이어서 텐트만 치고 자려고 했지만 한잔만 하고 자기로 해서 고기를 굽고 술을 먹다 보니 낮에 장본 고기와 술을 다 먹어 치워버렸다. 특히나 일회용 바비큐그릴을 처음 써봤는데 고기에 불 맛이 배인 것이 너무 맛있었다. 


잘 곳을 못 구해서 긴장을 하다가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술이 너무 잘 들어가고 고기도 너무 맛있다. 너무 늦은 시간인데다 비까지 내리고 너무 깜깜해서 텐트 하나만 쳐서 잠을 청했다. 계속 비가 내리고 추워서 편안한 잠은 못되었지만 그래도 누울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한 밤이었다. 셋 다 술 취한 채로 정차장의 코고는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들었다.


너무나 깨끗하고 아름다운 로몬드 호수


다음날 일어나서 로몬드 호수를 둘러보니 너무나 깨끗하고 아름다운 곳이었다. 지난 밤에는 어두워서 잘 찾을 수 없었지만 호숫가에 텐트를 칠만한 장소도 여기저기 많이 있었다. 단, 걸리면 엄청난 벌금은 감수해야겠지만.. 


스코틀랜드의 대부분의 국립공원은 캠핑이 허용되는데 로몬드 호수를 포함한 몇 군데는 금지되어 있다. 워낙 경치가 좋다 보니 젊은 사람들이 캠핑하고 쓰레기로 어지럽히는 일이 잦아서 그렇게 된 모양인데 최근에는 다시 허용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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