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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송은 Jun 22. 2021

[나의 이십 대 보고서 #10] 부재 시

나 없이도 잘 먹고 잘 살길 바라

“오빠 미안해, 20분 정도 늦을 것 같아.”

“여유로운 주말이잖아.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와요.”

 

지난 목요일이 그와 연인이 된 지 800일이었다. 800일 이전에 친구도 연인도 아닌 어색한 관계였을 때 ‘그와 언제까지라도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순간들이 떠오른다. 우리는 카페에서 오후 2시에 만나기로 했고, 나는 멋 부리다 그만 약속시간에 늦었다. 서두르지 말라 했지만 서둘렀다. 본래 발걸음이 빠르기도 하다. 아니, 조금이라도 빨리 만나고 싶었을 거다. 카페에 들어서자마자 빠른 눈동자로 둘러보니 그가 없다. 2층으로 오르는 계단을 오르면서도 1층을 다시 한번 훑어보았다. 2층에 오르자마자 그가 한눈에 들어온다. 창가에 앉아 바깥 풍경을 구경하느라 내가 온 줄도 모른다. 어쩐지 그 모습이 귀여워서 방해하고 싶지 않아, 그에게 살금살금 다가갔다. 그는 따사로운 햇살을 즐기며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를 아주 맛있게 마셨다. 조각 케이크도 스푼으로 야무지게 떠서 말 그대로 냠냠 먹는다. 압권인 부분은 간간히 햇살 샤워를 만끽하며 행복해하는 표정이다. 그런 시간을 보낼 줄 아는 그가 정말 사랑스러웠다. 그 시간에 끼이고 싶었다. 그래서 끼인 지 800일 째다.

 

카페 목격담은 내가 한 번씩 꺼내 보는 이야기이다. 그는 내가 부재할 때라도 자신만의 시간을 보낼 줄 아는 사람이다. 햇살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고 맛있는 커피와 예쁜 조각 케이크의 기쁨을 아는 사람이다. 분명히 나 없이도 잘 먹고 잘 살 줄 아는 사람이다. 참 건강하다. 그런데 내가 있으면 더 잘 먹고 더 잘 산다. 나도 그렇다. 함께 보내는 시간이 제일 재밌으니까. 그래서 우리는 오래오래 서로의 곁에 있기로 했다. 내일도 그의 시간에 끼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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