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인생이 시시하다고 생각하거든. 처음부터 끝까지 불행이 이어지는데, 행복은 아주, 요만큼, 드문드문 있을까 말까. 이렇게 개 같은 인생, 혼자 살아서 뭐 하니. 아무튼 그래서 같이 사는 거야.
-제인
찰리 채플린은 ‘인생은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는 말을 남겼다. 인생은 멀리 크게 보아야 알 수 있다는 말일 수도 있고, 타인의 하이라이트 인생을 자신의 비하인드 인생과 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말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희망적이긴 하다.
배배 꼬인 사람이라 그런가, 나에게는 이 말이 그리 희망적으로 느껴지지는 않는다. 나의 인생을 가장 가까이서 보는 사람은 나 자신이다. 그러니까 나에게 내 인생은 어쩔 수 없이 비극이다. 원하든 원치 않든, 나는 매일 내용이 비슷한 비극들을 보며 시시한 시간을 보낸다.
인생이 매일 시시한 비극으로만 이어진다면, 살아가는 이유가 없다. 한때는 매일 그런 생각을 하기도 했고, 지금은 가끔 그런 생각을 하는데, 이상한 일이라고는 생각 안 한다. 인생이 너무 잘 보이는 걸 나보고 어쩌라고, 초등학생 때부터 시력이 1.6이었는데 어쩌라고.
지금은 시력이 나빠지기도 했고, 너무 잘 보여서 성질이 날 때는 잠깐 눈 감았다 뜨면 된다는 걸 알아서, 아주 큰 비극은 자체적으로 거를 수 있다. 어차피 극장에는 나밖에 없다. 오늘 내 극장에서 상영될 영화가 어떤 제목이고 내용인지 관심 가질 사람은 없다. 만약 누군가 내 인생이 관심이 있다면, 그래서 내 극장에 입장하고 싶다면, 적절한 티켓값을 지불해야 할 것이다. 그런 노력도 없이 내 극장에 함부로 들어오려 한다면, 무단 침입으로 콩밥 먹일 것이다.
그렇다고 내 극장에 매일 비극만 상영되는 것은 아니다. 가끔 티켓을 사고 내 극장의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이 있는데, 적절한 값을 지불한 이들에게 나는 기꺼이 문을 열어 준다. 그리고 대가를 지불한 관객들에게 지루한 비극을 보여줄 수는 없으므로, 보통 때와는 다른 것을 상영한다. 비로소 내 극장에 희극이 상영되고, 나는 다른 관객들과 같이 멀리에서 내 인생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출처: CGV
매일이 비극이었던 소녀, 소현.
소현은 곁에 있던 정호까지 떠나자, 더 이상 자신의 극장에 찾아올 사람은 없고 인생에 희극은 없다는 절망감에 폐업 선언을 하듯 손목을 긋는다. 그때 꿈처럼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고, 문을 열어 보니 모르는 여자가 정호를 찾는다.
잠에서 깨어난 소현은 자신의 손목에 붕대가 감겨 있고, 꿈에서 본 듯한 모르는 여자가 곁에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뉴월드, 이곳에서 소현은 이 여자가 폐업 직전이었던 자신의 극장에 찾아와 티켓을 샀다는 것을 깨닫는다. 비극만이 가득했던 소현의 극장에 희극이 상영된다.
출처: CGV
두 배의 비극을 겪어야 하는 제인.
소현의 눈으로 보는 제인은 아름답다. 언제나 화려한 빛이 그녀를 감싸고 있다. 제인과 함께 할 때, 소현의 극장에서는 늘 희극이 상영되고, 소현은 좋은 것들만 있는 꿈같은 세상에 살 수 있다. 하지만 제인의 눈으로 보는 제인은 그렇게 아름다운 사람이 아니다.
제인은 조경환이 아닌 제인이 되기 위해 약을 먹고, 담배를 피우고, 휘파람을 분다. 음식을 먹지 못하는 것보다 사랑이 떠나가는 것이 더 고통스러운 그녀의 병명은 거식증이 아닌 상사병이다. 그녀는 사랑이 떠나가는 이유를 알고 있다. 제인이 아무리 아니라고 말해도 사람들은 제인을 조경환이라고 믿기 때문에, 조경환에게 달린 물건이 제인에게는 분명 없는데, 사람들은 달려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제인은 태어날 때부터 제인 극장의 주인이었는데, 제인이 살면서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은 제인에게 그건 거짓이고 너는 조경환 극장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제인은 어쩔 수 없이 두 개의 극장에서 주인 노릇을 했고, 두 배의 비극을 보아야 했다. 그렇게 큰 불행을 감당할 수 없었던 그녀는 껍데기뿐인 조경환 극장을 폐업하고 자신의 알맹이가 존재하는 제인 극장만을 남겼다. 화려한 액세서리와 치마, 하이힐로 치장하며 자신이 제인 극장의 주인이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리지만, 사람들은 제인 극장에 찾아와 여전히 조경환을 찾는다. 여전히 제인은 거짓이고 조경환이 진실이라고, 사람들은 본 것만 믿는다. 제인 극장에 찾아와 제인을 찾는 사람들은 소수이다. 제인을 엄마 혹은 아줌마라고 부르는 아이들, 뉴월드에 모인 불쌍한 얼굴들.
