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와 여러 이야기로 보는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리뷰
조지 오웰의 에세이 <코끼리를 쏘다>를 보면, 조지 오웰이 영국 경찰로 활동했을 시기의 일화가 담겨있다. 인도인 노비 한명을 죽게 만든 코끼리와 의도치 않게 대립하게 되어 코끼리를 죽여야만 하는 상황이 다가온다. 이 에세이는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이 주된 메세지였지만, 내게 가장 와닿았던 묘사는 코끼리와 대치하고 있는 상황과 결국 코끼리를 죽게 만든 상황에 대한 묘사였다.
총에 맞은 코끼리의 주름에 생기가 빠져나가고, 죽음을 맞이하며 급격히 노화되는 모습을 '1분만에 1000년은 늙은 것 같다'고 표현한다. 조지 오웰은 결국 코끼리의 죽음을 끝까지 지켜보지 못하고 멀리 도망친 후에야 코끼리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나는 이 일련의 과정이 코끼리와 조지 오웰의 대립이 될 수도 있지만, 그 안에서 사랑도 느껴졌다. 내가 죽여야만 하는 대상을 연민하고, 뚫어져라 바라보며 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것.
최근 이명세 감독의 <인정사정 볼 것 없다>를 다시 관람하였다. 첫 관람은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아버지가 영화마을에서 빌려온 DVD로 봤었다. 아버지는 이 영화와 <쉬리>를 굉장히 좋아하셨는데, 당시에는 너무 어려서 안성기 배우가 착한 역할인줄 알았다. 아무튼 이 영화를 다시 본 이유는, 에무시네마에서의 '이명세 감독전'이 개봉되고 우연히 지인들이 감독의 작품 <M>을 추천해주었기 때문에 다시 필모그래피를 톺아볼 겸 보게 되었다. 영화의 촬영과 연출, 탐미적인 측면은 자타공인 인정받기 때문에 굳이 언급하지 않겠다. 나는 이 영화를 다시 보고 크게 감동한 여러 부분이 있었는데, 마지막 진흙탕 결투 장면을 가장 좋은 예로 들고 싶다.
이 영화는 박중훈이 안성기를 수사하고 쫓는 아주 단순한 플롯의 영화이다. 누군가를 수사한다는 행위는 어떤 행위일까? 그의 이름과 인적사항부터 시작해, 그것을 바탕으로 그의 삶과 성격을 유추해본다. 그의 삶과 성격을 통해, 그의 지금 행동을 유추해본다. 그의 행동을 통해, 그를 쫓는다. 이 과정이 무엇과 비슷하지 않은가?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을 때 그를 떠올리며 하는 행동이다. 마지막 장면, 박중훈이 정말 처절하다 못해 사념을 다해 안성기와 결투하는 장면에서 흐르는 Bee gees 의 <Holiday>의 가사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오 당신은 휴일같이 편한 사람", "나를 가치있게 만드는 그 어떤 것이죠"
위 가사 그대로, 누군가를 사랑하며 떠올리는 내용이다.
나는 <인정사정 볼 것 없다>가 단순한 오락 형사 영화를 너머, 휴머니즘이 담긴 로맨스 영화라고 느껴졌다. 서로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주먹을 날리는 모습. 누군가를 쓰러뜨리기 위해선 그 누구보다 상대를 사랑해야지만 가능하다는 모순을 담고 있다. 이명세 감독의 전 작품들의 대부분이 로맨스 영화인 것도 재밌는 관람 포인트다.
90년대부터 시작된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의 마지막은 2005년이라고 생각한다. 내 기준 그 마지막을 장식하는 영화는 단연코 류승완 감독의 <주먹이 운다>라고 할 수 있다. <주먹이 운다>에서 최민식은 가족을 위해, 류승범은 아버지에 대한 속죄와 방황을 멈추기 위해 싸운다. 놀랍게도 이 라이벌들은 영화 내내 마지막 결투씬을 제외하면 마주치지 않는다. 그저 자신에게 다가올 싸움을 기다리며, 상대가 누구인지 그려보고, 분석하고, 대비한다. 샌드백 앞에서 다가올 상대를 떠올리며 끊임없이 훈련한다. 권투는 외로운 운동이다. 비록 스파링으로도 훈련을 할 수 있지만, 대부분의 훈련과정은 샌드백 앞에서 이뤄진다. 샌드백을 노려보며 미래의 상대를 그리워하는 모순적인 행동을 이어서한다. 복싱이라는 스포츠 자체가 상대를 사랑하는 행동 과정을 훈련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마지막, 그토록 기다리던 서로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마주하고 각자의 삶을 위해 싸우는 모습에서 신성한 느낌을 주는 OST가 흐른다. 뉴질랜드의 민요 <포카레카레 아나>인데, 우리나라에서는 6.25 전쟁 때 뉴질랜드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에게 전파해주었다는 속설이 있다. 무튼 가사의 내용을 살펴보면, "너무나 그대를 사랑합니다" "제 사랑은 절대 마르는 날이 없을 겁니다. 언제나 젖어 있을 테니까요. 제 눈물로 말입니다." 라는 내용이 있다.
