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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래연 May 16. 2024

우리들은 쿨하니까요




    대서양 기후로 비가 잦은 포에 조금이라도 햇빛이 정원에 비칠라치면 영국 아이들은 일제히 우르르 밖으로 나가 모여 앉아 볕을 쬔다. 못 말릴 연대의식이었다. 그들 부족에게 일조량은 언제나 부족하다는 듯 늘 집단으로 광합성할 준비가 되어 있다. 비 많고 우중충한 나라에서 와서 그런가? 날씨도 좋지 않은데 혼자 고립되면 심란해지니까. 수업시간에도 앵글로 색슨족들은 같이 한 줄로 앉았고 나머지 표류하는 국적의 우리들은 우리들끼리 맞은편에 주르르 앉았다. 영화 수업을 맡은 나탈리는 그들에게 ‘떼어 앉힐까 보다!’라고 한 적도 있지만 선생님들은 이런 문제를 계속 방치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뭉쳐 다니고 나는 영어가 안 되어 많이 친해지지는 못했는데 사실 그들과 나 사이에는 공통 언어인 프랑스어가 있기는 했다. 그러나 나는 특히 영국이나 남미 친구들과는 발음 차이 때문에 소통의 시도를 점점 하지 않게 되어버렸다. 서로가 프랑스어를 프랑스어답게 발음해준다면 좋았겠지만 프랑스어 발음이란 프랑스인 비슷하게 하기가 너무나 어렵다. 프랑스인들의 비염이라도 걸린 듯한 비음들을 듣고 있자면 마치 그들에겐 코가 유일한 발성기관인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조금이라도 비슷하게 하려면 하루쯤 프랑스인의 가죽이라도 뒤집어써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어쨌든 그들의 자유분방함은 나의 로망이었다. 그들이 페이스북에 남겨놓은 흔적을 보면, 출연진이 통째로 정신 나간 듯 보이는 영국 코미디가 과장이 아니라고 믿게 된다. 그들의 거한 장난은 마치 영화 장면 같았다. 남의 나라에 유학 와서도, 어쩌면 그러니까 더더욱 개구지게 놀았다. 광장의 공공분수에 뛰어들어 물장난을 치거나 어느 상점 앞에 일렬로 뒷모습을 보이고 늘어서 일제히 바지를 내려 엉덩이가 나오는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그들 하나하나의 거친 개성은 모였을 때 한층 증폭되어 아주 끝 가는 모습을 보였다. 한참 젊은 그들은 그랬다. 



    “쿠울!Cool!”,“우리들은 쿨cool하니까요.” 

    언제고 이런 추임새를 흘리며 포 교정과 시내를 떼거지로 휘젓고 다니는 영국아이들은 내 눈엔 ‘쿨족’이라는 신흥종족이었다. 나도 저런 악동의 종족이고 싶어 그들이 늘 부러웠다. 물론 나 역시 언젠가부터는 나는 나의 자발성을 억압했던 모든 것에 보복하듯이, ‘오롯이 개인으로 존재하는 일’에 골몰하고 있다. 그저 치이지 않고 숨 쉬는 게 너무도 중요했으니까. 나에게는, 현대 문명이라는 체로 거른 다음 다시 이런저런 관념의 깔때기를 통과시키고도 남는 이상한 침전물, 더는 걸러지지 않는 느낌들과 이 느낌들을 몽땅 담은 덩어리인 나 자신을 마주대하는 일이 골똘하다. 공기는 생명의 필수 조건임에도, 희박한 이 자유의 공기를 만들기에 골몰하여 겨우 하루 벌어 하루 숨 쉬는 것 같은 이 일상이 여전히 노여웁다. 어떠한 검열도 방해도 없이, 아주 긴 하루를 천천히 숨 쉬며 다 느껴보는 것이 염원이다. 










    어느 시점까지는 나도 동시대인들이 밟아가는 삶의 전형을 거의 따라갔었다. 고등학교 다음은 대학 그다음은 취업 혹은 취집 혹은 대학원...정해진 코스. 그러다 어느 날 로맨스의 탈을 쓴 하나의 부조리한 세팅이 다가와서는 내가 꾸역꾸역 주워섬기던 낡은 모드를 엎어버렸다. 도망치기도 넘기도 뭐한 막다른 골목에 위치하자 이 사건과 더불어 나는 내 삶 전체를 회의하게 되었다. 곧 진이 다 빠져서는 당시 알던 거의 모든 사람과 연락을 끊고 좀 긴 잠수를 탔다. 그때는 온라인 세계가 보편적이지 않았던 시기라, 그냥 잠적하고 폰넘버(실은 삐삐)만 바꾸면 끝이었다. 끈끈이주걱 같은 세계로부터 발을 빼기에는 지금보다 더 용이한 시대였다. 이 사건이 아니었다면 나는 남들처럼 결혼하여 아이 엄마가 되었을 것이다. 어찌어찌하여 나는 사람들의 시선이 만드는 무대를 떠났고 그때부터 조신한 규수나 버젓한 며느리의 길은 어쩐지 나와는 더 이상 인연이 없어 보였다. 