출처: CGV 스틸컷
결코 서로의 비극을 이해할 수 없는 우리.
소현은 자신을 버리고 떠난 남자이자 제인이 사랑하는 남자인 정호가 있는 곳을 찾아간다. 하지만 정작 정호의 모습이 보이자, 그녀는 재빨리 그곳을 벗어나 그를 만나지 않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제인에게는 정호가 자신은 잘 살고 있으니 더 이상 귀찮게 굴지 말라고 말했다는 거짓말을 하고, 그냥 잊어버리라고 말한다.
소현이 정호를 찾아간 이유는 그를 만나고 싶었다기보다는 정호를 만나보라는 제인의 부탁을 들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소현은 자신과 함께 해주는 제인의 전화를 무시할 수 없었다. 하지만 막상 그의 모습을 보자, 정호에게 버림받았던 과거의 비극들이 몰려와 그녀를 괴롭힌다. 소현에게 정호는 비극 그 자체이고 잊고 싶은 존재이다. 소현이 제인에게 거짓말을 한 이유는 제인에게도 정호가 그런 존재일 것이라고 생각했거나 그러길 바라는 마음에서였을 것이다.
새끼발가락이 없는 데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소현과 아랫도리에 물건이 있는데 없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제인은 서로의 비극을 말하며 아무렇지 않게 웃는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 기분 안다고, 나도 그런 게 있다고.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면 비극도 희극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서로가 비슷한 비극을 가지고 있을 때에만 가능하다. 구태여 설명하지 않아도 서로의 불행을 알아들을 수 있고, 나의 비극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고 느낄 때만 말이다.
소현은 정호가 자신에게 비극인 것처럼, 제인에게도 비극이라고 생각했다. 샤워를 하다가 쓰러지거나 먹은 것을 다 토해내는 제인을 보면서 소현은 확신한다. 우리 둘 모두 그 쓰레기 같은 남자에게서 버림받은 불쌍한 사람들이라고, 그건 너무 큰 고통이고, 비극이라고. 그래서 소현은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제인에게 그 남자를 잊으라 하는데, 그 말이 더 큰 비극이 되어 제인을 고통스럽게 한다. 둘은 서로의 불행을 알아들을 수 없다. 비극이 희극이 될 수 없다. 그들이 가진 비극은 너무도 다른 것이었기 때문이다. 소현이 알 수 없었던 제인의 비극은 정호가 자신을 조경환으로 보고, 조경환이 정호를 사랑하고 있다고 믿는 것. 사랑하는 사람에게 거부당한 제인은 확인 사살당한 듯한 절망감을 느낀다. 휘파람 소리를 들으면 제인이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정호의 얼굴이 계속 떠오른다. 너는 결코 제인이 될 수 없다고, 너는 조경환이라고, 정신 차리고 네 자리로 돌아가라고 말하는 그 얼굴이.
그렇게 제인은 이미 폐허가 되어 버린 조경환의 극장에 들어선다. 비극만이 가득했고, 가득하고, 가득할 그곳. 살아갈 이유가 없는 조경환은 결국 죽음을 택한다. 죽은 후, 꽃이 가득한 이불을 두르고 땅에 묻힌 제인의 표정은 요람에 누워있는 아기처럼 평온하다. 어쩌면 그녀는 조경환을 죽이고 제인으로 다시 태어났는지도 모른다.
출처: CGV 스틸컷
희극이 계속될 수 없다는 것을, 언젠가는 다시 비극이 돌아온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아이들.
제인이 죽고 난 후, 아이들은 소리 한 번 지르지 않고,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보통 때처럼 김밥을 먹는다. 이런 일이 익숙하다는 듯, 비극으로 돌아가는 그들의 모습에는 어떤 미련도 남아 있지 않다.
소현은 길거리를 떠돌며, 팸을 옮겨 다니며 사람들과 함께 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사람들과 어떻게 하면 함께 할 수 있는지, 그 누구도 소현에게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그녀는 눈치로 그 방법을 터득해간다. 불 꺼진 방 안에서 욕지거리와 함께 자신의 불행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서로의 불행이 시시한 듯 비웃으며 더 큰 건을 말해보라고 소리치는 사람들을 보면서, 소현은 사람들과 같은 비극을 가져야만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을 눈치챈다. 사람들에게 맞고 구박 당하고 누명을 입어도 소현은 아무 말없이 수긍한다. 그들은 자신과 같은 비극을 가진 사람들이니까, 세상에 버림받은 사람만이 세상에 버림받은 나와 함께해줄 수 있으니까, 소현은 그들의 불행을 따른다.
