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탱동 Jul 28. 2021

생각을 달리하고……

산책로에 지렁이가 넘쳐났다. 피해서 조심조심 발을 내딛느라 땅바닥만 쳐다보고 갈 판이다. 앞서 달려가던 누군가의 발에 밟혔다가 훅 튀어나오는 걸 볼 때면, 아우! 징그러워. 자연에 이로운 생물이라지만 가까이하고 싶은 마음은 단 1도 없다. 그 죽음에 동정이나 애도 따윈 없다. 그저 어떻게 하면 내 발에 닿지 않게 할까 싶어 요리조리 피하다 그만 헛디뎌 밟으면 소스라치게 놀랄 뿐이다.     


지렁이는 뭣 때문에 흙 한 줌 없는 이런 길바닥에 나와서 저렇게 죽음을 맞이할까? 풀과 흙이 있는 길섶에 있으면 서로한테 좋을 텐데. 굳이 이렇게 나와서 말라 죽고, 밟혀 죽고 하는 걸까? 비도 오지 않는 날에. 비는커녕 연일 구름 한 점 없이 쨍쨍한 햇살뿐인 이런 날씨에, 왜 이렇게 나와서는…… 내 너를 보고 있자니, 안타까움을 넘어서 답답하기 짝이 없다.      


산책로에 지렁이들이 유난히 많이 널브러져 있기도 했지만, 유독 눈에 밟혔던 이유는 아마 전날 저녁에 받은 문자 때문일 거다.

“위내시경 시 시행한 조직검사결과는 만성위염과 장상피화생으로 판정되었고, 헬리코박터균은 검출되지 않았습니다. 1년 후 추적검사를 권유합니다.”


건강검진 후 의사와 상담할 땐 위염이 조금 우려된다며 위장약 1주일 치를 처방해준 게 다여서 별걱정 없이 지내다가 문자를 받고 깜짝 놀랐다. 사실 처음부터 놀라진 않았다. 읽긴 했지만, 생소한 낱말이 뭘 뜻하는지 몰랐기 때문에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말았다. 

따라 읽기도 어려운 ‘장상피화생’이란 단어를 인터넷에서 찾아봤다. 어마어마한 말들에 억눌려 순간 숨이 멎는 듯했다. 금방이라도 어떻게 될 것 같은 느낌에 아득했다. 


그렇게 하룻밤을 보낸 다음 날 아침, 산책로에서 만난 지렁이들의 모습이 내 눈엔 예사로이 보이지 않았다. 달리면서도 내 마음은 공허했고, 산책로 사방에 늘어 자빠진 지렁이들의 모습에 이상한 감정이 이입되면서 짜증 아닌 짜증이 났다.  

   

땀에 흠뻑 젖은 몸을 씻고 나니, 어지럽던 마음도 좀 차분해졌다. 이런저런 검색을 뒤로하고, 마음이 가고, 믿고 싶은 영상 하나를 찾았다. 

닥터프렌즈 [위축성위염, 장상피화생 위암 공포 그만!] 이란 제목의 영상이었다.

(https://youtu.be/8Fm3nMATDWI) 혹시 나와 같은 검사 결과에 마음 졸이는 누군가가 또 있다면 이 영상 권해드립니다.     


언니와 카톡을 주고받으면서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라며, 걱정은 한도 끝도 없는 거라고, 영상에서처럼 관리하면 된다고, 제법 대견스럽게 말했으면서도. 시간이 지나고 홀로 있을 때면 나도 모르게 스멀스멀 우울한 감정들이 밀려 나와 자꾸만 날 지배하려고 했다. 마음을 다잡을 뭔가가 필요했다

    

“네가 무엇을 바라보고, 어떤 걸 믿느냐는 네가 결정하는 거야!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걱정과 근심 속에서 너를 갉아 먹으면서 우울한 나날을 보낼 것인가, 아니면 긍정의 힘을 믿으면서 네 몸을 사랑하고 아끼면서 건강하고 즐거운 하루하루를 보낼 것인가? 

그건 전적으로 너한테 달렸다는 걸 잊지 마. 

몇몇 후회스러운 지난날들을 떠올려 봐. 

머리 싸매고 걱정해서 해결됐니? 

아무짝에도 쓸모없고, 오히려 해롭기만 한 그런 감정에 휩싸여 너의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지 마. 

이번엔 절대 그러지 마. 

넌 현명하고 지혜로운 사람이잖아. 

난 널 믿어!”   

주문을 외듯 난 나에게 이 말들을 주입 시켰다.


그래, 이번 참에 짜고 맵게 먹는 식습관(예전부터 고치고 싶었던 거잖아) 화끈하게 바꿔보는 걸로! 

평생 함께할 소중한 내 몸과 마음 건강하게 지켜야, 하고 싶은 많은 것들을 꿈꿔보지!

화이팅!!!     


어제 장상피화생만 검색하지 않았다. 지렁이에 대해서 찾아봤다.

* 암수한몸으로 재생력이 강하고 흙 속이나 부식토에서 산다

* 살아 있는 흙 속의 쟁기

* 프로 농사꾼 

* 지렁이는 대지의 장(腸)-아리스토텔레스 

* 지구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생물-다윈 

[출처: 네이버 국어사전, 국립낙동강생물자원관]     




오늘 아침에야 산책로 길섶의 풀들이 깨끗하게 정리된 게 보였다. 지렁이가 유난히 많다 싶었더니…… 


설마, 너희들 산책로를 가로질러 횡단하는 중이었니? 

풀 깎는 소리에 놀라서, 눈도 귀도 없는 너희들이지만 다 아는 수가 있다고? 


너희들도 다 이유가 있었구나!




커버이미지: Pixabay

작가의 이전글 산꼭대기 소나무 한 그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