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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라 Jan 01. 2019

시인 윤동주를 기억하다

내가 사랑한 시인 윤동주

영화는 가끔 누군가에게 큰 전환점이 되어주기도 한다. 나에게 있어 그런 전환점이 되어준 영화가 하나있다. 시인 윤동주와 독립운동가 송몽규의 인생을 담아낸 영화 ‘동주’는 최근 내가 가장 인상깊게 본 영화 중 하나이다. 어둠의 시대를 살아갔던 천재시인 윤동주와 그의 가장 절친한 친구 독립운동가 송몽규. 그들의 삶과 시대정신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던 영화였다. 그리고 그 영화 속에 소개된 윤동주의 시는 내게 크나큰 충격을 주었다.


앞서 ‘동주’라는 영화가 나에게 전환점이 되었다 이야기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실 영화를 보기 전 윤동주시인은 나에게 교과서에 소개되는 천재 민족시인이였다. 학교 수업시간에서는 단순히 그 시를 역사적으로 문학적으로 분석하기 바빴기에 나에게 그 시들이 와닿을리 없었다. 그러나 영화를 통해 그 시대를 살아갔던 이들의 감정과 고뇌와 시대정신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었고 그 영화속에 놓여진 시들의 의미를 자연스럽게 느낄수 밖에 없었다. 그러니 나는 자연스럽게 윤동주 시집을 바로 구매할 수 밖에 없었다. 평소에 알고 있던 그의 대표적인 시들‘ 자화상’ ‘서시’ ‘눈’ 등의 수많은 작품을 다시 읽기 시작했을 때 내가 간과했던 그의 시들에게 부끄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윤동주 시인은 시 한작품을 쓸때까지는 열흘이고 한달이고 두달까지도. 그의 시는 절대 짧은 시간에 쓰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자연, 사람의 삶과 고뇌를 끊임없이 고찰했고 그것을 시에담았다. 윤동주 시 속에 담긴 통찰과 표현이 위대할 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이것은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윤동주 시인은 자연을 정말 사랑했던 시인인 것 같다. 시집의 제목이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인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지만 그는 시 속에 자연을 아름답게 접어넣었다. 그의 시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 하나가 있는데 바로 ‘소년’이라는 시다. 


소년- 윤동주

여기저기서 단풍잎 같은 슬픈 가을이 뚝뚝 떨어진다. 단풍잎 떨어져 나온 자리마다 봄을 마련해 놓고 나뭇가지 우에 하늘이 펼쳐 있다. 가만히 하늘을 들여다보려면 눈썹에 파란 물감이 든다. 두 손으로 따뜻한 볼을 쓸어보면 손바닥에도 파란 물감이 묻어난다. 다시 손바닥을 들여다본다. 손금에는 맑은 강물이 흐르고, 맑은 강물이 흐르고, 강물 속에는 사랑처럼 슬픈 얼굴----아름다운 순이(順伊)의 얼굴이 어린다. 소년은 황홀히 눈을 감아 본다. 그래도 맑은 강물은 흘러 사랑처럼 슬픈 얼굴-----아름다운 순이(順伊)의 얼굴은 어린다.


그는 자연을 너무도 아름답게 해석하고 노래했다. 나는 시적표현들을 하나하나 해석하고자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저 나에게 <슬픈 가을이 뚝뚝 떨어져 봄의 자리를 마련해 주었으며 하늘의 색깔이 사람에게 묻어난다>는 표현들이 와닿았을 뿐이다. 

윤동주 시인은 시대에 저항한 민족시인이다. 그는 일제에 굴복하지 않았고 끝까지 조국과 함께했다. 그때 그의 시대정신은 자연스럽게 시에 녹아들었고 오늘날까지도 우리에게 울림을 주고 있다. 윤동주는 살아생전 자신의 시집을 내고자 했지만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배경이 그를 막아섰다. 그런 시대의 역경과 시인의 내적갈등을 묘사하고 있는 시가 있다. 바로 ‘ 참회록’이다. 


참회록(懺悔錄)

윤 동 주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王朝)의 유물(遺物)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懺悔)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 만 이십사 년 일 개월(滿二十四年一個月)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 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懺悔錄)을 써야 한다.

――― 그 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告白)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隕石)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온다.


그 당시의 시대상황과 그의 갈등과 감정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은 많이 있지만 참회록은 그 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이다. 파란녹이 낀 구리거울을 통한 자기반성의 표현을 적었다는 것이 나에겐 굉장히 인상적이였다.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라는 문장은 시인의 아픔과 고뇌가 느껴지는 부분이다. 슬프고 아련하기 까지하다. 윤동주 시인은 전쟁의 최전선에서 총을 잡고 싸웠던 독립투사는 아니다. 그러나 ‘서시’에서도 볼 수 있듯이 자신에게 주어진 길로 걸어가며, 자신만의 방법으로 조국을 사랑하고 민족을 지켰다. 그리고 그는 끝까지 굴복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그의 내면적 갈등과 반성이 담긴 그의 시를, 어둠을 내몰고 빛을 되찾고자 했던 그의 시를 사랑한다. 


그는 내가 가장 사랑하고 존경하는 시인이자, 너무도 아픈 시절을 살았던 청년이였다. 만일 윤동주시인이 오래도록 살아있었더라면 한국 시문학은 또 어떻게 변했을 것이며 해방을 맞이한 후 써내려간 그의 시가 얼마나 찬란했을지는 상상할 수 없다. 그는 이미 우리 곁을 떠났지만, 그의 시를 사랑하고 기억한 이들. 그들이 보고 있는 그 시속에 윤동주 시인은 언제나 존재하고 있음을.. 늘 기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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