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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델라 Dec 21. 2019

31 언제 변할지 모르는 치매 할머니와 오늘만 살기

    방문을 닫고 오랜 친구랑 전화를 하고 있는데, 집안 자체가 조용해서 할머니가 불안했나 보다. 늦은 밤 혼자 놔두고 밖에 나간 줄 알았는지, 집 안 곳곳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현관에서 신발을 확인하고도 불안했는지 닫힌 내 방문을 벌컥 여셨다. 내가 있다는 걸 확인하고 안도하는 게 눈에 보였다. 그러다가 또 혼자 있기 싫다며 같이 자자고 졸랐다.     


    할머니 : 나랑 같이 자자.

    나 : 싫어요. 나는 혼자 자고 싶어요.

    할머니 : 나는 너랑 자고 싶은데?

    나 : 나는 혼자 자고 싶은데.

    할머니 : 나랑 같이 자면 재밌잖아.

    나 : 아닌데. 나는 혼자 자야지 제일 재밌는데.     

    너무 단호하게 이야기하자, 할머니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시며 방문을 닫고 나가셨다. 할머니와 같이 자게 되면, 새벽 잠결에 고요함이 불안감으로 다가오는지 적막을 깨려고 텔레비전을 튼다. 천주교에서 운영하는 평화방송을 크게 틀어 놓으시고 다시 잠드신다. 그렇게 텔레비전을 틀었다가 껐다가를 반복하며 주무시는 걸 알기에 같이 자지 못한다. 그렇다고 어설프게 거절하면 끝없이 같이 자자고 하기 때문에 단호하게 거절해야만 한다. 할머니가 나가시고 다시 전화를 이어가고 있는데 10분 후 다시 할머니는 내 방문을 벌컥 열었다.     


    할머니 : 네가 있으니까 좋다. 너도 나 있으니까 든든하지?

    나 : 아유 그럼요. 할머니 있으니까 좋지. 좋다니 고맙네요. 할머니.

    할머니 : 서로가 좋다! 서로가!

    오늘따라 기분 좋으신 할머니를 보며 나도 계속 웃음이 났다. 그저 기분 좋게 하루를 마무리하면 된다. 내일이면 기분이 좋을지, 화를 내실지, 묵묵부답 일지 아무도 모른다. 그냥 그날 하루를 기분 좋게 마무리하는 게 가장 좋다. 그렇게 사는 게 ‘서로가 좋다. 서로가.’




* 치매에 걸린 할머니와 20대 손녀와의 동거 이야기가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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