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이란 뭐길래
1)
"음악 추천하지마"
최근 가까운 친구에게서 들은 말이다. 이유를 물으니, 어차피 사람들이 추천해주는 것은 자기 취향에 맞지 않을 뿐더러 그 곡에 대한 반응을 어떻게 해야할지 난감해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도 이거 진짜 좋은데"
"그래도 하지마"
"알겠어"
하지 말라고 하면 웬만하면 안 하는 성격이라, 알겠다하고 나의 경우를 곰곰히 되돌아 보았다.
영화 <밀양>에서 전도연이 세탁소 아주머니에게 인테리어 좀 바꾸라는 말을 한다. 처음 세탁소 아주머니는 전도연을 뒤에서 욕할 정도로 전도연에게 반감을 가진다. 하지만 영화의 마무리 즈음, 전도연이 몰락한 후 그제서야 '당신 말 듣긴 참 잘했어'라고 한다. 이 장치가 의미하는 것은 정말 많겠지만, 나는 타인의 취향을 받아들이는 과정 속에서 일어나는 일상적인 모습을 그려냈다고 생각한다.
5년 전, 상수역에서 기타 선생님께 짧게 기타를 배웠던 시절이 있다. 선생님께서 우효의 <아마도 우린>을 추천해주셨는데, 그때 당시에는 '뭐 이렇게 힘빠지는 걸 들어?' 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그러다 한 두어달이 지난 후, 친구들이 우효의 <Teddy bear rise>를 좋게 들었다는 말에 선생님의 말씀이 생각나 <아마도 우린>을 들으니 그제서야 곡이 제대로 들리더라. 굉장히 빠져서 공연까지 했던 적이 있다.
그리고 최근에는 우리 밴드를 좋게 들어주는 어떤 남학생과 연락을 하던 중, 서로 음악을 추천해주는 일이 있었는데 그 분이 추천해 준 음악이 너무나도 내 취향이 아니었다.
우리 음악이랑 완전히 다른데 왜 우릴 좋아해주는거지?
라는 생각이 들자마자 그 학생도 나보고 '뭘 이딴걸 추천하지?'라고 생각이 들었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왜 항상 대개의 음악 추천을 주고 받을 때에는 당장은 그것을 받아들이기 힘든 것일까?
음악 추천이란 취향을 전달하는 것이다. 취향이란 한 사람의 가치관 혹은 생각을 담는 것이다. 고로 음악 추천은 생각과 가치관을 전달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이와 비슷한 행위로는 조언이 있다.
취향을 생각으로 치환해보자. 극한의 똥고집을 가진 사람과, 극한으로 생각이 없는 사람이 있다. 이 두 사람은 내가 조언을 해도 바뀌지 않는다. 고로 조언을 하지 않는 게 수지타산에 맞다. 뿐만 아니라, 조언이라 함은 한 사람의 관성에 제동을 거는 행위이므로 그것이 올바른 말이라한들, 거부감을 살 수 있다. 음악도 그렇다. 처음엔 그 음악이 나의 기존 취향에 제동을 건다면 그 음악이 당장은 들리지 않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젠가는 그 음악이 내게 돌아와서 귀에 들어올 가능성이 크다. 세상의 수많은 경험이 새로운 경험을 열어주는 통로가 되는 것처럼, 언젠가는 세탁소 아주머니가 당신 말이 맞았다고 할 것이니까. 세상의 많은 음악이 시간 지나서 다시 그 음악을 듣게 해줄테니까. 언젠가는 친구도 내가 추천해줄 음악을 들을테니까!하지만! However.
"거 음악 추천 좀 할 수 있지 너무 높은 윤리적 잣대를 들이미는 것 아니오!"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이 말이 맞다. 음악 추천을 하는 것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내가이 글을 쓴 이유는 '음악 추천을 하지 말자'보단, 나와 내 친구는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에 대한 답을 내리고 싶었을 뿐이다.
그러니까 Alvvays의 <Blue Rev> 들어봐
+a)
최근에 금수씨를 만났는데, 금수씨와 길을 가던 도중 이런 말씀을 하셨다.
