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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태 Nov 12. 2018

지옥에서 온 미찌

2.42. 하일랜드-스카이섬

오늘부터는 본격적으로 하일랜드 여행을 시작한다. 스코틀랜드 북부의 넓은 지역을 하일랜드라고 부르는데  예전부터 꼭 한번 와보고 싶었던 장소였다. 우리말로는 고원이라는 의미이지만 그냥 스코티시 하일랜드라고 고유명사처럼 쓰인다.


나는 왠지 사람들이 많거나 인공적인 관광지보다는 거친 황무지와 언덕들이나 폭풍의 언덕의 배경일 것 같은 외롭고 쓸쓸한 장소에 가는 것을 더 좋아한다. 이번 여행 코스에 스코틀랜드와 아이슬란드가 들어있는 이유도 그런 이유였다. 


하일랜드의 흔한 풍경. 언덕과 초원이 이어진다


로몬드 호수를 출발해서 하일랜드의 대표적인 여행지인 스카이섬을 향해 출발했다. 어제의 노숙으로 피곤했지만 중간에 카페에 들러서 커피를 마시면서 에너지를 좀 회복할 수 있었다. 카페는 영국 전통 방식으로 인테리어가 장식되어 있었는데 여기저기 낚시 도구나 엽총 같은 것과 함께 영화에서 보던 것처럼 다양한 크기의 사슴 머리가 벽 여기저기에 걸려 있었다. 


한참을 쉬다가 다시 차를 타고 출발하려고 차를 빼다가 그만 차를 전봇대 비슷한 폴에 부딪쳐서 범퍼와 후미등 일부가 깨지고 말았다. 다행히 수퍼커버 보험이 들어 있었기 때문에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보험은 무조건 풀 커버로 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다시금 했다.


흐르는 강물처럼에 나오는 것 같은 개울이 있어서 낚시줄을 던져 봤지만 소득이 없었다.


스카이섬으로 향하는 길에 ‘흐르는 강물처럼’에 나오는 거 같은 멋진 냇물이 보여서 브래드 피트처럼 멋지게 낚시대를 던져 보았지만 고기는 전혀 낚을 수가 없었다. 아일랜드부터 중간 중간 몇 번 낚시를 시도해 보았지만 고기 구경을 못하기는 매한가지였다. 어디에선가 스코틀랜드에서 낚시하기는 꽤나 어려운 편이라고 하던데 그 말이 맞나 보다. 


하일랜드는 언덕과 호수가 어우러진 멋진 풍경을 자랑한다


중간에 점심 먹을 때가 되었는데 마땅히 먹을 장소가 없어서 언덕 중간에 전망대처럼 차를 세우고 쉬어갈 수 있게 되어 있는 곳에 차를 세우고 라면을 끓여 먹었다. 스코틀랜드의 호수와 산과 언덕을 바라보며 먹는 라면 맛이 기가 막히다. 


지나가던 차들이 잠시 멈춰 서서 전망을 구경하다가 우리가 라면 끓여먹는 것을 신기한 듯이 보고 가곤 했는데 갑자기 한국 청년 하나가 와서 아는 체를 한다. 이쪽 어디에서 일하는 삼성엔지니어링 직원이라고 하는데 잠시 휴가를 내고 여행 중이라고 한다. 좀 부러워 보인다. 


세자매라는 이름의 봉우리들. 대륙이 충돌해서 생긴 것이라는데 몇 백년전에 여기서 학살이 있었다고 한다


하일랜드의 호수 풍경


하일랜드에서 끓여먹는 라면 맛은 환상적이다


스카이섬을 향해 달리다 보니 인터넷에서 본 익숙한 풍경이 나타난다. 바다 위에 있어서 다리로 연결된 엘린 도넌성이다. 해리포터, 007, 하이랜더 등 많은 영화의 로케이션 장소였던 유명한 곳이다. 


스코틀랜드에서 유일하게 정부 소유가 아닌 개인 소유인 성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입장료가 비쌌다. 성 내부에 별로 볼게 있을 것 같지도 않아서 밖에서만 보기로 했다. 성 앞 주차장에는 성을 배경으로 백파이프를 부는 소년이 있었는데 역시 백파이프는 스코틀랜드에서 불어야 제 맛이라는 생각이 든다. 스코틀랜드에서는 어딜 가나 킬트 치마를 입고 백파이프를 부는 사람을 쉽게 만날 수 있다. 


해리포터, 브레이브하트, 007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엘린 도넌 성


한참을 달린 끝에 바다와 만났는데 바닷물이 부글부글 끓는 거 같은 모습을 보고 얼른 뛰어가서 낚시대를 던졌다. 보일링이라고 해서 멸치 떼가 수면으로 떠올라서 생기는 현상인데 주변에 멸치를 쫓는 고기때가 있어 잘하면 고기를 낚을 수 있었다. 


하지만 한참 동안 낚시를 했지만 겨우 멸치 몇 마리만 낚을 수 있을 뿐이었다. 권셰프는 그래도 처음 잡은 고기라고 가져가서 기념으로 요리해 먹자고 했지만, 나머지 두 낚시꾼들은 더 큰 고기를 낚을 욕심에 멸치를 미끼로 끼어서 던지는 바람에 그나마 몇 마리 있던 것도 날려버리고 말았다. 


노름판에서 다 잃고 집에 가는 차비 얼마 받아서 그걸로 다시 노름하다가 완전히 빈털터리 된 기분이다. 


멋진 언덕에 텐트를 치려고 했지만 미찌와의 조우로 포기해야 했다


한참을 그러고 있는데 물속에서 물개가 고개를 빼꼼 내밀고 우리를 측은한 눈빛으로 쳐다본다. 그렇게까지 몰아줬는데도 고기를 못 잡느냐고 불쌍하게 보는 듯 한 표정이었다. 불현듯 차라리 물개를 낚아볼까 하고 잠시 고민하는 사이 물개는 사라지고 우리의 낚시도 그쯤에서 정리해야 했다. 


