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SANUR_day10
처음 해외로 여행을 간 건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친구들 중에서도 빠른 편이었다. 용감하게도 나는 일본에서 유학 중인 친구와 도쿄에서 만나 여행하기로 했다. 우리는 ‘우에노 공원’ 역 0번 출구 앞에서 만나기로 하고 친구는 도쿄 근방에서, 나는 한국에서 출발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무모하기 짝이 없는 계획이었는데 용케도 엇갈리거나 놓치는 일 없이 단번에 우에노 역에서 서로를 찾았다.(마치 홍대 앞 1번 출구에서 보자!라고 약속하고 떠나온 미국인 마냥)
그 이후부터 여행, 그것도 해외여행에 완전히 빠져 버렸다. 일본에 다시 가서 10일 머물다 온 적도 있고, 홍콩, 호주, 인도네시아(폰티아낙), 태국(깐차나부리, 후웨이난, 난, 방콕), 방콕은 너무 좋아서 친구랑 다시 갔다가 혼자서 또다시 6박 7일을 묵었고, 중국, 괌 두 번, 베트남(다낭), 그리고 이번에 발리까지.
지금에야 해외여행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졌지만 그 당시만 해도 해외여행 다니는 친구들도 많지 않았고 심지어 혼자 가는 건 더욱 드문 일이라 주변에서 나를 신기해했다.
내가 해외여행에 두려움 없이 도전했던 건 어려서부터 가져온 타국에 대한 동경 때문이었다. 어릴 때 텔레비전에서 방영했던 E.R. 과 엘리멕빌, 길모어걸즈 같은 드라마를 보며 외국에 나가 영어를 쓰는 나를 상상해 보았다. 아마도 이런 경험 때문에 별다른 거부감 없이 외국에 나가 외국인들과 스스럼없이 대화할 수 있는 것 같다.
영어야 잘하는 사람들 워낙 많지만, 나의 무기는 뻔뻔함이다. 그리고 워낙에 시트콤을 많이 봐서 익숙한 제스처와 슬랭을 섞어 주면 감쪽같다(고 생각한다).
가끔 영어가 튀어나오지 않을 땐 잠시 여유를 두고 얘기한다. 겁먹거나 위축되지 않는 성격이 언어에는 큰 도움이 된다. 빼박 내향형인데, 나는 이런 거엔 두려움이 거의 없다. 모르면 배우면 되지! 마인드랄까.
여행이 좋은 건 제삼자가 되어 치열한 삶의 일상을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일 거다. 나도 한국에선, 내가 사는 서울에선 별 수 없이 치열한 삶(또는 세렝게티와 같은 직장)에서 고군분투하는 1인이지만 여행 중에는 그저 목격자로서 존재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구경꾼이 되는 것이다. 가끔은 이런 현실을 구경하거나 누리는 입장이 되는 게 불편할 때가 있다.
개발도상국을 여행할 때가 유독 그렇다. 발리에서도 시내를 조금만 벗어나면 골목 구석구석 열악한 환경과 치열한 생존의 현장을 보게 된다. 나는 우연히 잘 사는 대한민국에서 태어났고 저들도 우연히 이곳에서 태어났는데 내가 당연하게 이걸 누려도 되는 걸까.
내가 모두를 구원할 수는 없으니 그저 길에서 만나는 누구든 그 삶을 귀하게 여기고 미소를 건넬 뿐이다. 이 수많은 길거리의 축복의 기도처럼 그들의 소원이 이뤄지길.
숙소는 1박에 4만 원이 채 안 되는 가격으로, 시내나 해변과도 10분~15분 이내의 거리라 가성비 숙소로 선택했다. 그러나 밤마다 정말 괴로울 수준으로 방음이 안 된다. 우붓에서 숙소가 대부분 만족스러웠어서 그런지 더더욱 아쉬운 컨디션.
숙소가 아쉬운 거지 사누르는 여행을 마무리하기 좋은 곳이다. 조용하고 여유 있는 거리, 어딜 가나 북적거리는 곳이 없다. 되려 안다즈나 하얏트 리젠시 앞이 북적거리지 시내 분위기는 우붓과는 정말 다르다.