상대를 무참히 타격하고, 쓰러뜨리는 장면에서 모순적으로 사랑을 외치는 OST가 흐르고 있는 것이다. 류승완 감독의 <주먹이 운다> 또한 '라이벌은 경쟁이자 사랑이다'라는 은유적인 메세지를 담고 있는 것이다.
이런 한국 영화의 꽃들이 있었기에, 작금의 <범죄도시> 시리즈는 많은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범죄도시> 시리즈의 일관적인 특징은, 마동석과 상대의 '경쟁'이 아닌 절대강자인 마동석의 '처단'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이 영화가 흥행하게 된 이유도 '처단'에 있다. 이 영화에선 어떠한 사랑과 휴머니즘이 느껴지지 않는다. 오로지 '나쁜 놈은 이유 들을 필요 없이 이겨야 해'를 외치고 있다. 혹자는 '그럼 범죄자들에게 사연을 무조건 부여하자는 것이냐?'고 반문할 수 있다. 답은 '아니'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는 영화의 제목처럼 빌런 안성기에게 그 어떠한 사연도 부여하지 않는다. 도시 한복판에서 살인을 저지르고, 젊은 경찰도 무참히 찔러버리는 냉혹한 범죄자로서만 비추고 있다. 냉혹한 범죄자에게 그 어떠한 서사도 부여하지 않고도 휴머니즘을 느끼게 하는 모순을 이 영화는 기어코 해결하고 관객에게 전달하고 있다. 작금의 영화는 이러한 깊은 접근이 보이지 않아 아쉬움이 크다. 그것은 비단 감독들의 탓은 아닐 것이다. 어느덧 세계는 경쟁의 시대를 넘어서 처단의 시대가 되고 있으니까.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을 그 예로 들고 싶다. 정치적인 견해를 떠나, 그는 말 그대로 자본주의 그 자체의 세일즈맨이다. 그에게서 사랑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것만 같다. 아마도 민주당은 당분간 '처단'당하지 않을까 싶다. 오로지, 승리만을 위해 달려가는 사람이다. '사랑'이라는 달콤하고 단순한 단어로 그의 당선을 위험하다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나 또한 '사랑은 인류가 오랜 보존을 이루기 위한 일종의 프로파간다는 아닐까?' 라는 생각을 가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표면적이라도 '사랑'과 '공생'을 말하는 것은 나름의 효과가 있다.
첫째로, '사랑'은 단기적인 가치를 포기하면서도 찾아오는 장기적인 효용이다. 단기적인 이득과 가치만을 추구하는 것은, '삶'이 아니라 '생존'에 가깝다. 인간이 '삶'이라는 단어보다 '생존'에 가까워 질수록, 우리는 더더욱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한국 청년들의 저출산이 아주 단적인 예시다. 한국에서 '삶'을 산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생존'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점점 더 사랑이 줄어드는 것이다. 사랑이 줄어들면, 점점 더 '삶'보단 '생존'을 추구하는 사람이 늘어날 것이다. 이러한 악순환에 우리는 빠져있다.
둘째로, 표면적이라도 '사랑'같은 이상적인 가치를 말하는 것은 긴장을 완화할 수 있다. 그 자체로 긴장을 완화하고, 대화의 장을 열며, 심리적 안정을 제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더 나아가, 평화를 지속 가능한 목표로 자리잡게 하고 폭력을 정당화하려는 시도를 약화시킴으로써 사회와 국제 관계에서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하지만 표면적이라도 '사랑'과 '평화'같은 이상적인 가치를 얘기하지 않는다면, 세계는 상시 긴장의 상태에 빠질 것이다. 알다시피 긴장 상태에서는 '불안과 짜증'같은 부정적인 감정이 발현하기 쉽다. 만성적인 긴장에 빠져있는 사람은 어떠한가? 항상 피로하고, 불행하다.
나 뿐만이 아니라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이 말하듯 프리드먼의 자본주의의 한계가 슬슬 다가오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새로운 이념에 대한 논의는 부족하고 공동체의 가치는 점점 더 퇴색되어 가는 것 같다. 이와 같이 '라이벌'이라는 단어가 점점 사라지는 것 같다. 오히려 '빌런'이라는 단어만 늘어나고 있다. 함께 경쟁해야할 상대는 점점 줄어들고, 오로지 처단만이 남은 세상이다.
마치 사람들은 자신은 끝까지 처단당하지 않을 것처럼, 그 어떠한 공간도 남겨두지 않은채 빌런들을 만들고 처단해버린다.
마지막으로, 최근에 봤던 영화 <챌린저스>를 예시로 글을 갈음하고자 한다. 챌린저스 또한 두 '라이벌'의 대결을 그리고 있지만, 사실 그 이면엔 둘의 사랑을 그리고 있는 영화다. 역시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 작품이다.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보고 쉬이 나갈 수 없었던 것은, 그리고 이 영화가 재미있음에도 잘 만들었다고 느낀 것은, '처단이 아닌 경쟁'을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