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히려 좋아
요즘 구독은 하지않았지만 유튜브 알고리즘에 이끌려 자주 보게된 채널이 하나있습니다. 보통 쇼츠를 내리다보면 이따금씩 나타납니다. 괜찮다싶으면 댓글에 있는 풀영상으로 가기 링크를 누르고 전체 내용을 보죠.
이틀 전, 퇴근 후 저녁 무렵도 비슷한 상황이었습니다. 근무 8시간 동안 온갖 기운이 빼앗겨 침대에 널부러져 ‘아 인나서 뭔갈 해야하는데’ 싶은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힘에 부쳐 유튜브 쇼츠를 내리는 손까락질만 까딱이고 있었죠. 그런데 여김없이 그 유튜브 채널 영상이 나오더라고요. 뜨끔했습니다. 찔리는 마음에 다음 영상으로 넘겨볼까하다가 마지막 양심의 가책에 마저 보게되었어요. 보통 경제적 부를 가지는 데 선행되어야 할 ‘부자의 마인드’를 주로 다루곤 했는데, 이번 영상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항상 이야기의 골자는 같았고, 돈과 삶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있는 동기를 부여하거나 방향성을 제시하는 영상이었죠.
이번 영상은 ‘돈 버는 자판기가 되어라’가 중심 주제였습니다. 굉장히 자극적이죠. 반발심도 들고요. 어렸을 적 아빠가 작은일에도 크게 화내며 역정을 낼 때 하던 말도 생각나고요. 저 또한 ‘아, 그저 많이 벌고, 돈이라는 목표를 향해 열심히 뛰라는 말이겠거니’ 하고 이번엔 좀 식상하다는 생각을 갖고 보았더랬죠. 하지만, 이어 보다보니 영상의 내용은 생각과 조금 달랐습니다.
최저의 투자로 최고의 효율을 낼 수 있는 수단은 사람이기에 ‘나’에게 투자하여 나를 ‘돈버는 자판기’로 만들라는 말이었습니다. 나는 이미 돈을 버는 자판기이기에 혹여 실패하더라도, 일전에 갖춘 지식과 태도로 다시 딛고 일어설 수 있다는 거죠. 즉, 자판기에 돈을 넣으면 당연히 물품을 내뱉듯, 성과를 내는 데 실패하더라도 돈 버는 기계이기에 다시 시도하면 당연이 돈을 벌 수 있다는 뜻입니다.
머리가 띵했습니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렇네요. 자판기라는 기계에 오류가 나면 고치면 될 것이고, 고치면 다시 자판기의 역할에 충실할 테지요. 자판기가 한, 두 번 고장났다고해서 바로 해체하여 다른 기계의 부품으로 쓰지는 않으니까요. 어쩌면 기계의 상징성을 너무 평가절하 해온게 하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실패에도 묵묵히 재기하여 끝끝내 성공한 이에게 돈버는 자판기라 칭한다면 그건 조롱보단 칭찬에 가까울 테니까요.
사회에서는 ‘돈’에 대한 평가가 박합니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풍요로울 수 없으며, 불행만 가져다주는 ‘악’에 가까운 존재로 인식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극단적인 상황에 처하거나, 닿지 못할 까마득한 이상에 좌절을 겪는 이들이 더욱 그럴테지요. 마음에 드는 액수는 아니지만 조금의 ‘돈’으로 나마 보상받는 힘겨운 세상살이는 여간 힘든게 아닙니다. 사회에서 받아오는 고통을 알아주는 이 하나없고, 그로 인해 삶의 연장에 의문이 드는 상황이라면 돈이라는 물질에 ‘악’ 밖에 남지 않게 됩니다. 그리고, 그토록 힘겹게 가져온 ‘돈’에 대한 의미는 어느 것보다 우선시 됩니다. 물질적 풍요는 정신적 풍요를 위한 것인데도, 그 목표를 얻기위한 수단만을 귀중하게 여기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된 거죠.
“내가 돈버는 기계냐.”
본인을 ‘돈벌이 수단’으로만이 아닌 ‘사람’으로 보아 달라는 말이었습니다. 비단 우리집만에서만 들리는 말은 아니었나봅니다. 나홀로 경제활동을하는 외벌이 아버지에게 자녀가 무심히 대하면, 그에 대한 비난의 말로 자주 쓰였죠. 미디어에서도 이따금씩 보이고, 주위 사람들 사이의 한 차례 자조섞인 대화 주제가 되기도 합니다. 아, 아니면 본인의 노고를 이루말할 표현방식을 깨닫지 못해 미디어에서 본 표현을 그대로 사용한 것일까요? 가장들이 가족에게 쏟아낸 그 말은 과연 최선의 감정 표현이었을까요. 본인의 아픔에 취해 가족을 할퀴고, 이제 나만 아픈게 아니니 조금 낫다는 만족감에 돌아서는 수 많은 외벌이 부모가 밉고, 한편으로는 가엽습니다.
