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업시간에 침묵은 좋지 않아요.
딸아이를 해외에서 학교에 보내면서 처음에는 낯선 환경에 아이가 잘 적응할지를 걱정했다. 그러다 별 문제 없어 보이니 아이의 학교 성적에 온 신경을 쓰게 되었다. 대학입시가 코 앞인 고등학생을 둔 한국 엄마의 모습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한국에 있었다면 아이의 학교 성적표, 학원 성적, 그리고 주변 친구들과 비교하면서 아이의 학업 성취 수준을 헤어리고 어느 대학에 갈 수 있을지를 어림해보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도무지 아이의 학업성취도가 어느 수준인지, 어느 정도의 대학에 갈 수 있을지 전혀 가늠하기 어렵다. 그것은 한국과 평가방식도 다르고 상대평가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여기 국제학교 성적으로 한국대학을 지원한다면 교육과정이 다르니 더더욱 어느 수준의 대학을 지원가능한지 알기 어렵다.
한국에서는 아이들이 직선도로 위에 서서 위로 향해 가던지 아니면 아래로 뒤쳐져 가던지 두 방향만 있다면 여기는 사방으로 길이 나 있어서 어느 방향이던 자기가 원하는 방향을 찾아서 갈 수 있다. 선택할 수 있는 길이 많아서 한편으론 좋으나, 반대로 생각하면 막막하기 이를 데 없다. 선택의 길이 열려있다는 건 두가지 측면에서이다. 첫째는 부모의 재정적인 지원이 된다면 해외에 많은 대학이 지원가능한 대학 범주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둘째는 성적이 상대평가가 아니고 아이들이 공부하는 과목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아이의 성적이 어느 수준인지 주변친구들과 비교되지 않는다. 그래서 자신만의 기준으로 소신껏 자기가 원하는 길을 찾아 갈 수 있다. (물론 점수로 서로 비교가 되나 점수가 대입결과를 예측하지 않는다)
암튼 어디로 대학을 가던 한국 엄마로서 아이의 성적은 신경을 곤두세워 보게 된다. 한국에서와 다른 성적표에 작은 코멘트 하나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점수를 어느 수준으로 봐야 하는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고민하게 된다.
근데 딸애를 학교에 보내고 받아본 낯선 리포트는 학습태도에 관한 것이였다. 10학년, 한국으로 치면 고등학교 1학년에 들어와서 처음 보는 건, 이름하여 Apptroaches to learning report 일종의 학습태도에 관한 보고서이다. 세가지 항목으로 구분되어 있다. 자기관리self management, 협력 collaboration, 소통communcation이다. 각 항목이 strong, clear, some, concern 이렇게 네가지로 평가된다. 물론 strong이 가장 좋고 잘하고 있다는 것이고 concern은 그야말로 많이 노력이 필요한 상태이다. strong이 아니면 부족한 부분에 대한 코멘트가 달려나온다. 처음 받아보는 보고서를 남편과 나는 심각하게 볼수 밖에 없었다. 자기 관리는 strong하나 협력과 소통에 있어서 clear, some이 있었으니 말이다. 딸아이의 성격으로 봤을때 당연한 결과이다. 수업 시간에 토론, 질문을 잘해야 소통이 강한 것으로 평가되고, 그룹으로 혹은 반 전체로 의견을 나눌때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협력을 잘하는 것으로 평가되니 말이다.
솔직히 딸아이의 성격은 친구관계에서 협력적이고 소통을 잘하는 아이이다. 자기 주장이 강하지 않고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편이다. 그러나 교실에서 수업시간에 협력과 소통은 다른 문제이다.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 하고, 토론에 참여해야 한다.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을 전체를 향해 이야기 하고, 모르는 것이 있으면 질문해야 한다. 이게 소통과 협력이다. 이건 쉽지 않은 일이다. 한국학생들이 가장 잘 못하는 부분이라고 흔히를 말하는 부분이다. 한국문화 자체가 수업시간에 적극적으로 질문하고 토론하는것이 익숙하지 않을 뿐더러, 내향적인 아이들일수록 질문을 먼저 하기 보다는 스스로 생각을 정리하는 것을 우선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딸애의 보고서 코멘트에는 Express ideas verbally라는 문구가 반복적으로 달려있다. 수업시간에 자기 생각을 많이 이야기 하라는 것이다. 남편과 나는 이 보고서를 보고 누차 잔소리를 한다. 한국에서와 달리 여기 선생님들은 말로 표현하지 않으면 열심히 수업에 참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딸애가 누구보다도 수업시간에 열심히 집중해서 공부할거라는 걸 안다. 오히려 선생님 말씀, 친구들의 이야기를 하나도 놓치지 않고 누구보다 집중해서 듣고 있을 것이다.(다른 이야기지만 딸아이는 뭐든지 '듣는 즐거움'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음악 뿐 아니라 누군가의 이야기, 잡담, 다양한 소리까지도.... 청각적 즐거움을 즐긴다) 그래서 수업시간 선생님 이야기 따라가기도 바쁠 것이다. 게다가 영어로 이뤄지는 수업이니 더더욱 듣기도 바쁠 것이다. 내향적인 딸아이의 성격을 외향적으로 바꿀 수도 없고, 수업시간에 손들고 질문하고 내 생각을 많이 이야기 하는것, 그것도 한국말도 아니고 영어로. 나였어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1년 정도 지나게 되면 선생님들도 딸애가 표현이 적은 건 아이의 성향이라고 인정해주시며 별 문제 없다고 말하시기도 한다. 심지어 담임선생님은 딸애가 다른 아이들 이야기에 집중하고, 밝게 웃거나 하는 표정변화를 통해서 그룹에 참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참 좋으신 선생님이다. 이렇게 까지 이해해주시다니...
싱가포르에 있는 국제학교가 다양한 인종의 학생들이 다니고 선생님들이 동양문화에 대한 이해가 어느 정도 되어 있으시기 때문에 학생들에 대한 이해가 넓으신 편이다. 그럼에도 백인 선생님들은 수업시간에 적극적으로 말로 이야기 하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한다.
수동적으로 지식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지식의 생산자가 되려면 적극적으로 질문하고 생각을 정리해서 말로 표현해야 하는게 맞긴하다. 말로 표현해야 자기 생각의 한계를 알게 되기도 한다. 한해 두해가 지나며 딸아이의 수업태도가 얼마나 외향적으로 바뀌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말로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 같기는 하다. 앞으로의 세상이 단순히 지식을 저장하는 교육이 중요한게 아니라 지식을 생산하는 주체가 되려면 더욱 더 그러하다. IB교육의 장점 중 하나는 수업시간에 아이디어를 나누고 줄곧 보고서를 쓰면서 자신의 생각을 발전시키고 정리하게끔 하는데 있다. 고등학교 3년 교육으로, 특히 IB교육을 받으면서 주도적인 공부방법을 알게 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