하일랜드 해안에는 어디나 미역 비슷한 수초가 널려있어서 낚시 하기도 까다롭고 조심해야 한다. 바늘이 잘 걸리기도 하고 까딱 잘못하면 미끄러져서 머나먼 이국 땅에서 생을 하직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멋진 풍경이 나타나 낚시를 해봤지만 소득은 없었다


고기를 못 잡은 아쉬움 때문인지 이 부근에서 텐트를 치기로 하고 적당한 장소를 찾다가 괜찮은 곳을 발견했다. 주 도로에서 벗어나서 조그만 산길을 따라서 가다 보니 바다가 보이는 탁 트인 전망에 바닥에 푹신한 풀들이 깔려있는 멋진 장소가 나타났다. 


여기서 자고 가기로 하고 차를 세우는데 풀에서 날파리 떼가 날아오른다. 그런가 보다 하고 있는데 날파리가 갑자기 모기처럼 쏘기 시작했다. 첨엔 그냥 참으려 했지만 1분만에 도저히 참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철수하기로 했다.


이것이 악명 높은 미찌(Midge)와의 첫 만남이었다. 미찌는 언뜻 보면 날파리 같이 생겼는데 모기처럼 무는 놈들이다. 하일랜드 풀밭 전역에 이 미찌들이 있어서 되도록 풀밭으로는 안 들어가는 것이 좋다. 우리말로는 깔따구로 번역되는 거 같은데 우리나라 깔따구는 물지 않는 걸로 아는데 이놈들은 지독하게 물어댄다. 


스코틀랜드 사람들에게 미찌 아냐고 물어보면 다들 일단 고개를 앞뒤로 끄덕인 후 잠시 후 다들 고개를 좌우로 절래 절래 젓는다. 하일랜드에 사람이 안 사는 이유가 이 미찌들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스코틀랜드 변경에서 연기처럼 사라졌다는 로마의 제9군단도 혹시 미찌를 못 견디고 도망간 건 아닐까?


평화로운 캠핑장엔 악마가 숨어 있다.


그냥 풀밭에서 캠핑했다가는 미찌들 등쌀에 못 견딜 거 같아서 근처 야영장을 찾아서 자리를 잡았다. 바다를 바라보는 초원에 만들어진 멋진 캠핑장이었다. 어디다 텐트를 쳐야 하냐는 질문에 주인 아저씨는


“아무데나 치고 싶은데다 치세요.”


라고 대답하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다. 그때 그 아저씨를 의심했어야 했는데 우리는 순진하게도 재미있는 아저씨네 라고 생각하고, 언덕 한가운데 멋진 경치 속에 텐트를 치고 저녁 준비를 시작했다. 


그런데 저녁을 위해 버너에 불을 켜자 또다시 미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잔디에는 미찌가 없을 것으로 생각해서 캠핑장에 온 것인데 그건 우리만의 착각이었나 보다. 그제서야 캠핑장 여기 저기에 양파 망 같은걸 뒤집어 쓰고 다니는 사람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양파 망들을 뒤집어 야외 식탁에 모여 앉아서 식사를 하는 가족이 있었는데, 그러고 어떻게 밥을 먹는지도 신기하고 양파 망을 안쓰고 돌아다니는 다른 사람들은 적응이 되어서 괜찮은 건지도 궁금하다. 


양파망 같은걸로 철저히 무장한 아저씨. 뭘 좀 아는 사람이다.

 

사방에 있는 미찌 등쌀에 식사도 대충 하고 일찍 들어가서 잠을 청했는데, 진정한 악몽은 다음날 아침에 기다리고 있었다. 잘 자고 일어나서 바깥으로 나와 봤더니 텐트 바깥에 새까맣게 미찌 떼가 붙어있다가 나오자마자 물어대는데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서 차 안으로 피신하려고 차문을 열었지만 안에도 이미 미찌 떼로 새까맣게 덮여 있었다. 


우리 셋은 기겁을 하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일단 풀이 없는 저 멀리 아스팔트 위로 도망쳤다. 잠시도 견딜 엄두가 안 나서 일단 대충 짐을 싸서 딴 데로 도망을 가자는 의견이 모아졌지만 문제는 누군가가 텐트를 해체해서 차에 실어야 한다는 점이다. 


누가 대신 해 줄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각 텐트의 주인인 정차장과 내가 각자 텐트를 해체하기 시작했다. 최대한 빨리 텐트를 해체한다고 했지만 10분 정도 무방비 상태로 미찌들의 공격을 받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미찌들의 무차별 공격에 온통 가렵고 따가워서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었다. 




겨우 텐트를 걷고 대충 차에 짐들을 쑤셔 넣고 출발했는데 그 사이에 몇 백 방은 쏘인 거 같다. 최대한 옷으로 가린다고 가렸지만 살이 밖으로 드러난 곳은 엄청나게 쏘여서 금방 붉은 반점이 생기더니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다. 


얼굴은 말할 것도 없고 목, 손, 허리, 발목 등에 두드러기처럼 쏘인 자리가 부어 올랐는데, 몇 일 지나면 가라앉을 줄 알았지만 여행이 끝날 때까지 거의 3주 정도 그 상태가 지속되었다. 우리 셋은 있는 욕이란 욕은 다 하면서 차를 운전했다. 


어제 캠핑장 계산할 때 주인 아저씨의 의미심장한 미소의 의미를 이제야 알 거 같았다. 게다가 어제까지 동경의 대상이었던 하일랜드의 쓸쓸한 들판과 언덕들이 이제는 괴물들의 소굴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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