내일은 비행기 시간까지 짱구에 있기로 했다. 남부투어를 할까 라 브리사에 갈까 어젯밤까지 고민하다가 오늘 아침에 결정. 가성비 숙소를 예약해 짐을 두고, 짱구 좀 구경하다가 일몰보고 공항으로 출발할 예정이다. 그렇다면 더더욱 오늘이 사누르의 마지막 날.
바다를 좀 더 봐야겠다.
평소에는 계획이 어긋나거나 취소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데다가 낯선 곳에 대한 반사적인 경계심이 튀어 올라 경직된 상태로 사는 편이다. 긴장을 이완시켜 주는 운동이라는 요가를 하고 명상을 해 봐도 기질이 그런 건지 쉽게 바뀌질 않는다.
그래서 더더욱 여행에서는 많은 가능성을 열어두고 지내려 한다. 돌발 상황이 생겨도 잘 놀라지 않고, A가 아님 B로 하면 되지, 하고 쉽게 마음을 돌린다. 여기선 누구도 나를 모르고, 기억하지 않을 것이며, 아마도 스쳐간 관광객 중 하나일 뿐이므로 가능한 태도일 것이다. 뭐 어때, 어차피 잊혀질 거.
인생을 여행자처럼 살아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아마도 이런 마음가짐이 아닐까. 언제 떠나든, 무엇을 하든 다른 사람들보다는 내가 원하는 것에 주목하는 것. 낯선 곳에서도 빠르게 적응하고 아님 말고, 태도를 가지는 것. 삶에 지나치게 진지한 건 별로 좋은 게 아니다. 삶은 가벼워야 하는 것.
안 됐어? 그럼 다시 하지 뭐. 내가 싫대? 그럼 말지 뭐. 불합격이래? 그럼 다른 데 가지 뭐. 모두 탈락이야? 그럼 다른 방법을 찾아야지 뭐.
가볍게 사는 게 누구보다 안 되는 애가 이런 말 하자니 웃기지만 이렇게 깨달아가고 있으니 하나씩 나아가지 않겠는가.
관계도 마찬가지다. 나는 몇 년 전 20년 지기와 한번, 10년 지기와 한번 총 두 명의 오래된 친구와 관계를 종료(?) 중단(?) 단절(?) 한 일이 있다.
둘 다 내입장에선 황당하기 짝이 없는 적반하장의 이유였는데 그들 입장에선 자신들의 실수를 이해해주지 않는 내가 야속했을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정의와 남이 생각하는 정의가 다를 때 충돌이 일어난다. 우린 어릴 때 만나, 서로 신념이나 주관이랄 게 없던 시절 친구로 지내다가, 어른이 되어 서로의 다름을 받아들이고 떠나보냈다.
그 사건은 꽤나 나에게 충격이었고, 왜 방귀낀 사람이 성을 내는지, 사과는 왜 안 하고 토끼는지, 원래 저렇게 꼬인 애였나, 등등 오래 지냈다고 친구가 아니고 짧게 만났다고 친구가 못될 것도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시절 인연이란다. 지금 현재 나와 가까운 사람을 친구로 여기고 소중히 여기며 지내는 것이다. 그러다 서로 멀어지면 또 가볍게 떠나보내는 것이다. 인연이든 삶이든, 너무 무겁게 받아들이는 건 여러모로 좋지 않다. 일, 사람, 사건, 환경 그게 무엇이든 떠나갈 것이라면 깃털처럼 가볍게 떠나보내리라. 그러려면 나는 바닥에 단단히 뿌리내리고 서 있어야겠지. 홀로 여행할 때마다 그런 생각을 한다. 나는 나와 참 잘 지낼 수 있게 되었구나. 이 만족감. 행복. 꼭 누구와 함께하지 않아도 괜찮다. 아니 오히려 좋다.
스스로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밀어내던 때도 있었는데 지금 나는 누구보다 나를 사랑한다.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을 채워주는 기쁨을 누린다. 특히 여행지에서 더 그렇다. 나는 제법 건강하게 잘 살고 있다. 이 여행이 그런것처럼 삶도 빠르다. 정말. 하루하루 소중하게 보내야지. 이들에겐 일상인 이 풍경이 소중한 것처럼 내 일상도 그렇게.
어젯밤 점찍어둔 카페는 어제 다닌 곳과 정반대로 올라가니 나왔다. 아무리 봐도 고젝보다는 걸어 다니는 편이 나에게는 낫다. 이렇게 동네를 구석구석 다닐 수 있으니 말이다. 구글맵 만세고요.