제가 음악 추천 글을 쓰면요. 아니 대부분의 음악 추천글의 댓글을 보면,
'와 덕분에 새로운 음악을 알았어요'가 아니라
'역시 0000 근본이죠~'라는 댓글이 더 많아요.
약간 자기 아는 거 나와서 신난 느낌이랄까..
음악 추천이란 굉장히 어려운 일인 것 같다. 다음엔 '근본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글을 쓰고자 한다. 너무 메세지를 담은 글이라서 못쓰고 있다. 의도를 가지고 무언가를 실행하는 것은 짜치다. 그나저나 ‘역시 0000근본이죠~’ 라고 댓글 단 사람 나였다.
2)*비고 1번 글보다 휘갈기듯 썼습니다.
기타 레슨으로부터 5년이 흐르고, 사회문화적으로는 코로나의 영향으로 기술적으로는 알고리즘의 영향으로 취향이 세분화된게 피부로 느껴진다. 마케팅 & 세일즈, 음악 업계 등에 종사하며 느낀건 더이상 <절대 유행>이란 없다. 사람들은 이제 '극한의 매니아'와 '극한의 무취향'으로 갈리는 듯 하다. 사실 업종에서 큰 경력이 있는 것은 아니고 1년도 안 된 신입 수준이지만 요즘은 '극한의 무취향' 고객들을 어떻게든 공략하는 쪽에 다들 힘을 쏟는 듯하다.
이렇듯 취향을 가지는 것은 큰 힘이 될 수 있다. 우리 삶이 단순히 직업과 일 등 경제적인 것으로만 이루어진게 아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시간은 유희를 위해 컨텐츠를 찾아 헤매는 것이 사람이다. 사람이 하나의 거대한 그릇이라고 한다면, 취향은 그 안에 구슬을 채우는 것과 같다. 수많은 진열장 속에서 내 중심을 지킬 수 있어야한다. 지금 아직도 수많은 세일즈맨과 마케터들은 당신을 흔들기 위해 야근을 하고 있다구.
요즘 '용00'이라는 유튜버를 기점으로 나를 제외한 타인을 NPC로 여기는 사람들이 소수 증가한 듯 하다. 그들의 생각에 전혀 동의하지 않지만, 적어도 어떤 생각에서 기반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취향이 없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일이 종종 있다. 그들과 대화하는 것은 마치 메이플스토리에서 퀘스트를 주지 않는 NPC와 대화하는 것 같다.
"어떤 음식 좋아해요?"
"그냥 아무거나 먹어요..."
"어떤 음악 들으세요?"
"그냥 장르 안가리고 다 들어요(보통 이런분들이 음악 제일 안 듣는다)"
"뭘 하고 싶으세요?"
"그냥 돈 많이 벌고 싶어요"
아무런 대화도 이어갈 수 없고, 아무런 그에 대한 호기심도 생기지 않는다.
하지만 종종 같은 취향의 사람을 발견하면 그에 대한 짐작을 하기 시작한다.
"어떤 삶을 살았길래 저 영화를 찾아본 걸까?"
"그 음악을 듣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에 대한 의문이 생기기 시작한다.
매력과 무게는 비밀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내 취향을 가진다는 것은 상대방에게 물음표를 띄울 수 있는 무기를 잔뜩 마련하는 것과도 같다. 나도 아직은 가벼운 사람이지만, 적어도 나는 기억에 남는 사람이 되고 싶다.
최근 개인 사정으로 회사를 금방 그만둔 인턴분과 맥주를 한 잔 했다.
"형 저는 대학교 다닌 4년 동안 제가 죽어있다고 생각했어요. 남들 다 하는 NCS치고, 그러면서 안정적인 가정 꾸리다가 죽을 줄 알았는데, 생각해보니까 그게 너무 비참한 거에요. 그래서 이제서야 하고 싶은 걸 찾았고 회사도 잡았는데 사정이 생겨서 그만두게 됐네요.. 그래도 어떤 방향으로든 하고 싶은 거 할 수 있어서 행복해요"
그의 말에서 그가 살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취향은 흔들리지 않는 자신만의 기준, 매력을 줄 뿐만 아니라 어쩌면 삶의 원동력이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