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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탱동 Aug 13. 2021

그때 내 일기장에는……

제목: 파리

밖에 나가면 햇볕에 금방 타죽을 것 같다! 문 열어둔 뒤란에서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와서 참 다행이다. 

아부지는 점심을 잡수시고 주무신다. 한낮 뙤약볕에 들에 나가 일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부지는 여름이면 점심을 잡수고 이렇게 좀 주무시다가 해가 조금 비켜서면 다시 일하러 가신다. 

아부지가 직접 깎아서 만든 목침을 베고 주무신다. 딱딱한 목침이 배기지도 않나? 내가 전에 한 번 베 봤는데 잠시도 못 있을 정도로 너무 아파서 금방 뺐다. 근데 아부지는 아무렇지도 않는갑다. 저렇게 베고 잘 주무시니까. 

파리 한 마리가 내 일기장에 앉았다. 손으로 잡으라고 휙 쳤는데, 순식간에 날아갔다. 아부지 얼굴 쪽으로 날아갔다. 아부지가 깨시면 안 될 거 같아 파리를 쫓아냈다. 이놈이 머리 쪽으로 가서 잠시 붙어있다가 금방 날아서 발바닥 쪽에 가서 붙었다. 요래조래 계속 아부지 몸을 옮기 다니며 날 약 올렸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쓰고 있던 일기장을 접어서 들었다. 이걸 안 잡고 그냥 놔둘 수 없었다.

“니, 이제 끝장이데이!”

일기장을 꽉 움켜잡고 파리를 향해 힘껏 내리쳤다. 

“허이! 뭐가 이카노?”

아부지는 깜짝 놀라며 눈을 떴다. 

“아, 파리가요. 파리가 아부지한테 자꾸 달라붙어서 잡을라꼬요.”

아부지는 나를 한 번 보시더니, 몸을 일으켜 세워 일어났다. 머리맡에 놓인 물 주전자를 그릇에 따라 벌컥 들이키시곤 봉당을 내려갔다.

아부지는 다 주무셨는갑다.      



유년 시절 일기장을 들춰 보다가 저 혼자 큭큭큭 웃음이 나온다. 마치 어제 일처럼 그려진다. 아버지의 단잠을 다 깨워놓고선 아버지께서 다 주무셨다고 생각하는……ㅋㅋㅋ! 

그때는 일기 쓰기를 참 싫어해서 마지못해 쓴 게 참 많다. 지금 봐도 억지로 쓴 게 눈에 훤하게 보인다. 

그런 나와 달리 모범생이었던 작은언니는 일기도 참 잘 썼다. 일기 중에 내용이 꽤 괜찮은 건 대부분 작은언니의 일기를 몰래 베낀 거였다. 


이 일기는 작은언니 걸 베끼지 않은 게 분명하다. 그런데도 꽤 잘 쓴 거 같다~ㅋㅋㅋ     



(이미지: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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