크루아상이 맛있다고 해서 주문했는데 빵은 한국이 젤 잘해요. 한국에서 웬만한 건 다 수준급이니 눈이며 입맛이며 수준이 높아져서 이 정도로 훌륭하다는 말은 안 나온다. 새삼 우리나라 사람들 다 잘해.
크루아상까지 먹어서 소화도 좀 시킬 겸 점심 먹으러 걸어서 가기로 했다. 30분 정도만 걸으면 되니까..(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이러다 땀으로 온몸이 다 젖겠다 싶을 때쯤 보인 한식당 비빔밥. 보이긴 보이는데 4차선 도로의 건너편에 보인다.
??? 여길 건너라고요? 신호등 어떻게 보는 건데요..
일단 맥도널드 앞에 횡단보도가 있어서 앞에 섰다. 내 다리가 호달달달 개다리춤을 추고 있는 게 보이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긴장하며 있는데 빨간불로 신호등이 바뀌었다. 그런데 우회전 차량이며 오토바이가 파도같이 몰려드는 통에 나는 언제 건너요..?
겨우 반절 건너고 쭈글 대며 있었더니 바이크를 탄 멋있게 생긴(착시 현상 아님) 외국인이 지금 건너라고 손짓을 해 준다. 우다다다다 건너고 엄지 척! 해 주니 그도 웃으며 엄지 척!으로 화답한다. 여행지에서 이런 귀여운 배려와 에피소드 너무 좋다 정말. 당신의 배려 덕분에 내 여행은 한층 귀여워졌어요! 더불어 잘생긴 얼굴도 고맙고요.
우붓에서 한 번 밖에 못 먹어서 아쉬웠던 chatime이 마침 3분 거리라 투고 해서 해변가로 걸어나가기로 했다. 다시 무시무시한 4차선 도로를 건너야 하는데.
어쨌든 집에는 가야 하니(?) 아까 왔던 경로로 한번 더 도전해 보기로 했다. 정말 살떨리는 길건너기 무슨 일이야. 이렇게 무슨 대단한 미션하듯 길을 건너야겠냐고요.. 살려니 솟아난 눈치로 무사히 길을 건너 chatime에서 버블티까지 포장해서 바닷가를 걷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내가 걷기로 하면 시간이 느리게 가기로 작정하는 모양이다. 분명 23분 도착이었는데 왜 때문에 아직도 11분이 남았죠? 거기다 중간에 개들의 패싸움 현장을 목격하면서 더더욱 살떨리는 귀갓길이 되었다. 왜 화가난 건지 한놈이 끝도 없이 짖는다 주변에서 상인들이 진정시켜도 소용이 없다. 그럼 내가 피해야지 뭐. 난 광견병 주사도 맞지 않았는 걸.(참고로 개는 나를 보고 짖은게 아니라 상대편(?) 개를 향해 짖은 것임.)
그렇게 끝도 없이 걷다 보니 마침내 나온 tree bar(maya resort 내 라운지 바, 해변을 끼고 있어 예쁘다) 앞 파라솔 옆 그늘 아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다시 멍타임. 발리 사누르의 바닷가에 앉아서 버블티 마시는 삶이라니 성공한 삶이다.
고작(?) 이정도만 가지고도 성공했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살 자격이 있다. 작은 것에 크게 기뻐하는 것이야 말로 인생을 충만하게 누리는 비법 아닐까. 여행도 그렇다. 사실 심드렁하려면 얼마든지 심드렁할 수 있는 뻔한 바다, 뻔한 음식, 뻔한 풍경도 뻔하게 생각하지 않고 기쁘게 누릴 줄 아는 것.
영혼없는 흐리멍텅한 눈빛이 아니라 호기심 넘치게 반짝거리는 두 눈으로 낯선 곳을 탐험하려는 마음. 여행이란, 어쩌면 인생까지 포함해서, 날마다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관찰하고 누리고 즐기는 태도에서 질이 달라지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내가 경험한 것이 전부라고 여기지 않길. 세상은 여전히 새롭고 놀라운 일들로 가득찬 곳임을 기억하고 호기심을 잃지 않길.
그것이 여행이 내게 주는 여행같은 인생을 사는 방법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