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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구 Jul 20. 2022

이건 정말 후져도 너무 후진 이야기.

나의 해방 일지를 보고.




다른 사람들이, 특히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무언가에 대해서 안 좋은 의견을 내는 것은 많은 경우 별로 좋지 않은 생각이지만, 어마어마했다던 인기가 어느 정도 지나간 것도 같고 한 마디 안 하고 넘어가기엔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기도 해서, 조금만, 온화한 수준으로 적어보기로 했다.


… 정말이지 이건 뭐 후져도 너무 후져서.




90년대 후기-2000년대 초반 싸이월드 감성으로, 그 시기의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을, 한국을 배경으로, 조폭을 주인공으로 하여, 90년대 홍콩영화 분위기와 카메라를 섞어서 만들면 딱 이 정도 드라마가 나오겠다 싶다. 그 시기쯤 나왔던 영화들, 예를 들어 친구, 파이란, 나쁜 남자 같은 영화들과 그리 멀지 않은 세계관을 공유한달까.


특히 남성과 여성을 구분하는 문제에 있어, 이 드라마는 놀라울 정도로 일관되게 차별적이다. ‘해방’이라는 이상 (아니면 꿈, 혹은 제목 그대로, 해방) 또한, 철저한 이분법을 통해서만 이루어지고, 가능해진다.




우선 남자 주인공들. 기본적으로 이 드라마에서 남자들은, 자신의 꿈과 이상을 찾을 열정과 능력이 있고, 그 길을 따름으로서 더 나아지고, 궁극적으로는 ‘해방’으로의 길을 간다. 구씨도, 창희도, 미정의 아버지도, 본인들이 하는 일에 있어 늘 책임을 가지고 있고 성실하게 수행한다. 물론 그에 따른 보상은 “현실적”이게도 이런저런 차등이 있지만, 그것은 잘못된 세상의 결과일 뿐, 해당 인물들에 대한 시선은 결코 나쁘지 않다.


다른 한편, 여자 주인공들은, 남자에게 선택받고 남자를 사랑하고, 혹은 어머니가 됨으로써만  ‘해방’의 가능성을 얻게 된다. 이분법적인 시선이라고 말하기 민망할 정도로 이분법적이다.


이러한 구도 속에서, 이야기는 남자 주인공들이 여자를 얻거나, 혹은 고민 끝에 거절하는 책임감 있는 사람으로 성장해가는 것을 그린다. 틀림없이 미정이 주인공으로 내세워졌음에도, 그녀의 시선을 세심하게 따라감에도. 이건 뭐 예전 무협지 수준. 물론 “여자를 얻는다”는 표현, 어마어마하게 한심한 표현이기는 한데, 드라마에서의 밑도 끝도 없음이 딱 그 수준이다.




창희는, 관리하는 지점장들을 성심껏 챙겨주는 사람, 여자 주인공의 어머니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신 후, 아버지의 식사를 챙겨주고 함께 식사를 한 사람, 여성 친구의 전 남자 친구를 돌봐주다가 임종까지 지켜준 사람 (자신의 사업을 포기하면서까지!!), 여성 친구와의 연인 관계가 잘못되어가고 있다고 이성적으로 판단해서 이별을 고하는 사람, 그리고 그 끝에서 자신의 소명을 발견하는 사람이다 (아, 물론 기정도 아버지를 이래저래 챙기고 있다고 이야기는 하는데, 그러한 “장면”이 직접 나오는 건 창희다).


미정의 어머니는 그렇게 갑자기 보내버린 다음에, 아버지는 갑자기 재혼을 하고. 드라마에서 짧게 그려진 아버지의 재혼 상대는 그저 식사를 챙겨주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그런 사람 정도이다. 과연 혼자 남은 사람이 어머니였어도 드라마에서 그렇게 재혼을 시켜줬을까.


구씨는, 조폭. 완전 쎄고 목공일도 잘하고 (목공일은 왜 잘하는 걸까…?). 무엇보다, 그렇게 칼부림을 하는 사람이지만 내 여자에게만은 따뜻한 도시 깡패 (…풉; 맙소사 지금은 2022년이다. 그런데 이게 아직 통한다). 사실 너무 터무니없는 캐릭터인데 그렇게 인기를 얻었다는 게 정말이지 믿기 어렵다.


구씨가, “나도 내가 어떻게 망가져 있을지 모르겠는데… 난 사람이 너무 싫어… 내가 갑자기 욱해서 너한테 어떤 모습을 보일지, 어떤 행동을 할지, 어떤 말을 할지… 내가 완전 개, 개개개개새끼가 되어도, 나 너 진짜 좋아했다.” 이 이야기할 때 환장하는 줄 알았다.


