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commonnamegirl Oct 25. 2024
영화의 배경인 구룡성채는 1993년 사라진 홍콩의 슬럼이다. 잠실 야구장 정도의 크기에 5만 명이 모여살았다는 이 건축물은 청나라가 영국을 막기 위한 요새로 만든 것이었다. 영화는 이 곳의 80년대를 배경으로 액션을 담는다. 좁은 복도와 계단을 오토바이가 달리고, 창문과 처마를 넘나들며 파쿠르를 하고, 전선 줄을 활용해 싸운다. 장검, 단검, 톱, 총, 마체테 등 온갖 무기와 삼합회도 나온다. 헌데 무자비하지만 고어하지는 않다. 이 영화를 보니 내가 잔인한 액션 장르도 좋아한다는 사실이 간만에 떠올랐다. 이만큼 시청각적 유흥을 주는 액션이 얼마만이던지. 그런 먼지 바람이 자욱한 사이버 펑크 세계에도 좁은 하늘을 향해 연을 날리는 낭만과 마작으로 쌓는 신의는 있다. 다소 웹 소설스러운 부분이 있다고도 생각했는데 원작이 라이트 노벨이라고 해서 역시 싶더라.
홍금보, 고천락, 임현제 등 홍콩 스타가 나오는 액션 영화이다보니 극장에 중년 팬들이 많이 보였다. 하지만 나는 20세기 전성기 홍콩 영화와 쌓은 추억이 없는, 오히려 그 영화들을 좋아하는 할리우드 씨네필 감독들이 오마주한 (흔히 말하는) B급 액션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내겐 이 영화의 비현실적이면서도 찰진 액션들이 (긍정적인 의미의) B급 액션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매니아들에게는 오히려 클래식한 홍콩 액션의 귀환이었다고 하니, 본인이 오랜 홍콩 액션 팬이든 나처럼 할리우드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이든 이러나 저러나 재밌게 볼 수 있을 영화다. 내 경우엔 30% 정도 전개 됐을 때는 끝까지 재밌겠다는 확신이 들어 침까지 꼴깍 삼키며 보았다. 주인공 찬록쿤이 미용실에 우연히 들어갔다가 구룡성채의 관리자이자 미용실 주인인 사이클론에게 제압 당하는 장면에서는 킹스맨의 Manner Maketh Man을 떠올리기도 했다.
빌런 중 하나인 킹의 경우 배우의 연기가 백현진과 오정세랑 비슷하다고 생각했는데 액션은 <범죄도시>의 장첸을 연상시켰다. 홍콩 영화 팬인 평론가 아저씨의 지식을 빌리자면 이 영화의 액션은 무술이 아닌 무협의 방식으로 연출됐는데, 무협의 액션은 무술과 달리 중력을 따르지 않고 내공의 기를 이용해 공격하거나 방어한다. 그런데 앞서 말한 킹은 극 중에서 최강자 수준으로 내공을 다루며 쏟아지는 날붙이들을 경기공을 써서 튕겨내고 역공을 한다. 그런 점에서 킹과의 대결은 다대일에도 불구하고 도저히 구멍이 보이지 않고 절망감을 주어서 <엑스맨 데오퓨>의 센티넬을 보며 느낀 것 이상의 두려움을 주더라. 한편으로는 그런 액션이 튀지 않고 영화에 녹아 다채로워 보이는 게 신기했다. 단순히 액션을 다시 보기 위해서라도 2차를 뛸 수 있을 것 같다. 아 그리고 유준겸 배우;;;; 잘생김... 처음엔 '흠, 이 영화의 꽃돌이 포지션인가' 했는데 맞기도 했고 액션이 멋있어서 스며들어버림
(뒤에서부터는 GV내용과 함께 약스포)
구룡성채는 3차에 걸쳐 이민자들이 흘러와 정착한 중국 근대사가 극축된 알레고리다. 영국령이기에 오히려 불법 이민자들에게 치외법권이었던 이곳은 2024년을 사는 외국인인 우리에게는 판타지 같은 장소고, 따라서 몇몇 장면들은 영화적 연출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오히려 영화적으로 보이는 장면들에 리얼리티가 담겨져있기도 하다. 정치적 특수성 때문이다. 이러한 구룡성채를 배경으로 홍콩 영화의 성공 장르인 액션을 담아낸 것에 대해 정성일 평론가는 "역사가 장르를 이용해 신화적 비극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말인 즉슥 폭력적으로 주권이 이행되어온 영화 <구룡성채> 속 구룡성채에는 홍콩, 그리고 홍콩 영화의 현실이 상징적으로 담겼다는 뜻이다. 영화의 메시지는 역사와 환경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렇다면 현 시점에서 보았을 때, 1993년에 이미 철거된, 극 중 시점에서도 곧 철거될 구룡성채를 왜 주인공들은 지켜야 했을까. 그것은 구룡성채의 의미는 건물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구룡성채에 와서야 겨우 잠을 푹 잘 수 있게 됐다고 말하던 찬록쿤에게 사이클롭은 구룡성채가 아니라 구룡성채 사람들 때문에 푹 잘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극 중 인물들은 배우자도, 자녀도 없다. 서로 간에 혈연으로 이어지지도 않았다. 존재적으로 미래가 보장되지 않더라도, 그들은 자신과 공동체의 의미를 공간과 혈연에 두지 않을 것이다. 홍콩 역시 빠르게 변화하지만 홍콩의 사람들은 자신을 잃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