소현에게 손을 내밀었던 지수는 그 사람들과 다르다. 동생과 함께 할 미래를 꿈꾸고, 당당하고, 타인의 불행을 비웃지 않는다. 소현은 그런 지수에게 그건 언니가 나랑 다른 상황이고 몰라서 그러는 거라고 내가 부담스러워서 그러는 거냐고 반문한다. 소현은 생각한다. 지수는 세상에 버림받지 않은 사람이라고, 같은 비극을 가지지 않은 우리는 함께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어떻게 해야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는지.
지수가 죽은 뒤, 소현은 지수인 척 대포에게 전화를 걸어 그를 만난다. 지수의 시신 위치를 묻는 대포의 말에 소현은 끝까지 대답하지 않으려 한다. 말하면 버려질 테니까, 영원히 혼자가 될 테니까. 그녀는 울면서 말한다.
방법을 모르겠어, 어떻게 해야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는지.
결국, 소현은 대포와 함께 지수가 묻힌 야산으로 향한다. 지수의 시신을 꺼내고, 대포는 소현에게 뒤돌아 100초를 세라고 한 뒤 사라진다. 100초가 흐른 뒤, 다시 뒤를 돈 소현의 앞에는 지수의 동생이 서있다. 멀뚱히 서로를 쳐다보던 둘, 지수의 동생은 소현의 손에 마이쮸 하나를 쥐여주고 간다.
소현은 입을 다물거나 거짓말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불행에 따르는 것이 그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모두 떠나갔고, 소현은 결국 혼자가 되었다. 그래서 그녀는 알 수 없게 되었다. 어떻게 해야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는지. 자신은 눈치가 빠르다고 했던 소현은 이제 아무것도 눈치챌 수 없다. 심지어는 자신의 삶조차도.
소현은 그 방법을 지수의 동생이 건넨 사탕을 통해 알게 된다. 그 사탕은 죽은 지수가, 꿈의 제인이 소현에게 내밀었던 손을 떠올리게 한다. 서로의 비극이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것을 내어주었던 사람들. 불행이 아닌 행복을 나누려 했던 사람들. 그것이 고작 사탕 하나라고 할지라도, 나누어 먹고 함께 행복하자고 말했던 사람들이 자신에게도 있었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된다. 그리고 자신은 그런 적이 없었다는 것을, 주머니에 든 초콜릿을 혼자 몰래 먹었다는 것을 또 비로소 알게 된다.
사람들은 비극을 공유할 때, 마음이 통한다고 느낀다. 모든 것을 다 말하지 않아도, 상대방이 나를 이해하고, 내가 상대방을 이해하고 있다고 느낄 때, 우리는 비극이 희극이 되는 순간을 경험한다. 그러나 겉모습이 비슷한 비극이더라도, 그 속 내용은 완전히 다르다. 같은 주제를 다루는 비극이지만 등장인물, 장소, 대사, 소품 등 어느 하나 똑같은 것이 없다. 우리는 모두 각자만의 극장을 가지고 있고, 보통 때는 그 극장에서 홀로 자신을 주인공으로 하는 비극을 본다. 이렇게 자신의 극장에서 매일 상영되는 비극을 굳이 남의 극장에 찾아가 대가를 치르고 보고 싶어 할 사람은 없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극장에 찾아가 티켓을 사는 이유는 나의 비극에서 벗어나 너와 함께 희극을 관람하고 싶어서이다. 함께 하는데 행복하지 않다면, 비극이 더 큰 불행이 된다면, 우리는 혼자 있는 것과 다름없다. 비극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함께 행복을 찾고 희극을 써 내려가는 것이다.
비극이 이어지는 극장에 홀로 앉아 누군가 찾아와 주기만을 바라는 것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방법이 아니다. 먼저 다른 사람의 극장 문을 두드려, 티켓을 사고, 함께 희극을 보아야 한다. 불행을 이해하고 이해받아야 한다는 강박 없이 서로를 마주할 때, 우리는 함께 할 수 있다.
출처: CGV 스틸컷
어쩌다 이렇게 한 번 행복하면 됐죠. 우리 죽지 말고 불행하게 오래오래 살아요.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또 만나요, 불쌍한 얼굴로, 여기 뉴월드에서.
-제인의 대사
존재 자체가 거짓이라, 진실을 말해도 거짓이고 거짓을 말해도 거짓이 되는 삶을 살았던,
진실과 거짓의 경계가 없는 꿈같은 인생을 살았던,
오로지 자신의 믿음만으로 삶을 채울 수 있었던,
자신의 사랑이 거짓으로 보일 것이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으면서,
자신은 사랑받지 못할 것이란 걸 예감하면서도,
끝까지 진심을 다해 사랑을 했던 여자,
제인.
이 세계에서는 혼자 불행해도
'뉴월드', 제인이 제인이 될 수 있고 사랑이 사랑이 될 수 있는 새로운 세계에서 우리 행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