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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드리 Oct 21. 2021

도쿄대 옆 카페 '분단'의 요론동(ヨロン丼)

모리요코와 여자의 욕망

‘여자들의 욕망은 모리 요코에서부터 시작됐다’.


 모리 요코. 1980년대 도회적이고 세련된 소설과 가족을 주제로 한 적나라한 에세이로 당시 일본 여자들의 선망과 사랑을 한몸에 받았던 작가라고 한다. 어느 잡지 에디터가 지난해 작가를 주인공으로 한 논픽션을 출간했는데 다소 선언적인 이 소설의 광고 카피가 마음에 꽂혔다. 물론 당시 일본 여성에 한한 이야기겠지만. 최초라는 타이틀은 언제나, 늘, 강렬하다. 


 고마바토다이마에 역에서 도보로 10여분 정도, 도쿄대 고마바 캠퍼스 근처에 일본근현대문학관이 있다. 이곳에 있는 카페 ‘분단’을 찾은 건 지난해 초 코로나 19가 한창 기승을 부렸을 때다. 문학관은 코로나 여파로 휴관에 돌입했으나 카페는 운영 중이라는 소식에 어슬렁어슬렁 집을 나섰다가 분단에서 만난 이름이 바로 모리 요코다. 


 분단에 들어서면 바닥부터 천장까지 벽 한 면을 오직 책으로 가득 채운 나무 책장이 눈에 띈다. 널찍한 테이블과 장식용 거울, 화분, 그림, 불상…. 제멋대로 배치된 것 같지만 모든 것들이 마치 그 자리가 애초의 자기 자리인 양 공간과 조화로운 안정감을 이룬다.
 한가한 건 나뿐이었다. 문 옆 테이블에선 대학원생으로 보이는 단발머리의 여성이 종이 더미와 노트북을 노려 보고 있고 안쪽으로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의 남녀가 커피를 두고 대화 중이었다. 나는 찬찬히 메뉴판을 구경했다. 


 분단은 근현대 일본 작가들의 이야기와 작품을 주제로 한 커피나 음식 등을 판다. 메뉴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배가 고팠던 나는 모리 요코의 오일드 사딘(올리브유에 담가 높은 정어리) 덮밥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분단의 런치 메뉴 ‘요론동’(ヨロン丼)을 주문했다. 그는 1987년 가고시마현 최남단의 외딴 섬 요론에 별장을 지어 살았는데 이사 초에 음식재료를 구하기 어렵자 오일드 사딘 통조림 그대로 불에 올려 오일이 끓으면 간장을 두르고 밥 위에 담아 먹었다고 한다. 
 나는 메뉴판이 인용한 모리요코의 <デザートはあなた>(디저트는 당신)의 한 구절 (うめえ、の合唱が 続く)처럼 마음속으로 ‘맛있어’를 연발했다. 통조림 덮밥이 뭐 이렇게 근사하고 맛있을 일이람. 


한 끼를 맛있게 먹고 나니 모리 요코의 책이 궁금해졌다. 한국에 소개된 책은 없는 듯했다. 그냥 모리 요코를 알고 싶어졌다. 어떤 글을 썼기에 누군가는 여자의 욕망이 모리 요코에서 부터 시작됐다고 쓸 수 있었을까. 밥 한 끼(?)의 인연으로 모리요코에 대한 탐색이 시작됐다. 


 연애 소설을 주장르로 했던 모리요코. <정사>, <유혹>, <질투>, <상처>, <밤마다 요람, 배, 혹은 전쟁터>, <초대받지 못한 여자들>, <사랑을 만날 예감>, <뜨거운 바람>, <여자와 남자>, <가족의 초상>, <남자남자남자>, <사요 나라에 건배>, <여자의 아픔>, <복수 같은 사랑을 하고 싶다>…. 제목부터가 강렬하다. 작품은 20회 이상 TV드라마화 될 정도로 인기였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그의 삶 자체가 여자의 욕망을 말하고 있었다. 시즈오카 출신의 그는 서른일곱 늦깎이로 데뷔해 위암으로 사망한 쉰둘까지 짧은 작가생활을 했다. 
 1960년대 동경예술대학을 졸업하고 광고대리점에서 근무한 그는 스물 네 살 영국에서 출발해 호주를 도착지로 42개국을 여행하던 중에 만난 영국인과 결혼해 아이 셋을 낳는다. 
 생활은 풍요롭고 행복했고, 모든 것이 완벽하고 조화로웠지만 미묘한 균열은 자기 자신의 욕망에서부터 시작됐다. 나 자신으로서 꽃피우고 싶다는 욕망은 부인으로서의 자신, 어머니로서의 자신을 견디지 못하게 하는 것일까. 자신에게 절망하고 있던 때에 그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렇게 발표한 첫 작품이 제2회 스바루 문학상을 받은 <정사>다. 
 그는 피서지에 별장을 짓고 여름이면 별장 생활을 했는데 초기 가루이자와에서 피서 생활을 하던 그는 캐나다의 노르웨이 아일랜드(심지어 섬을 통째로 사들였다고 한다)로 피서지를 바꾸기도 한다. 요론섬엔 스페인풍의 별장을 지었다. 

모리요코. 야후재팬 캡처


 그는 말년에 번역에 모든 정력을 쏟아 부었는데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속편 <스칼렛>(알렉산드라 리플리 지음)이 그것이다. 그는 애틀랜타, 스코틀랜드 등 스칼렛의 무대를 취재 차 여행하는 등 번역에 공을 들였다고 한다. 책은 1992년에 나왔고 이듬해 그는 세상을 떠났다. 


 밥 한 끼로 이어진 호기심은 결국 내 욕망에 이르렀다. 내 욕망 중 가장 귀한 것, 내가 궁극적으로 도달하고 싶은 욕망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나는 욕망을 좇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카페를 나와 역을 향해 걸으면서 모리요코를 생각했다. 그러다가 버지니아 울프를 떠올렸고, 박완서 선생님을, 홍신자 선생님을, 주변의 가까운 여자 선배들을 떠올리다가 마지막으로는 우리 엄마를 생각했다. 


  우리 엄마는 욕망을 죽였을까? 외면했을까? 숨겼을까? 아니면 어딘가 아직 뜨겁게 간직하고 있을까. 



<카페 분단을 소개합니다. 고마바토다이마에(駒馬東大前)역에서 도보 10분 정도. 일찍 열고 일찍 닫으니 홈페이지 영업시간을 확인 하시길 추천 드립니다. 참고로 분단의 깜찍한 와이파이 비번은 ‘나는 고양이로소이다'(吾輩は猫である). 


BUNDAN 〒153-0041 東京都目黒区駒場4丁目3−55 日本近代文学館内 03-6407-0554 https://goo.gl/maps/XUGjqRxevXWzvLAF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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