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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수현 Jan 27. 2021

영원한 반복

선형 서사를 반복적 구조로 만들기 

작년 코로나 때문에 그림책 원화 전시가 전면 온라인 전시로 대체되면서, 원화를 이용한 인터랙티브 아트의 비중이 높아졌다. 온라인 전시를 기획하며 그림책을 디지털 콘텐츠인 인터랙티브 아트로 변환하면서 들었던 생각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1. 그림책은, 당연하게도 시간적 서사에 의해 진행된다. 서사가 언어로 나오지 않는 경우, 그러니까 이미지만 나열되는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글이 있건 없건, 결론이 있건 없건, 그림책에선 시간적 흐름과 연속성이 중요하다. 이는 그림책이 꼭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장르라서만은 아니고, 책이라는 매체적 특성 때문이기도 하다. 첫 번째 장 뒤에는 두 번째 장이, 두 번째 장 앞에는 첫 번째 장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다. 창작자는 독자가 어떤 페이지를 볼 때, 어떤 맥락 위에서, 어떤 흐름 속에서 만난다는 것을 명확히 인지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구조를 생각하고, 순서를 조정한다.

(여기서 벗어난 그림책이 아예 없지는 않다. 아트북이나 팝업북 형식일 경우 순서와 서사가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


    2. 하지만 인터랙티브 아트에서는 앞장도 뒷장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냥 하나의 페이지와 몇 가지 동작, 몇 가지 상호작용이 있을 뿐이다. 순서를 갖고 진행되던 여러 장의 흐름을 하나의 장면으로 압축해야 한다. 그림책을 관통하고 있는 주제, 분위기를 가져와야 하며, 그 장면에서 연상되는 동작을 추출해내야 한다. 이는 새롭게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기존에 각 그림책이 갖고 있는 고유의 성질을 디지털로 변환하는 것이다.

(물론 인터랙티브 아트도 책과 같이 순서에 따라 진행되도록 만들 수는 있다. 그런데, 그렇다면 단지 애니메이션으로 만들기 위해서 인터랙티브 아트로 변환하는 것일 뿐 기존의 그림책과 무엇이 다른가? 그림책을 영상으로 만든 것과 무엇이 다른가?)


    3. 인터랙티브 아트는 하나의 장면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여러 개의 동작이나 상호작용이 있을 수 없다. 하나의 동작(클릭, 드래그, 스크롤 등)으로 ‘예상 가능한’, ‘기대되는’ 상호작용이 존재해야 한다. 또한 그림은 이미 한 장으로 형태, 색감, 분위기 등 시각 예술의 여러 정보들을 전달하고 있기 때문에, 정보가 늘어날 여지가 없는 상태이다. 여기서 정보가 더해지면 사용자의 혼란을 초래하게 된다.


    4. 따라서 하나의 동작과 하나의 반응으로 이루어진 인터랙티브 아트는 반복적이고 순환적인 구조를 갖는다. 시작에서 끝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반복되는 것이다. 시작도, 끝도 없이.


    5. 여기서 성급히 전통적 매체와 뉴 미디어를 대립시키고 싶지는 않다. 전통적 매체가 대체로 반복적, 자기 복제적, 재귀적 구조를 갖지 않는 것은 맞지만, 모든 뉴 미디어 콘텐츠가 반복적 구조를 갖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이러한 반복 구조가 인터넷 이후에 발전하게 된 사고방식이란 주장에는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6. 이것에 대한 가치 판단은 접어두고, 현재 우리가 만드는 콘텐츠가 선형적 서사를 갖지 않음에 주목하면서 앞과 뒤, 전과 후가 없는 반복 구조 안에서 다양한 시도를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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