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 수가 없다> 리뷰

뭐 어쩌라고

박찬욱의 신작 <어쩔 수가 없다>를 보고 나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분명 잘 만든 영화다. 기술적으로도 완벽하고 미장센도 아름답다. 하지만 뭔가 아쉽다. <올드보이>나 <복수는 나의 것>을 처음 봤을 때의 그 충격, 가슴을 후려치는 듯한 감동이 없다. 마치 고급 레스토랑에서 정갈하게 차려진 음식을 먹는 것 같다. 맛있긴 한데, 왠지 배가 고프다.


이런 현상은 박찬욱만의 문제가 아니다. 류승완의 <모가디슈>, 봉준호의 <미키17>도 마찬가지다. 모두 기술적으로는 과거 어느 때보다 뛰어나다. 하지만 <주먹이 운다>나 <살인의 추억>이 주었던 그 날것의 감동은 어디 갔을까? 한국영화의 거장들이 나이가 들어서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을까?


답은 의외로 간단할지도 모른다. 자본이다. 영화 제작비가 커질수록, 투자자들이 많아질수록, 감독들은 ‘안전한’ 선택을 하게 된다. 위험을 감수하고 새로운 시도를 하기보다는, 이미 검증된 공식을 반복한다. <어쩔 수가 없다>가 바로 그런 작품이다.


이 영화는 사실상 ‘박찬욱 베스트 앨범’이다. <올드보이>의 이빨 뽑기, <박쥐>의 김해숙, <헤어질 결심>의 불륜 등등. 과거 자신의 작품들을 끊임없이 인용한다. 마치 타란티노의 <헤이트풀 8>처럼 말이다. 하지만 <저수지의 개들> 같은 파괴력은 없다. 너무 계산적이고, 너무 안전하다.


더 큰 문제는 이 영화가 다루는 주제의식마저 어딘지 어정쩡하다는 점이다. 봉준호식 계급 갈등, 코엔 형제식 세대론, 미이케 다카시식 가족 해체 등 온갖 요소들이 뒤섞여 있다. 하지만 정작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건지 명확하지 않다.


주인공 이병헌이 실직한 중년 남성이라는 설정은 분명 현실적이다. 제지 공장이라는 사양 산업, AI로 대체되는 인력, 연하남들에게 아내를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불안. 이 모든 것들이 지금 우리 사회 중년들이 겪는 실제 고민들이다. 하지만 영화는 이런 현실을 직시하기보다는 상징과 은유로 포장해버린다.


앵무새, 첼로, 수염, 술의 종류까지. 모든 게 상징이다. 너무 친절하게, 너무 정교하게 설계된 상징들이다. 관객들이 “아, 이런 의미구나” 하며 고개를 끄덕일 만한. 하지만 정작 가슴을 울리는 진정성은 부족하다. 마치 고급 백화점에서 파는 ‘의미 있는 예술품’ 같다.


가장 아쉬운 건 폭력의 묘사다. 박찬욱 하면 떠오르는 게 바로 충격적이고 원시적인 폭력 미학 아닌가. 하지만 이번 작품의 폭력은 너무 깔끔하다. 아버지 유품인 북한군 권총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설정도 그렇다. 분명 의미는 있다. 분단의 아픔이 개인의 계급 갈등으로 전이된다는 메타포 말이다. 하지만 그 폭력 자체가 주는 충격은 약하다.


결국 <어쩔 수가 없다>는 현재 한국영화계 거장들이 처한 딜레마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기술적으로는 완벽해졌지만, 영혼은 어딘지 공허하다. 자본의 논리에 맞춰 고려하다보니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 같다.


물론 이는 박찬욱 개인의 문제만은 아니다. 영화 산업 전체의 문제다. 제작비가 올라가고, 관객 동원에 대한 압박이 커지고, 해외 진출을 고려해야 하는 상황에서 감독들이 온전히 자신만의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런 현실을 그냥 받아들여야 할까? <어쩔 수가 없다>라는 제목이 씁쓸하게 다가오는 이유다. 정말 어쩔 수 없었나? 거장들마저 자본의 논리 앞에서는 어쩔 수 없이 타협해야 하는 건가?


그래도 완전히 절망적이지는 않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정교한 상징 체계나 미학적 완성도는 분명 가치가 있다. 무엇보다 박찬욱이라는 작가가 여전히 현실을 예리하게 관찰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다만 그 관찰을 표현하는 방식이 예전보다 조심스러워졌을 뿐이다.


어쩌면 이것이 한국영화가 성숙해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날것의 충격보다는 세련된 완성도를, 직접적인 메시지보다는 우아한 은유를 택하는.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잃어버린 것들도 분명 있다. 바로 영화가 가져야 할 가장 원시적인 힘, 관객의 마음을 뒤흔드는 그 무엇인가 말이다.


<어쩔 수가 없다>는 그런 의미에서 현재 한국영화의 자화상 같은 작품이다. 기술적으로는 완벽하지만 영혼은 조금 공허한, 자본이라는 거대한 시스템 안에서 길들여진 창작자들의 자화상이다. 과연 우리는 이 상황에서 정말 어쩔 수 없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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