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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델라 Sep 25. 2019

간호학과에는 '회색 사람'만 있나요?

    간호학과에서 가장 잘 적응하는 사람은 아무래도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지 않는 회색 사람이다. 타인과 다른 사고를 하는 것을 거부하고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걸 꺼리는 분위기다.


    1학년 1학기 때 간호학과에서 의무적으로 학과회비(약 30만 원 정도)를 내라고 했었다. 한 목에 학과 회비를 내면 이후 진행될 학과 행사 때마다 학과 회비에서 지출된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학과 행사 때마다 부수적으로 드는 식비를 따로 걷었다. 나는 학과 회비가 어떻게 지출되 궁금해서 학과 회비 예산 내역서를 공개했으면 한다고 요청했다. 과대표는 처음에는 '당연하다'라고 나에게 호의를 베풀었지만, 학과 내부 회의 때 '성가신 학년'으로 낙인이 찍힌 것인지 점차 형식적으로 대답했던 기억이 있다. 나중에 예산 내역서는 공고되었지만, 과대표랑은 지금까지 사이가 서먹한 관계로 남다. 내가 낸 회비의 양도 작은 양은 아니지만 1학년에게 의무적으로 회비를 걷었다면 엄청난 돈이 모였을 것이고, 그 예산으로 어떻게 학과를 운영하는지 정도는 예산을 낸 사람들에게 공개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나 혼자 했나 보다. 어떤 당연한 요구는 친구관계에 금을 가게 했다.

    간호학과 친구들이 몇몇 모여 심리상담을 배우는 교양 수업을 수강했다. 이 교양 수업은 자기 자신의 심리를 측정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해석을 통해서 상담에 대해 알아가는 강의라고 명시되어 있길래 수강했지만, 생각보다 해석적인 측면에 집중하기보다, '이런 도구가 있다'는 생각으로 한 번 해보는 것에 그쳐 실망을 했다. 그래서 친구에게 내가 기대한 강의와는 다르다고 이야기했다. 같이 수강 신청을 할 때 기대했던 바가 비슷했기 때문에 당연히 나와 비슷한 생각과 실망을 했을 것이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굳이 그렇게까지 관심받고 싶지 않고, 나에게 관심 안 가져줘서 좋은 수업”이라고 했다. 어쩌면 강의계획서대로 강의를 진행하지 않는 교수님임에도 불구하고, 강의 참여가 중요한 수업에서 “관심받지 않는 것이 좋다”라고 말하는 걸 보면서, 자신의 정체성이나 사고방식이 드러나길 꺼려한다는 것을 알았다.

    주변 친구들이 간호 윤리(안락사, 생명 연명치료)를 배우는 토론 위주의 강의를 수강신청하기까지 많은 고민을 하는 것을 보았다. 수업 도중 토론을 하면서 자기 생각이 밝혀지면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라는 생각과 '자신의 의견이 다른 사람들과 다르면 어쩌지' 하는 지나친 두려움 때문이었다. 또한 수능과 같이 정답이 정해져 있는 암기 시험에 익숙해져 있어서, '서술형 문제가 출제되면 어쩌나' 하는 고민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실제로 작년에, 자신의 생각을 써야 하는 서술형 문제가 출제되었을 때 채점 기준이 어떻냐며 문제제기 한 학생들이 많았고, 이후 교수님들은 항의 전화에 못 이겨 서술형 문제를 출제를 꺼리게 되었다고 한다.


    간호학과에 다닌 지 얼마 되지 않아 서둘러 내린 판단이긴 하지만, 간호학과'유난히' 소속된 곳에서 자신이 다른 색깔을 띨까 봐 무척 걱정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자신이 다른 생각을 하는 것에 있어 스스로에게 의문을 품고 그 사실을 숨긴다. 마치 다수의 사람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노라 '회색 인간'을 자처한다.

    학과 전반적인 분위기가 “회색 인간”을 선호하는 분위기이기에, 요즘의  다른 색깔이 드러날까 봐 스스로 위축다. 나만 다른 색을 추구하거나 조직에서 약간이라도 어긋나는 행동을 하면, “조직에서 물을 흐리는 이기적인 사람”이라며 단톡에 바로 '게시'되는 문화는 생각보다 강하고 소속된 곳에서 탈락될 것이라는 염려를 일으킨다. 그렇기에 섣불리 자신의 의견을 내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 이러한 분위기는 색깔이 짙었던 사람들도 쉽게 동화되고, 회색 사람이 많아질수록 집단의 다양성은 사라진다.


    간호학과에서의 다양성이 저지되는 문화는 현장에서도 치명적일 것이라고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가령 병원에서 신규 간호사가 들어왔는데 전문대를 졸업한 신입이라면 기존에 있던 일반대학 졸업한 간호사들이 은근한 따돌림을 시킨다거나 정신적으로 매번 흔들리게끔 한다. 한 명의 동료로 보는 것이 아닌 조직 내에서 다른 점을 찾아내어 '구분 짓기'를 하는 것이다.

    근래에 유행하는 '다양성 존중하자'는 말을 실천하려면, 실제로 현장에서 다양성이 존중되기 위해 뿌리 깊게 박힌 문화가 뽑힐 수 있도록 서로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관습이 '원래 그렇다'라고 하며 따라가기보다 더 나은 조직문화를 위해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스스로 인식하고 다양성을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들이 모이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조직의 문화가 더욱 발전할 것이고 조금 더 다채로운 현장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간호학과에서 친구들끼리 간호사는 '취업은 잘되지만 조직이 무서운 곳'이라며 미리 걱정하는데, 앞으로의 점차 다채로움이 보장되어 '취업도 잘되고 괜찮은 문화로 변화한 곳'이 되었으면 좋겠다.




* 앞으로 간호학과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연재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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