    발단은 하나의 연애 사건이었다. 그즈음, 백마에 올라탄 누군가가 청혼을 해서 이제야 나도 결혼이란 걸 하게 되나 싶었다. 상대로 말하자면 보편적 감성의 결여 말고는 소위 모든 것을 갖춘 것 같은 물리학도였다. 그는 나와 밥을 먹는 와중에도 종종 어떤 수학 연산에 골몰해 있었다. 또 같이 볼 비디오를 내가 고르면 “싫어, 이건 너무 감동적이니까!”라고 투덜거리는가 하면, 일몰에 감탄하는 나를 외계인 보듯 하며 “저것은 그저 빛의 산란에 의한...”이라고 했다.


    그런 어느 날 어떤 아주머니가 느닷없이 내게 전화해서는, 그 물리학도가 자기 사위나 다름없는데 자기 딸을 버리고 다른 여자(나)를 사귀니 혼인 빙자 간음으로 남자를 고발하겠다는 거였다. 알고 보니, 내가 막장드라마 속에 들어와 있었다! 고발은 무산되었으나 뒤에 더 나쁜 것이 기다리고 있었다. 평범한 커플이라면 축복일 임신이란 현상이 그 헤어진 커플에게 일어나 버린 것이다. 둘의 관계는 그의 말처럼 그렇게 오래전에 깔끔하게 정리된 것이 아니었다. 남자는 그녀를 유산시키려고 설득하던 찰나에 내게 들켰다. 이후 그녀는 자연유산이 되었으나 모종의 앙심에 의해 여전히 임신하고 있는 것처럼 행세하며 남자를 압박했고 그 둘은 학교 내 같은 건물에 있었다. 


    남자는 지금 맘고생하는 걸 액땜 치고 평생 잘 살면 되지 않느냐며 나를 붙들었고 어서 자기 부모를 만나보자고 했다. 만난 자리에서 아무 영문도 모르는 그의 부모는 내가 장래의 며느릿감으로 합당할지 어떨지만을 열심히 저울에 올려놔 보고 있을 뿐이었다. 

    종내 나는 맥이 빠져 그를 밀어내 버렸는데 이러는 동안 심신이 너무 지쳐버렸다. 좀 더 현명했다면 얼른 이 사태를 자신과 분리한 다음 똥 밟은 셈 치며 담담히 구두를 닦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감정과 연루된 문제에서 그렇게 고스란히 나를 도려낼 수 없었다. 더욱이 그 때는 어려서 스스로 느끼는 파장이 컸다.  








    나는 느닷없이 잠적하여 살아본 적 없는 도시에 나를 내려놓고는 이후부터 일본 영화 <천만 엔 스즈꼬>의 주인공인 양, 한 마리 도마뱀처럼 내 꼬리를 끊임없이 잘라내며 도망가 옮겨 다니며 살았다. 그 시기 이후, 다시 어딘가에 조금씩 속하기 시작했으나 어디에도 뿌리내리는 느낌은 없었다. 불시착된 실존적 무인도였다. 이를 계기로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 이름 앞에 붙은 일체의 소유격들, 누구누구의 무엇이게끔 하는 그 소유격들을 모두 떼어내고 마치 새로운 행성에 내린 것처럼 그냥 우주 안에 한 점 영혼으로만 있어 보았다. 


    그러나 내가 이런 오만한 포지션을 취해본들 인간이란, 인간이라는 말 자체가 ‘사람 사이’를 뜻하듯, 엄마 태내서부터 이미 관계에 중독된 존재이다. 각종 관계들로부터 벗어나 호젓해진 것까지는 좋았는데 부작용도 심했다. 관계의 역풍이 지나간 자리를 수면장애, 대인기피증과 결벽증이 대신했다. 일상은 여자 몽크가 따로 없을 지경이 되었다. 한 번은 전생최면의 권위자에게 예약하여 무려 1년이나 대기한 끝에 최면을 시도해보기도 했으나 무의식으로의 이행은 수월치 않았고, 도리어 정신이 또렷한 가운데 최면 비용이 아깝다는 생각만 들고 있었다. 


    세상은 새로 다시 만날 때마다 매번 왜 이리 낯선지 몰랐다. 어디 있을지 모를 익숙한 그 무엇, 마음 놓을 그 어딘가를 찾아 내 그림자는 여태껏 표류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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