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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mmonnamegirl Jan 16. 2023

어차피 사라질 것을 사랑한다는 것

<썸머 필름을 타고!>(2020)



<썸머 필름을 타고!>(2020)




"좋아해!"라는 대사로만 채워진 로맨스 영화가 제작되고 있는 영화부의 구석에 불만이 가득한 소녀가 있다. 주인공 '맨발'이다. 맨발은 사무라이 영화를 사랑하는 고등학생으로, 로맨스 영화를 찍는 카린에게 밀려 제작 지원비를 지원 받지 못했다. 사실 제작 지원비는 둘째치고, 맨발의 가장 큰 문제는 주인공이 될 배우를 찾지 못한 것. 그러던 어느 날, 영화관에서 맨발은 그의 사무라이가 될 만한 소년과 마주친다. 말을 붙이려는 맨발을 보자마자 소년은 도망치기 시작한다. 필사적으로 도망쳐 강으로 빠지는 그를 따라 맨발도 몸을 던진다. 소년을 붙잡은 맨발은 자신의 데뷔작이 될 영화 <무사의 청춘>을 찍기로 한다. 친구인 킥보드와 블루 하와이, 그리고 유별난 동급생들을 모은 맨발이 말한다.
"이번 여름엔 너희의 청춘을 내가 좀 쓸게"



청춘 영화의 막을 열기 좋은 대사다. 배경은 어김없이 여름이다. 뭔가를 불태우거나 꿈을 좇기 좋은 계절이라서일까. 청춘 영화의 장르적 특성이라고 할 수 있는 여름의 이미지가 이 영화에도 가득하다. 서로를 쫓으며 뛰는 맨발과 린타로, 땀, 새벽을 채우는 매미 소리, 동아리의 공간을 나누어 합숙하고 연애하며 선의의 경쟁을 벌이는 맨발 팀과 카린 팀.




(아래부터는 스포일러 포함)


SF 팬인 킥보드가 사무라이 영화만 보는 맨발에게 "가끔은 SF도 읽어봐"라고 말하는 대사는 이 청춘영화에 SF가 섞일 것이라는 일종의 복선이다.
소년은 미래에서 왔다. 그리고 소년이 살던 곳에는 '영화'가 없다. 영상이 점점 짧아져 긴 영상을 사람들이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 제작으로 가득찬 여름을 보내는 맨발과 팀원들에게 소년은 이 비극적인 사실을 숨기려했지만 결국엔 들켜버린다. 충격을 받은 맨발은 영화 촬영을 중단해버린다.

시대극을 넣어 확장된 카린의 로맨스 영화처럼, 이 청춘 영화에는 SF가 섞이며 철학적 질문이 던져진다. 내가 사랑하는 것이 사라지더라도 그것을 계속 사랑할 것인가?



이 영화를 보며 비슷한 장르와 소재를 다룬 <키리시마가 동아리 활동 그만둔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영화 감독이 되진 않겠지만, 지금은 영화를 만들겠다"던 쓴맛 나던 마에다의 다짐과 달리, 맨발과 린타로의 다짐은 좀 더 명랑하다. 맨발은 미래에 영화가 사라지지 않게끔 영화를 만들겠다고, 린타로는 미래에 돌아가서도 영화를 계속 만들겠다고 말한다.

극 중 반복적으로 언급되는 사무라이 영화 <자토이치>에 대해 마쓰모토 감독은 "대결하는 상대방에게 ‘네가 아니면 안돼’라는 마음을 품게 되는, 그래서 마치 연애처럼 보이기도 하는 이 아름답고도 안타까운 관계성에 매료되었다."라고 말했다. 결국 감독에게는 그 사무라이 영화처럼 이 청춘 영화도 로맨스물이다. 린타로에 대한 고백, 그치만 그보다도 영화에 대한 고백이 더 진한.

그해 8명이 몸과 마음을 바쳐 만든 맨발의 데뷔작 <무사의 청춘>은 미래에 없다. 타임 패러독스를 막기위해 미래에서 온 소년은 여름을 바쳐 만든 영화를 없애야만 한다. SF덕후로서 킥보드는 이 영화를 없애야만 하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지만, 아끼는 친구에게 이 사실을 알릴지 고민한다. 하지만 사실 이미 맨발은 알고 있었다. 자신의 데뷔작을 없애야 한다는 것을. 그럼에도 맨발은 카린와의 승부를 준비해왔다.




사라질 것을 계속 사랑할 것이냐는 질문으로 돌아와, 맨발은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미래에 영화가 사라진다는 것을 알았을 때 이미 내렸다. 맨발은 결국 사라질 것들을 사랑한다. 미래에는 사라질 영역일지라도 영화를 만들고, 린타로가 다시 미래로 돌아가야 할지라도 고백을 하고, 축제가 끝나면 없애야 하는 데뷔작일지라도 카린의 영화와 대결한다. 좋아하면 승부를 보아야 하니까.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내 학창시절을 구원했다"는 마쓰모토 감독의 말처럼, 맨발의 여름은 <무사의 청춘>으로 가득했다. 분명 이 영화에는 항마력이 필요한 순간도 있다. 그치만 원래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은 오글거리기도 하는 거니까, '이런 맛에 일본 영화 보는 거지'라고 생각한다면 더할 나위 없는 영화가 될 것. 마쓰모토 감독님, 일본 영화를 사랑하시는 마음이 마치... 사무라이 영화를 사랑하는 맨발 같으셔요. 비록 일본 영화 산업이.. 실사화 파티일지라도... 계속 일본 영화를 만들겠다는 고백으로 저는 이 영화를 읽었습니다. 당신의 차기작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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