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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mmonnamegirl Dec 09. 2020

파랑 지붕 집의 기억

<남매의 여름밤>을 보며 떠올린 기억의 편린



10대 어느 추석, 할머니와 시골길 산책을 다녀온 적이 있다. 지금은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동네지만 그때까지는 가끔씩 뱀이 나오기도 하는 벼 밭이었다. 은행나무가 비포장도로의 한쪽에 줄 지어 서있고 주황빛 가을 노을에 비치는 벼들이 파도처럼 일렁였다. 나는 평생 할머니와 말 한 번 섞은 기억이 없고 그날도 마찬가지로 대화는 없었다. 그저 느릿느릿 떨어진 은행알을 밟지 않기 위해 애를 쓰며 걸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십 년이 넘었지만 우리 아빠는 아직도 딸과 노모의 느린 산책을 떠올릴 때면 감상에 젖는다.

하지만 나는 그날을 다른 장면으로 기억한다. 할머니와 짧은 산책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엄마가 잔뜩 화난 상태로 혼자 파란 지붕 집을 떠나버렸다. 뒤늦게 도착한 친척들이 엄마의 뒷모습을 보며 싫은 소리를 쏘아댔다. 그때 엄마가 화났던 이유는 십 년 가까이 지난 뒤에야 알게 됐지만 당시에도 나는 아빠가 뭔가를 잘못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택시를 타고 떠난 엄마를 아빠차로 허겁지겁 쫓아갔다. 나는 자동차 뒷좌석에서 계속해서 아빠에게 "무슨 일이야? 어떡해, 어떡해"하며 닦달했고 아빠는 아무 대답도 안 했다. 할머니와의 산책은 내게 있어 그녀와 함께한 거의 유일한 추억이지만 나는 그날을  그렇게 기억한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어른의 세계는 짐작도 못하고 석양빛이 물든 밭의 감상만 느끼고 추억하리라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아이들은 가정에서 누구보다 예민하게 촉을 세우고 그 안의 관계를 살핀다. 어른의 세계가 얼마나 이해타산적이고 뻔한지는 모르지만 말이다.그래서 "너네가 걱정할 일 아니야" 같은 말 아이들충분한 위안을  수 없다.


20대가 된 나는 이제 어른들의 사정을 이해할 수 있다. 왜 어른들이 그렇게 이해타산적이고 뻔해질 수밖에 없었는지, 왜 애들은 걱정할 필요가 없는지. 그래서 영화 제목인 <남매의 여름>의 '남매'에는 어른 남매도 포함되고, 영화 속 여름이 그들에게도 쉽지 않은 계절이었음 역시 알고 있다. 하지만 영화를 보며 머리와 달리 감정적으로는 어린 남매에게 이입할 수밖에 없었다. 무력히 눈치만 보아야 했던 그해 추석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유년 시절의 기억은, 시골집과 친척은, 형제는, 관계는, 어른이 되면서 미화되어 가지만 아이들에게도 실은 그리 목가적이지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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