그들은 알까요? 그들이 마침내 돈버는 기계가 되기 전, 이미 무수히 많은 기계들이었다는 걸. 제게 아빠는 때리는 기계, 비난하는 기계, 못마땅해 하는 기계, 엄마가 차린 음식에 한마디 칭찬도 어떠한 대화도 없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5분만에 밥먹는 기계, 평소엔 자녀 학업에 관심도 없다가 성적표만 가져오면 엄마와 자녀를 꾸짓는 기계, 걸핏하면 돈값하라고 말하는 기계, 괜히 낳았다고 잘못된 운명을 비관하는 기계, 채찍질만이 답이라는 매몰된 가치관으로 자녀의 성장보단 부족함이 먼저보이는 기계, 새벽밤 갓난쟁이 동생이 우는 소리에 단 한번을 나가볼 생각을 안하던 기계, 높은 점수의 학업과 본인이 원하는 길을 택하지 않으면 인생의 망조를 논하는 기계.
이미 수 많은 기계였으며, 스스로 기계가 되기를 기도한 그들이 돈버는 기계임을 부정하는게 우습습니다. 가족을 ‘사람’이 아닌 말 잘 듣고, 높은 성취를 가져오는 ‘기계’로 본 그들은 모순된 사고를 가졌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들이 그토록 원하던 성량 좋은 기계는 집에 없었습니다. 자판기에게 정수기의 역할을 바란 그들은 당연하게도 실망이 컸으며, 그토록 힘겹게 벌어온 ‘돈’을 무가치하게 써버리는 이들을 증오했습니다. 악으로 깡으로 벌어온 가장 소중한 가치를 가족이란 존재가 무참히 짓밟아오니 심히 절망스러웠을 겁니다.
그래서 ‘돈 버는 기계’란 단어에 반감이 있었나 봅니다. 그들이 말하는 기계에 대한 의미를 잘 알기에 좋은 마음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 같아요. 우연이 뜬 영상을 보고 생각을 다시해보았습니다. ‘기계’란 게 지칠줄 모르고 실패에도 다시 설 수 있는 존재라면 그 뜻이 사뭇 다르네요.
더욱이 요즘시대에는 기계에도 종류가 많습니다. 자신을 표현하는 단어로 ‘스마트폰’을 일컫는다면, 어느누가 목적없이 반복 행동만 하는 사람이라고 받아들일까요. 기계말고 다른 물건으로 대응하여 상징한다면, 만능키 정도의 역할을 하는 스마트폰은 기계이지만 다양한 분야에 있어서 효용을 줍니다. 따라서, 다채로운 삶을 살며 다방면에 역량이 있는 사람쯤으로 받아들여질 겁니다.
여름 밤, 아직 쨍한 푸른색 하늘이 보이는 저녁 7시 즈음. 영상을 다 보고, 침대에 그대로 누워 곰곰이 생각을 하던 저는 곧바로 몸을 일으켜 세워 카페로 향했습니다. 속으로 “일어나는 기계!”, “카페가는 기계!” 하면서요.
다음 날 아침 출근길에서도 돈버는 기계가 되기로 다짐하니 골치아프기만 했던 반복 업무가 괴롭지 않은 마법이 일어났습니다.
꼴이 우습지만 꽤 효과가 있었습니다. 이틀 밖에 되지 않았지만 걸핏하면 ‘OO하는 기계!’ 속으로 외치면서 기계가 되기로 기도했습니다. 인간미 있게 넘어가며 미루려던 일도 왠지모르게 기꺼이하게 되는 기적을 맛보았습니다. 혼자 그런 말을 했다는 걸 남에게 말하기에는 굉장히 창피해서 대놓고 추천하기는 어렵지만요.
인간이 아닌 기계가 되기로 결심하니 오히려 삶이 풍요로워졌달까요. 이젠 온갖 좋은 기계가 되었으면 합니다. 오늘만이 아니라, 앞으로 만들어갈 가정에 있어서도 말로 일컫기도 어려운 다양한 일들을 기계처럼 해내는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기계에 문제가 있다면 고치거나 잠시 쉬면서요. 고장난 기계를 다른 기계로 대체할 수도 있고요. 물론, 고장난 부품을 모른채하고 품고가다 ‘펑’하고 터져, 모두에게 해를 입힐 수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지 않으면서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