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나라 Jan 21. 2019

거울을 깨트려야 한다.

기사단장 죽이기




기사단장 죽이기





드디어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님의 '기사단장 죽이기' 책을 마무리 지었다. 1,2 권을 합치면 거의 1000장이 넘어가는 양의 책을 이렇게 짧은 시간에 다 읽은 일은 흔치 않은 일이다. 솔직히 이 책이 그 정도로 재미있었다. 라고 말하기엔 확신이 서진 않지만, 그만큼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는 것은 명백하다.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만의 표현력, 메타포 만큼은 절대 그 누구도 대체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또한 스토리의 신선함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말그대로 스토리가 폭발했다. 그러나 그것이 완전하게 매력적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은 독자 개인의 몫인것 같다. 


그리고 책을 읽던 중 인상깊은 문장들이 있어서 이렇게 글을 남긴다. 이 책을 읽으면서 포스트잇으로 수없이 표시한 아름다운 문장들이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이 책을 통틀어 가장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나에게 가장 깊숙이 스며들었던 문장이 있다. 짧지만 강력한 한문장.



거울을 깨트려야 한다


이 소설 속 주인공 '나'의 부인 유즈가 주인공에 이런 말을 한다. "거울에 비친 나는 그저 물리적인 반사일 뿐이다" 그말을 들은 주인공은 세면대 거울을 통해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 본다. 하지만 주인공은 그곳에 비친 자신의 얼굴에 대해 이렇게 독백한다. 

그곳에 비친 내 얼굴은 어디선가 둘로 갈라져 떨어져나간 내 가상의 분신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거기 있는 것은 내가 선택하지 않은 나였다. 물리적인 반사조차 아니었다.

이 부분은 나에게 큰 울림을 주었던 문장이다. 거울에 비친 나는 물리적 반사일 뿐이라는 문장도 좋았지만 주인공의 독백에서 그것은 물리적인 반사조차 아닌, 내가 선택하지 않은 나였다는 문장이 정말 인상깊었다. 

여기서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은 다양하게 해석 될 수 있지만 나의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다른 사람이 보는 '나'의 모습 , 남에게 보이고 싶은 나의 모습이라고 해석 되어진다. 거울을 통해 나를 보는 것은 '나 자신'이지만 그 거울이라는 물건에 비추어지는 것은 내가 선택하지 않은 나의 모습,  나의 진실된 내면이 아닌 나를 둘러싼 사회와 사람들이 보는 나인 것이다. 여기서의 '거울'은 나를 정의하는 사회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고 있는 '거울'은 우리 삶에서 배제할 수 없는 존재이다. 우리는 그 '거울'을 깨야지만 그 안에 숨겨져 있는 진정한 '나'를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과연 우리는 그 '거울'을 깰 수 있을까? 나는 지금도 그 '거울'을 끊임없이 찾고 있는데 말이다...




두번째로 기록하고 싶은 문장은 아래에 있는 문장이다. 



아무리 범용 할지라도 대체할 수는 없다


범용에는 여러 뜻이 있지만 무라카미 하루키가 여기서 사용하고 있는 범용의 뜻은 '평범하고 변변하지 못함. 또는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된다. 즉 작가가 여기서 하고자 하는 말은 평범하고 변변치 못하더라도 그 무엇과도 대체할 수 없다는 이야기이다.

맞는 말이다. 늘 평범한 나를 괴롭히는 그런 사람들을 위한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위로다. 이 문장이 이 소설을 통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메인 주제는 아니지만,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수많은 이야기 중 , 무라카미 하루키가 소설에 뿌려 놓은 수많은 별들 중 하나. 그리고 내 눈에 가장 잘 뛰었던 별 하나이다. 

작가의 이전글 시인 윤동주를 기억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