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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델라 Jul 15. 2019

내가 간호사가 될 때에도 태움 문화가 남아있을까?

-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간호사 “태움” 문화란 ‘영혼이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뜻으로 수습기간 동안 선배 간호사가 신규 간호사를 가르치는 과정에서 괴롭히거나 직장 내 따돌림 등을 함으로써 정신적 고통을 가하는 것을 의미한다. 작년(2018년) 2월 서울 아산병원의 간호사가 태움 문화로 인해 자살을 했고, 이번 년 3월 산재로 인정되면서 태움 문화가 사회 문제로 대두되었다. 그 후 커뮤니티, SNS 등에서 태움을 겪었던 간호사 인터뷰, 시각화된 자료가 공유되면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병원에 간호사로 입사하게 되면 선임 간호사와 신규 간호사가 매칭 되어 교육을 받는다. 환자의 생명과 직결되는 직업이기에 신규 간호사들에게는 엄격한 교육을 한다. 실수를 하게 되면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상황 속에서 오는 스트레스로 인해 작은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다. 이번 6월 고용부가 종합병원 11곳 실태 조사한 것에 의하면 태움 관행이 상당수 확인되었다. 실수를 할 뻔하거나 실수를 하게 되면 모두가 있는 자리(환자, 보호자, 다른 동료까지)에서 곧바로 “너 그러다가 활활 타서 재가 된다”는 등의 말들로 엄포하거나, 면박을 줌으로써 영혼적 상해를 입힌다. 심하면 따로 불러 신체 폭력까지 가하기도 한다. 간호사를 하고 있는 주변 지인들의 말에 의하면, 점심시간 밥을 먹고 있는데 지나가다가 뒤통수를 맞는다거나, 계단 층계에 불려 가 CCTV 사각지대인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곳’의 팔 안쪽 부위의 꼬집힘, 등짝을 구타를 당하는 등의 신체적 폭력까지 이어지는 일도 다반사다.      

    태움은 간호사 1인이 담당하는 환자의 수와도 연관된다. 이번 연도 우연히 기회가 되어, 미국 현장에서 직접 일을 하던 분의 강연에서 ‘간호사 1명 당 환자 4명’으로 정해져 있다고 했다. 반면 한국은 어떨까. 아직 현장을 나가지 않아 확실치 않지만 뉴스에서 금방 찾아볼 수 있는 통계에 의하면 간호사 1명 당 환자 20명 이상이라 한다. 미국에 비해 5배가 넘는 기준이다. 대학병원 신규 간호사 1년 차에 방광염에 걸리는 게 흔한 일인 만큼 화장실 한번 가는 것도 어려운 고강도 노동임에 틀림없다. 워낙에 케어해야 하는 인원이 많기 때문에, 원하지 않아도 환자에게도 안 좋은 영향을 미치기도 하고 그에 대한 스트레스를 자신보다 약한 신규 간호사에게 풀게 된다. 결국 현재 병원에서 자리하고 있는 시스템이 바뀌지 않는다면 이런 태움 문화는 계속 자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의료인 충원이 시급하지만, 태움 문화를 가만히 놔두는 것이 과연 건강한 조직문화일까?     

    태움 문화가 심각한 문제인 만큼 국가적 움직임이 있다. 노동부는 오는 7월 16일부터 직장 내 괴롭힘 금지를 명시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시행된다. 개정 근로기준법 내용 중 ‘직장 내 괴롭힘’을 ‘사용자 또는 근로자가 직장에서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로 정의된다. 고용부에서 공표된 '직장 내 괴롭힘 판단 및 예방·대응 매뉴얼’을 살펴보면 상당수 태움 문화와 유사하다. 이에 사업장은 16일 이전까지 괴롭힘을 예방하고 대응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취업규칙을 개정해야 한다. 그리고 누구든지 태움 발생 사실을 사용자에게 신고할 수 있고 괴롭힘이 확인되면 가해자에게 징계를 내리거나 근무 장소 변경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만약 괴롭힘을 신고한 사람에게 불이익을 줄 경우 사업주에게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이 내려진다.     

    한편 사업장에서는 ‘부당한 업무 지시’나 ‘어떤 경우가 직장 내 따돌림인지’에 대한 인식이 서로 다른데 있다고 지적하며, 사업장에서 ‘괴롭힘을 예방하고 대응 방안을 마련을 위한’ 취업규칙을 개정할 때 세부적인 사항까지 모두 담을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여전히 직장 내 괴롭힘을 개인의 문제로 간주하고 있다는 징표로 보인다.      


    의료계에서 이런 제도로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고용부에서 내려오는 '직장 내 괴롭힘 판단 및 예방·대응 매뉴얼’은 생각보다 자세하다고 판단된다. 그러므로 현재 태움을 당하고 있는 신규 간호사이거나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면 빛과 소금 같은 정책이 아닐까.     


    병원에서 만연하는 태움 문화 사례를 살펴보면, 식사 중 뒤통수를 때리는 등의 인격적 모독이 많다. 성인 대 성인으로써, 전문인으로 일을 한다는 사명감으로 선임-신규 간의 인간적인 매너와 예의만 잘 지켜졌다면 과연 이 정도까지 심각했을까 싶다. 간호학과를 공부하고 있고, 아직 병원 현장에 나가지 않았지만 태움 문화에 대한 소문과 심각성은 교수님이나 선배를 통해 익히 들었기에 잘 안다. 환자의 생명을 돌보는 전문적 역할을 하는 간호사들의 문화 속에서 인격 모독과 인권 유린이 난무하는 태움 문화가 근절되었으면 한다. 영혼적 상해를 입히는 태움 문화가, 신규 간호사들의 부족함을 메울 수 있는 '채움' 문화로 바뀌는 날이 오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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