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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래연 Feb 22. 2024

고양이는 살아있는 오르골이다





 


길고양이 비망록


    고양이는 살아있는 오르골이다. 그들은 온기의 전령이고 그들 자신 또한 누군가의 온기를 필요로 한다. 

    지금 내 책상 위에는 13년 묵은 나의 고양이 제롬이 비스듬히 누워 꼬리를 팡팡 치고 있다. 지난 세월 이 녀석은 제일 나쁜 순간조차 늘 함께였다. 쓰다듬음과 온기의 시간은 항상 있어왔다. 삶의 매 순간 위로는 늘 무심한 듯 슬그머니 깃들어 있다. 그래서 어떤 사건과 감정들이 휩쓸고 지나가도 삶은 지속되는지도 모른다. 


   정작 사람들은 동족인 서로를 할퀴고 그리하여 점점이 떨어져 흐른 눈물을 고양이는 스펀지처럼 빨아들여준다. 가는 데마다 우수를 끌어안고 사는 수요일의 아이인 나에게 고양이는 언제고 살아있는 걱정 인형이 되어 준다. 사람이 생채기 낸 자리들을 타액 드레싱으로 감싸고 혓바닥으로 일일이 가지런히 한 다음 보드라운 털로 덮어준다. 




    우리 인간들이 고양이에게 주는 것이라곤 고작, 작은 종지에 들이부을 만큼의 먹이와 물, 간단한 화장실 청소 그리고 약간의 쓰다듬음 뿐인데 이런 작은 보살핌에 대하여 그들은 우리 존재가 거하는 배경의 모든 여백을 다 채워주는 것으로 보답한다. 불굴의 굴곡을 날렵하게 펼쳐 보이며 부드럽게, 익살스럽게, 때론 신비하게. 


    그들은 그 흰 양말을 신은 발로 버티고 선 가장 예쁜 거울들이다. 우리는 그들 눈 속에서 예쁜 우리 자신을 발견한다. 또 그들 각각은 우리 자신의 인격이기도 하다. 그들에게서 삶을 헤쳐 나가는 분주한 호기심과 비상한 재치, 새침함, 무사 안일한 순진함을 읽는다. 그들은 우리가 공유하는 미덕들의 귀여운 표본이다. 이들은 필경 하느님이 인간에게 줄 선물로서 고르고 골라 갖은 테스트를 거쳐 우리 옆에 놓아주신 보물인 거다.







    수업은 점점 더 리듬감을 더해 갔고 자료들은 차고 넘쳤으며 숙제 또한 규칙적으로 부과되었다. 이미 익숙한 프랑스어를 배우는 둥 마는 둥 놀며 지내게 될 줄 알았건만 어느덧 나는 공부에 치여 살고 있었다. 

    그래도 일요일이면 종종 피레네 대로까지 걸어갔다. 일요일은 버스가 다니지 않으므로 걸을 도리밖에 없다. 거기 있는 카페 ‘릴 오 자스맹 L'Île au Jasmin’(재스민 섬)에서 과자를 곁들여 차를 마시며 시집을 읽거나 혹은 일주일간 배운 것들을 복습했다. 금쪽같은 주말 오후를 그따위 복습으로 소일하는 이는 나뿐인지도 몰랐다. 외국 아이들은 주말마다 단체 혹은 소소한 그룹으로 비아리츠나 셍 장 드 뤼즈, 툴루즈, 셍 세바스티앙 등지를 여행하거나 혹은 피레네를 등반했다. 그들은 여행하지 않으면 최소한 친구들끼리 파티를 했다. 



    하지만 내게 일요일이란 그저 좀 더 여유로이 공부하는 날일 뿐이었다. 나는 늘 시내에 머물며 골목들을 걷거나 했다. 특별한 장소를 찾아가지 않아도 프랑스의 주택가는 그 자체가 걸을 만한 장소여서, 낮은 울타리의 정원들이 어찌나 아기자기하게 잘 가꿔져 있는지 이런 골목들만 걸어 다녀도 기분이 좋아진다. 이 골목들과 집들은 ‘일상은 결코 고되고 초라하지 않아, 나날의 삶이란 예쁘고 즐거운 거야.’라고 말하는 듯했다.













     비 온 뒤 기숙사 위 하늘









    어느 늦가을 날에는 단풍이 유난히 아름다운 거리를 걸었다. 여기서 단풍을 주워 와 밋밋했던 기숙사 벽을 장식했는데 넉넉한 스탠드 조명과 어우러져 근사했다. 이 배경에는 언제나 BGM도 깔렸다. 그것은 주로 피레네대로 노점 수레에서 불과 3유로에 사 온 CELTIC DREAMS라고 하는, 새가 울고 물이 흐르는 자연소리에 탬버린 소리만 간혹 들어가는 음반이었다. 켈틱 하프가 주된 악기로, 틀어만 놔도 절로 집중이 잘 돼서 나는 이것을 ‘공부 잘 되는 음악’이라 불렀다.  


    대서양 기후로 인해 가뜩이나 비가 많은데 유난히 일요일마다 규칙적인 손님처럼 꼬박 비가 내리곤 했다. 나는 때로, 비 그친 하늘 언저리 분홍과 파랑 물감이 가득 번져나는 거리를 구름처럼 흘러 다녔다. 늦은 오후에는 빵집을 가거나 산책을 했다. 빵집 한두 군데 정도는 다행히 열려 있었다. 






일요일에 먹던 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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