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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드리 Oct 17. 2021

회화 교실의 콘도 상

  일본어 회화 보란티어 클래스의 콘도 상은 일본경제신문(日本経済新聞)을 읽는다. 들리는 말엔 젊어서 항공사를 다녔다고 한다. 아라칸(アラカン·60대 전후의 나이대를 이르는 말. 남자에게는 잘 쓰지 않지만)이지만 꽤 반듯한 얼굴선을 유지하고 있다. 과자는 일절 먹지 않는다. 


  하루는 그와 아시아인의 '맞장구'(相槌·あいづち)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한 캐나다인 유튜버가 일본인의 가장 큰 특징 가운데 하나로 '맞장구치기'를 꼽았다고, 그리고 여기에 꽤나 공감을 했다는 얘기였다. 일본인은 대화 중에 맞장구나 추임새, 끄덕임이 많다.


  문뜩  내가 영어를 불편하게 생각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어공부만 십수 년이고 토익이나 토플 점수도 있는 주제에 영어 한마디 하기를 죽기보다 싫어하는 나는 도대체 무엇이 문제란 말이냐. 


  나름의 진단은 이렇다. 언어를 수학하듯 배웠다. 의사소통에 방점을 찍기보다 외워서 점수를 내는 공식 정도로 영어를 생각했다는 거다. 여기에 쓸데없는 완벽주의까지. 형편없다는 지적을 받느니 벙어리가 되겠다는 각오 말이다. 내 말이 잘 전달되고 있는지 도무지 서양인의 표정을 읽을 수 없는 것도 영어를 주저하게 된 이유가 아닐까.


  맞장구는 상대 이야기를 열심히 듣고 있다는 사인이다. 공기에 예민한 사람들은 맞장구로 모두가 동의할 만한 대화 주제를 탐색해나간다.  (물론 그 공기가 숨 막히는 광기를 낳을 때도 있지만 말이다) 그런 면에서 일본어는 좀 더 배우기가 편했다. 학습 속도도 빨랐다. 언어에도 내게 좀 더 익숙한 배경이 있을 수 있다는 발견이 흥미로웠다.


  콘도 상은 참 좋은 선생님이다. 상대가 서툴러도 적극적으로 맞장구를 쳐준다. 그 맞장구가 풍부한 대화로 이어진다. 긴장감도, 위압감도 없다. ‘선생이니까 당연한 거 아냐’라는 반응도 있겠지만 어째 그렇지 않은 선생이 더 많다는 건 긴말하지 않겠다. 


  그는 주에 한 번 열리는 회화 봉사를 위해 손수 읽고 가위질한 신문 조각들을 가방에서 꺼낸다. 세대, 빈부에 따른 사회 격차를 주제로 한 칼럼이나, 흥미로운 인사들에 관한 인터뷰 기사가 단골 교재다. 이 엄한 시기에도 '맞장구'라는 인류애가 발휘되는 순간이다.

이 보란티어 교실을 통해 인근 초등학교 친구들에게 한국을 소개했다. 주제는 한국에만 있는 다섯가지(온돌, 참외, 김치냉장고, 한국식나이, 반찬인심)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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