이건 뭐 완전 대놓고 폭력을 예고하는데, 그 와중에 미정은, “너 진짜 좋아했다”는 말에, “감사합니다”라고 대답을 한다. 나중에 기분 나쁘면 너한테 욕하고 줘 패고 죽이고 뭐할지 모르겠다는데, 그저 “좋아했다”는 말이 좋아서 “녹음하고 싶다”라고 한다. 허허허. 이건 진짜 완전 대환장 파티다. 김기덕의 나쁜 남자보다 더 저질이고 제정신이 아닌 수준의 대환장 판타지. 하긴, 애당초 구씨가 갑자기 사라지고 연락도 받지 않고 꽤나 긴 시간이 흐른 다음에 갑자기 연락했을 때도 꺄르릇하며 채비해서 뛰어나갈 정도의 강아지 모드였으니, 그 드라마의 세계관에서는 놀라운 것이 아닐지도. 아니 그래도 그렇지, 이건 뭐 주인만 바라보는 울트라 슈퍼 골든 리트리버야 뭐야.




사실, 이 드라마에서 남자 캐릭터들이 “여자를 얻는”데 있어 그들의 실력이나 성격이나 그런 것은 딱히 중요하지도 않다. 미정이 기존에 다니던 카드 회사의 디자인 팀장, 맙소사 그 성격에 그 실력에 그 능력에. 어떻게 팀장이 되었는지는 몰라도 이건 뭐 완전 쓰x기 직장 상사 역할인데, 그런 인간조차 결혼도 했고 사무실의 예쁘고 젊은 부하 직원과 불륜도 한다.


그 와중에, 나중에 다 들통이 난 다음에도, 부인도, 불륜을 한 직원도, 그 인간 편을 들어줘, 세상에. 이 드라마의 작가가 그 유명한 “나의 아저씨” 작가라고 한다. 저 쓰x기 팀장과 부하 직원과의 관계도 인간대 인간으로 서로의 외로움을 보듬어주는 아름다운 관계라고 이야기하고 싶은 걸까. 허허허.


그러고 나서 슬그머니, 미정과 팀장의 싸움을 미정과 “팀장의 불륜녀”의 다툼으로 전환을 시킴으로써,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거지 같은 테마를 살짝 끼워 넣는다.


사실 이 “여자의 적은 여자” 테마는, 기정과 태훈/유림의 적대 구도를 기정과 경선의 구도로 바꾼 지점에서도, 기정과 그녀의 동료와의 다툼도, 현아와 현아의 전남친의 (못된 것으로 그려지는) 어머니와의 싸움을 보여주는 지점에서도. 반면, 남자들끼리는, 조폭 싸움을 빼고 나면, 딱히 싸우지 않는다. 남자들끼리는 서로 존중하고 존경하며, 그들은 여자들에게 조언자가 되어준다.


(그건 그렇고, 디자인팀 사원들은 여자가 그렇게 많은데 왜 팀장은 남자이고, 행복센터에서 일하시는 분은 왜 여자여야 했을까)




분명 드라마의 핵심 주인공이 미정인 것 같음에도 불구하고, 미정 본인을 비롯하여 전체적인 구조가 이러하다 보니, 남자 인물들의 주변인으로서가 아닌, 여자 인물들 본인들에 대해서는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지 않다.


사내 디자인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았음에도 밀려나고, 그냥 그렇게 거기에서 만족하는 미정 (똑같이 염세주의의 끝이라고 해도 구씨는 경쟁자 다 이겨먹고 돈도 많이 벌었다), 내가 사랑을 어떻게 하는지 모르고 평생 잘못된 삶을 살았다며 반성하고 구애하는 기정, 자유로운 척 하지만 알고 보면 애정결핍에, 투병하는 전남친 끝까지 지켜주겠다고 큰소리치지만 결국 도망가는 현아, 조카가 없는 삶은 의미가 없으니 난 조카만 바라보고 살겠다는 희선…


아니 이건 정말로 너무하지 않는가.




작가는 이게 우리의 삶이고 일상이라고 할지 모르겠다. 해방은 다양한 방식으로 오는, 또 찾는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변하지 않는 세상 속에서 의미를 찾아가는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 할지 모르겠다.


그런데 왜, 남자 캐릭터들이 추구하고 바라고 얻는 것과 여자 캐릭터들의 그것들과는 이렇게 달라야만 했을까? 왜 그지 같은 남자 캐릭터들조차 돈도 직업도 “여자도” 얻는데, 여자 캐릭터들은 남자 바라기로 그려야만 했을까.


물론, 어떤 작품을 감상하는 데는 여러 관점이 존재하고, 지금 나처럼 하나의 관점에서 마구 까대는건 조금은 가혹하게 보일지도, 혹은 그저 좁은 소견으로 치부될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남녀의 이분법이라는 관점에서만 보아도 이 "나의 해방 일지"보다 훨씬 메롱한 작품, 발에 채이고 또 채일 것이 분명하고.


글과 드라마는 현실을 반영하기만 할까? 인기 좋은 작가가 쓴 드라마는 현실을 만드는데도 충분히 기여하지 않을까? 과연 그 드라마를 쓰고 만든 사람들이, 나보다 훨씬 많이 알고 많이 생각했을 그 사람들이, 그 정도도 몰랐을까?


그래도, 정말... 그런 글을 쓰면서, 그렇게 진지하게 폼잡고 풀어낸 그 이야기. 정말... 그렇게 해방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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